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o 세계 인터넷바둑의 허브
  • 겜임&채널
슈사이 명인의 삭감을 감탄하다
Home > 컬럼 > 문용직手法
슈사이 명인의 삭감을 감탄하다
2012-03-03     프린트스크랩
▲ 65세 슈사이 명인(右)과 30세 기타니의 대결. 제한시간 각 40시간, 신문 연재 64회, 대회 기간 6개월, 명인의 은퇴기였다. 슈사이 명인은 마지막 승부의 불꽃을 태우고 이 듬해 죽어버렸다.

삭감은 왜 하나


I. 슈사이 명인의 삭감을 감탄하다가

바둑을 즐긴다.
바둑을 둔다.

그 어느 것이나 쉬운 것이 아니다. 정신이 맑고 마음이 편해야 두고 즐길 수 있다. 이 글 읽는 분이 바둑을 두고 즐기고 있다면 그건 상당한 정신력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축하드린다. 부러운 일이다.

고금의 명인 국수들을 돌아보노라면 그 어느 바둑이나 어렵고도 높은 단계에 올라섰다는 인상 온다. 쉬운 경지란 없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쉬운 것을 찾는 것이야말로 세상에 힘든 일이 아닐까 싶다.


      1도 (슈사이 명인의 삭감 - 반상을 넓히는 방식)

오청원 소년 시절 3점을 슈사이 명인에게 접혔다. 
감탄한다. 기백에 감탄한다.

백7과 백9에 감탄한다.
“야, 저리 두는구나!”
무릎 치게 된다.

왜 이 글은 청년시절에 저런 기백 하나 세워보지 못했을까.
재능에 장단이 있는 걸까. 기백은 노력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닌 걸까.

그래, 그래도 좋다. 감탄이야 자유다.

백7은 흑a 백b 흑c  선수로 당하는 것을 기피한 것. 집은 굳어지지만 반상은 좁아진다.
초반. 3점이면 무조건 넓히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다.
백9 다음 실전은 대문자 순서.

백9에는 감탄했다. 예전에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다.
하변에 갈라치는 것이 대개의 경우 첫눈에 잡힐 것이다. 이 글도 그랬다.
그러나 그 경우 흑이 9 자리에 두는 것이 아플 것이다. 백은 좌측으로 좁혀지고 흑은 넓어진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이 글이 강조하지 못한 것 중의 하나가 있는데
반상은 “옆으로 너비를 넓히는 것”보다는 “아래 위로 높이를 세우는 것”이 요긴한 세상이다. 그리 본다.

신포석의 세력 강조는 바로 그점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도샤쿠 이래 300년 3선 중심에 대한 반발은 수평선 중심의 반상 이해에 대한 수직선 중심의 반상 이해에 기반한 것이었다.
반상은 격자무늬 세상.
그러니 정방형 正方形 으로 돌과 공간의 형상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당연한 시도. 시도 이상의 의무. 의무 이상의 현실.

오청원이 슈사이 명인과 둔 “3三, 화점, 천원”의 대국은 바로 그 점에서 다시 한 번 재평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나로 요약한다.
백9는 삭감이자 반상을 넓히는 요처.

삭감은 상대의 집을 가감 加減 하는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2도 (슈사이 명인은 세력을 좋아했다 - 수직선을 좋아했다)

슈사이 명인(1874-1940)은 혼인보 슈에이(秀榮1852-1907)의 제자.

슈에이는 김옥균이 일본의 외딴 섬에 격리되었을 때 홀로 찾아가 3개월간 함께 기숙했던 인물. 아름다운 그러나 가슴 저미는 우정.
술이 풍족했으랴. 희망이 있었으랴.
 
제자 슈사이는 세력 바둑을 잘 두었다. 힘도 좋았고.
당연히 접바둑을 잘 접었다. 2점 3점에 아주 능했다. 그런 평이 널리 퍼져 있었다.

1904년의 대국인데, 슈에이의 대국으로는 마지막에 해당된다고 한다.
음, 절절하군.
시간이 지나니 더욱 절절하다.

흑3 이하의 착상이 그야말로 어려운 것으로 개성이 크게 살아 있다.
당장은 손해가 분명한 것으로 보통은 흑3을 7에 둔다. 그것이 보통이고 무난하다.

그러나 슈사이에게 반상은 수직으로 지탱되는가 싶다.



      3도 (세우면 넓혀지나 - 넓혀야 세워지나)

(1926년. 백: 本因坊 秀哉 명인 흑: 7단 雁金準一) 당시로서는 드물게 비중 큰 대국이었다. 일본 바둑계를 양분하고 있었던 일본기원과 方圓社 대표들의 대국이었으니 말이다. 아니, 그보다도 두 사람, 本因坊을 두고 한 판 인생 걸고 싸웠던 인물들이었으니, 더욱 그랬다.
그래, 그건 그렇고.

좌변 백2 이하가 슈사이 명인 독특한 수법이었다.
꼭 백이 좋다, 그런 것은 없는데, 자신이 좋아하면 좋은 것. 그것으로 성적이 좋다면.

상변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그건 논란이 많았는데, 이것만 보자.

저리 실리를 양보하고도, 그래도 세력을 구하면, 과연 얻어지나? 

“답변”은 있다.

둘 수 있다.



      4도 (삭감하고 꼬부리면 - 바둑은 절로 된다)

고바야시와 다께미야의 대국 일부이다.
백1과 백9.

저리 두어도 된다.
바둑은 된다. 충분하다.


자, 그런데 접바둑에서도 그런가?

잠시 답변을 유보하겠다.


II. 접바둑에서 삭감은 변화 지향적인 측면을 더욱 강조한다


      5도 (슈사쿠의 삭감 - 빠르고 변화지향적)

두터운 기풍의 슈사쿠도 3점 바둑에서는 그리 못 둔다. 두터운 수법은 접바둑에서는 잘 맞아 들어가지 않는다. 흑돌이 천지사방 요처를 점령하고 반상을 굳게 - 응고시키고자 - 하는 판에 어찌 변화를 일으키지 않고 나아갈 수 있으랴.

이 국면 보면 - 백이 흑을 분리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알겠다. 그 방식이 삭감이다.
여기서 삭감은 집을 깍는 것이 아니다.

접바둑에서의 삭감은 변화를 유도하고자 하는 측면이 강하다.
명인 국수들의 바둑을 보면 그러했다.

집을 쩨쩨하게 깍아서 형세를 맞추려 하는 그런 태도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런 식으로 반상을 바라보지 않는다.

반상은 변화시켜야 할 대상이지, 상대와 나의 권리를 맞추는, 그런 놀이세상이 아니다.

변화는 넓게 스케일 크게 해야 한다.
우상귀에서 흑A 끊으면 백B로 대응하는 것.
그도 변화지만, 보다 큰 것은 반상 전체를 불안하게 불확실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그건 잘 모르겠다.



      6도 (삭감의 목적은 변화에 있다)

(1923년. 백: 小岸 壯二 흑: 木谷實)

삭감의 목적이 변화를 꾀하는데 있음은, 모든 수법의 경우와 다를 바 없다.
의도 없는 수법이란 없는 것이다.

삭감에서 백은 흑을 가볍게 눌러두려는 경우도 있지만, 접바둑에서는 또 다른 변화도 꾀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것은 앞서 5도에서 본 바와 같이 삭감 후 방향을 전환하는 것에 있다.

앞서 5도에서 백7 걸침이 그것으로, 삭감으로 인해 흑이 걸침에 대응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손해도 아니고 곤란한 것도 아니다. 다만 5도 백1 이하 백7은 上手가 쓸 수 있는 변화지향적인 수법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여기 6도에서도 그것은 뚜렷하다.
흑이 A에 두던 흑8에 두던 백은 방향을 바꾸어서 9 걸쳐가겠다는 것이다.
이는 백이 시도해볼 만한 수법이다.

한편 흑의 입장에서 보면 주의해야 할 수법인데, 뭐랄까.
다음 7도를 보면서 이야기하자.



      7도 (변화를 기피하다 - 대칭을 이용)

(1917년. 백: 本因坊 秀哉 흑: 3단 小岸 壯二)

여기 흑6에 주목하자.
반상은 대칭이다. 상대가 오른쪽에 오면 이편은 왼쪽으로.
매우 자연스런 흐름이다. 이리 두면 변화는 크게 발생하지 않는다. 흑의 입장에서 볼 때.
그렇다고 해서, 이 흐름이 백에게 불리하다는 것은 아니다.



      8도 (변화 의도가 강하면 - 삭감에서 대립으로)

삭감과 대립.

별로 잘 어울리지 않는 개념이다.
삭감은 가볍게 감삭(減削)하는 것이다.
때문에 삭감을 당할 때 반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아니, 반발할 수 없다.

대립은 상대에게 양보 정도가 아니라 항복을 요구하는 행위다.
반발은 필연적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삭감에서 대립으로 변화하는 수법이 드물지만 보인다는 것이다.
여기 8도는 그 하나.

백3이 무서운 기백이다.
흑4 두점머리를 맞다니! 그러면서도!

이 바둑에서는 흑5가 예리한 맥점으로 백이 고전이었다. 그러나 저 백3 수법이 틀렸다거나 두어서는 아니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실전은 다르다. 실전의 기백은 인정해주어야 한다.

변화의 절정은 기백 없이 오지 못한다.

이런 바둑 몇 개 봤다. 맞바둑에서도 있다. 고바야시와 조치훈의 바둑.



      9도 (고바야시의 개성일뿐인가)

그 언제 바둑인가는 확실치 않다. 자료가 일부 어디 갔는지?
백이 고바야시 9단. 좌중앙 백세력을 살리려면 저 백3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
백3을 4에 뻗는 것은 대부분 기사들의 견해.

이 글은 모르겠다.
모르는 것은? 하하. “손을 빼라.”
예전에 저 표현 자주 써먹던 친구 있었다.
형세가 불리하면 봉수(封手)하곤 했었다. 하하.

 

III. 기백과 안목 없이 접바둑 없다

지난 2005년 “접바둑의 하나 둘”을 연재할 때 기백과 치수를 이야기하면서
기백과 치수는 함께 하지 못한다, 그리 말했다.

당연한 이야기인데
오늘 한 번 더 강조하고 싶다.

기백없는 바둑 없다.
접바둑은 더하다.

기백만이 접바둑에서 백의 태도를 일으켜 세운다.
기백만이 접바둑에서 반상을 구상한다.

접바둑은 맞바둑에 비해서 저평가를 받는 측면이 있는 듯한데 - 왜 그럴까 -
약간은 편견이 있는 거 아닌가 싶다.

이 글도 - 쓰는 동안 - 스스로 그런 관념과 이해가 내면에 자리 잡고 있음을 몇 번이나 확인했다. 상당히 강한.
아마도 이런 이해는 바둑에서 온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바둑의 승부 관념도 접바둑에 대한 아쉬운 이해를 더하는데 일조한 것도 사실일 것이다.

그래, 그런가.
그럼 이 글부터 접바둑 두어보시게.


이로써 “접바둑의 셋넷”을 마친다.
감사!

  • 페이스북
  • 구글+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트위터
이전 다음 목록
┃꼬릿글 쓰기
범팔 |  2012-03-05 오전 9:42:1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잘보고갑니다 좋은글감사합니다  
固然 |  2012-03-08 오전 12:25:4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9도의 바둑.. 82년 본인방전 도전기 1국 조치훈-小林 의 기보인 듯 합니다.  
북악검신 |  2012-03-29 오전 3:09: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전에 오청원 선생의 기보를 놓아보다가 백7,9를 보고 슈사이 명인의 착상이 비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사범님의 명칼럼은 항상 다음회를 기다리게 하네요. 감명 받고 갑니다.  
새들 |  2012-08-30 오후 2:24:1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문용직선생님께 문의합니다. 지금 현재 저는 선생님께서 펴내신 '바둑의 발견'을 아주 의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문의해 봅니다. 저는 바둑을 '성령의 의식, 혹은 최고 지혜의 의식'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이에 대해서 혹시 아시는바가 없으신지요? 참고될 만한 서적이라도 있다면 소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요.  
인제의꿈 |  2012-09-13 오후 9:48:2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40시간... 짱이다  
검은도요새 |  2015-02-11 오후 4:45:3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문용직선생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쓰신 글들을 읽고 또 읽고... 합니다.
근데...
올리신 기보들이 너무 작아서... 참 불편합니다.

기왕에 고생하신 거.. 기보들을 좀 크게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항상 고맙습니다...!  












* 띄어쓰기 포함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000 / 400바이트)
대국실입장하기
다운로드 이용안내 고객센터
정회원가입
오로볼구매
가장 많이 본 기사
스폰서소식
위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