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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물위를 떠다니는 빈집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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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물위를 떠다니는 빈집 (단편소설)
2011-08-30 조회 6264    프린트스크랩

  유신체재가 도입 된지 올해로 오년 째다. 전국 각지에서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유신 헌법의 부당성을 고발하는 대모가 매일 일어나고 있다. 뱃속에서 아이의 발길질이 심하다. 귀여운 녀석. 남편을 닮은 남자아이를 낳고 싶다. 배는 점점 더 불러온다. 친정어머니가 보약을 한 채 지어오셨다.

 -네 건강과 애기를 생각해서 꼭 다 먹어야 한다. 이 서방은 매일 참치를 잡아서 회쳐 먹으면 될끼구마- 
 
 보약이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 않는다. 남편은 물위에 떠 있을 텐데, 나만 편안하게 생활하는 것 같다. 부부는 살아도 같이 살고 힘들 때 같이 해야 하는데, 내가 남편을 도울 수가 없다. 이 보약을 먹어서 남편의 아이를 건강하게 키울 수 있다면 기꺼이 이 약을 먹어야 되리라. 그래도 하늘아래 같이 살아가고 있으니 우리가족은 한 배를 탄 가족이다. 아침에 약간 일던 파도가 저녁참에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남편은 멀미가 심하지 않을까. 멀미약을 좀 챙겨주는 건데. 사월 달 첫 출항 때는 헤어지는 것이 슬퍼서 아무런 준비도 해주질 못했다.
 
 -아따 죽으로 가나 돈 벌러 가지. 질질 눈물 짜면 재수에 옴 붙는기라. 그마 딱 그쳐라-.

 어머니는 당신의 아들이 항시 물위에서 생활할 것으로 생각이 되어, 내 마음이 강해지도록 단속을 하셨다. 오늘 어머니가 집 뒤뜰에서 정화수를 떠놓고 절을 하고 계셨다. 과거에 아버님이 바다에서 고기잡이 하실 때, 오늘같이 파도가 심한 날에는 정화수를 떠놓고 절을 하셨듯이. 그래도 나는 어머니의 저런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멀쩡하게 살아있는 자식을 위해 죽은 사람에게 절 하듯이 지신(地神)에게 절을 한다는 게 영 마음에 걸린다. 나는 마음속으로 남편이 무사하게 돌아오기를 빌어야겠다. 당신은 홀몸이 아니에요.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아기 아빠라고요. 몸조심하세요. 돈은 적게 벌어도 좋으니 내년 사월 달에는 분명코 떠날 때 모습그대로 꼭 돌아와 주세요. 마음속으로 온갖 불길한 생각이 들지만 글로 남기고 싶지 않다. 어머니가 지신(地神)에게 아들의 무사귀환을 비는 시간이 오늘따라 점 점 길어지고 있다. 오늘은 싫은 날.
 

‘파도야 나는 어쩌란 말이냐. 네가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준다면, 제발 그만 물러가다오. 이렇게 마음속으로 빌면서 두 손을 모으고 있지 않느냐. 무심한 파도야 나는 어쩌란 말이냐. 너는 남편보다 더 자주 내 곁에 와서 내 마음을 할퀴고 가는구나. 나도 학창시절엔 바다를 좋아하는 문학소녀였단다. 그러나 이제는 바다도 싫고, 심지어 그릇 속의 물조차 오늘 같은 날은 보기가 싫어진다. 이불을 머리위로 끌어올려서 장님처럼 암흑 속에 머물고 싶구나. 그러다 잠속으로 빠져 들어가면 건강한 내 남편을 볼 수 있겠지.

 
 아내여! 나도 무사히 건강한 몸으로 당신에게 가고 싶었다. 바다는 하루에도 여러 번 변덕을 부리더구나. 넓은 바다 한 가운데서 참치들이 사는 곳을 찾아서 정처 없는 방황을 해야 했단다. 우리 모두는 어서 빨리 참치가 많이 잡히어 무사히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꿀떡같았다. 그 당시 심정은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당신 배라도 한 번 쓰다듬어주고 싶었지만, 아내여 멀리 있는 못난 남편은 몸은 비록 떨어져있었지만 마음만은 항시 당신 곁으로 달려갔었다. 자식만을 보고 살아온 우리어머니가 당신을 힘들게 하지 않았을까 걱정이 떠나지 않았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누우면 마음과는 다르게 금방 잠이 들어버렸고, 꿈속에서 당신과 신혼재미에 푹 빠진 적이 많았다. 눈을 뜨면 망망대해에 홀로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곤 서러운 생각도 많이 들었다. 다행히 나는 멀미를 별로 하지 않았는데 초보선원들은 대부분 심하게 멀미를 하더구나. 내가 어릴 때부터 물을 가까이하여 수영을 많이 한 것이 도움이 되었다. 상구의 눈 시월은 서서히 뜨거워지고 있었다.

 
 울산에서 천연기념물 귀신고래 두 마리 발견. 와 올해는 무슨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남태평양 에서 온 사랑의 전도사. 부산에 크리스마스이브 날 처음으로 십 년 만에 눈이 내렸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다. 거리에는 온 누리에 가득한 복음을 전하는 징글벨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이상구 씨? 그곳 남태평양 망망한 바다에도 눈이 오고 있을까요? 같은 하늘을 이고 사는 사람들인데, 그곳엔들 눈이 안 올 리야 없겠지요. 눈이 쌓인 하얀 배, 당신이 잡은 참치들도 눈을 뒤집어쓰며 눈옷을 입고 있겠지요. 배와, 참치, 어부들, 그리고 바다, 하늘,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버리겠지요. 심지어 파도도 하얀 파도로 변하여 당신에게 제법낭만적인 얘기를 속삭이지 않겠어요.
 

 -어부들이여 당신들의 팔은 근육으로 꿈틀거린다.
당신들은 자연이 낳은 고기들을 잡으며 생계를 꾸려간다.
당신들은 가족을 위하여 파도와 싸우며 젊음을 물위에서 보내고 있다.
바다에만 파도가 있으랴.
육지에도 운명의 파도가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살그머니 다가와 사람들을 심연의 혼란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태양의 아들이여!
오늘 같이 하얀 눈이 오는 날은 동심으로 돌아가서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볼지니.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서로 오늘을 즐겨라-   박연희
 

 메리크리스마스! 산타크로스 할아버지가 당신에게 갈려면 썰매를 타야 될까요? 비행기를 타야 될까요? 아니면, 당신처럼 고기 배를 타야 될까요? 사백 톤 어선은 태평양의 드넓은 바다에선 너무 작지 않을까요. 적어도 천 톤 이상은 되어야 그 바다에서 어울릴 것 같아요. 산타할아버지도 당신에게는 가지 못할 것 같군요. 차라리 내 마음을 실은 종이비행기를 날려볼까요. 보고 싶어요. 태어나서 이렇게 사람을 기다린 적이 없는데, 당신이 바다로 훌쩍 떠나버린 이후에 매일 당신을 기다려요. 사 개월 후면 당신을 만날 수 있겠지요. 난 두려워요. 짧은 만남이 끝나면 또 훌쩍 뻐꾸기 아빠처럼 날아가 버리겠지요. 전화도 할 수 없고 편지도 보낼 수 없는 남태평양 바다로 말이에요. 매일 마음속으로 당신을 부르지만 당신은 소리 없는 메아리가 되어 다시 내 마음을 아프게 하네요. 그래도 무사히 돌아오세요. 만나면 헤어지는 게 세상의 이치가 아닐까요. 남들은 꿈처럼 달콤한 신혼시절이 나에겐 한없이 기다리는 법을 가르치고, 철학자마냥 자신을 타이르는 법을 배우게 되는군요. 오늘은 화이트 크리스마스. 꿈속에서만 받을 수 있는 멋진 선물을 드릴게요. 당신이 평소에 갖고 싶어 했던 독일제 하모니카는 내년에 당신이 집에 오는 날 드릴게요. 그럼 안녕히.

 
 아내여! 내가 참치 선을 타고 첫 출항하였던 그 해 12월 24일은, 정말 내게도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제법 당신의 둥근 배처럼 어선은 참치로 가득 차올랐다. 잘만 하면 한 달 정도를 앞당겨서 집으로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은 유달리 바람이 많이 불고 십층 건물높이의 광폭한 파도가 선채를 덮쳐와 우리 모두가 죽는 줄 알았다. 배는 파도와 함께 하늘높이 솟아올랐다가 파도가 아래로 꺼지자, 지옥의 밑바닥으로 떨어지듯 사정없이 저 깊은 죽음의 심연으로 곤두박질쳤다. 사람의 목숨이 한낱 바람 앞의 등불과 다름이 없었다. 저온냉장고에 있던 냉동 참치들도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갔었다. 누구하나 그 비싼 고기를 붙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살기위하여 배를 꽉 잡고서 울부짖었다. 살려달라고. 참치들이 바다에 떨어지고, 횡포를 부리던 바다는 한 참후에 잠잠해 지더구나. 배는 균형을 잡았고 우리는 다시 참치를 따라서 먼 여행을 하였단다.
 
  산란을 하기위해 참치들은 태평양을 지나서 필리핀과 일본사이의 산란지역으로 갔다가 다시 남태평양으로 오거든. 우리는 남태평양에서 그 길목을 지켰다가 참치들을 잡았다. 산란하고 돌아오는 참치는 우리가 잡아야할 대상이었지만, 때로는 망망대해에서 친구나 가족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단다. 참치에게 미안한 생각도 들었지만 어쩌랴 그것들을 잡아서 만선을 해야 우리가 집으로 갈 수 있는걸.

 
  월남에 전쟁이 끝 난지가 오년이 되었다. 진정한 평화가 오려면 인고의 세월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오늘 병원에서 당신을 쏙 빼닮은 아들을 낳았어요. 무려 3.4킬로그램이나 나가는 건강한 남자 아이였어요. 올해는 경사가 겹치려나 봐요. 당신의 회사에서 연락이 왔군요. 올 삼 월 쯤에는 당신이 집에 온댔어요. 참치어획량의 기준치를 한 달 이상이나 빠르게 돌파했대요. 보너스도 받는대요. 아이의 백일을 집에서 같이 지낼 수 있다니, 하늘에 감사 해야겠네요. 앞으로 당신이 바다로 나가있어도 당신아들이 내 옆에 있으니 덜 외롭겠지요. 아이의 이름은 무엇으로 지을 까요? 당신이 와서 지으면 너무 늦을 것 같아서 며칠 있다가 어머니와 철학관에 가서 지으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당신이 서운하더라도 어쩔 수 없죠. 이름을 잘 지어야 아이의 운명이 좋아지지 않겠어요. 우리 아이는 앞으로 물보단 산을 가까이 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당신이 돌아오면 바다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이사 가야겠어요. 당신 어머니는 태평양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높다란 곳에 거처를 정했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아요. 당신가족이 운명적으로 맺은 바다와의 인연을 우리 아이에게는 끊어 주고 싶어요. 당신에게 바다는 운명이었지만 나 박난희에겐 단지 선택할 수 있는 대상이어야 해요. 당신과 같이 이 세상에서 한 배를 탄 동안은 나도 당신과 그 운명을 같이해야겠지만, 우리아이에게는 우리 두 사람과는 다른 인생의 길을 열어주고 싶어요. 땅을 딛고 일하며 육지에서 살게 해 주고 싶어요. 아이를 잉태한 여인은 이미 한 우주를 만든 거나 같다죠.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면 여자는 생명을 세상에 내보내는 역할을 하잖아요. 보고 싶어요. 당신의 따뜻한 손길을 느끼고 싶고, 수고 했노라 는 말 한마디를 듣고 싶어요. 더불어 사랑한다는 말도 듣고 싶어요. 아이를 잉태한 여인은 욕심이 많아지나 봐요. 그럼 오늘도 무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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