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은 수법을 앞선다(2)

리듬감을 가지고 반상을 내려다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그 이유는 실전에서 선택되는 대부분의 행마라는 것이, 복기 때 비로소 찾아낼 수 있는 그런 바른 행마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그것이 반상의 진실에 가깝다. 그리고 더하여 그런 부족한 행마와 맥을 둔다 할지라도 그 부족함이 반상의 균형을 크게 거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령 중반에서 행마가 급소를 제대로 짚어내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리 심각한 결과를 당장 이끌어내지는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바른 행마와 틀린 행마의 차이는 그렇게 심각하지가 않다. 급소를 놓친다? 프로의 바둑에서도 그건 비일비재하다.

우린 급소를 다룬 책을, 명인의 솜씨를 보여주는 장면을 너무나 많이 본 경향이 있다. 마치 그런 장면 그런 신랄함이 언제나 반상을 수놓아 가는 것처럼 착각에 빠지는 경향이 없지 않은 것이다. 이해하도록 하자. 모자라는 것이 보편적인 현실임을 이해하도록 하자. 걱정 말자. 턱 하니 마음을 놓도록 하자.

다음과 같은 식으로도 수법의 차이를 생각해보자.
먼저 1도에서 우상귀와 좌하귀를 비교해보자. 우린 저 우상귀를 정석으로 알고 있다. 좌하귀 갈림은 흑에게 불만으로 알고 있다. 좌하귀에 비해 우상귀는 어떠한가? 흑의 입장에서 유리한가?

1도(한 줄의 차이 큰가-1) 그렇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흑집이 2집 정도 더 불었지만 백도 더 두터워졌다. 변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즉 영향력이 커진 것이다. 영향력의 반경이 넓어진 것이다.

2도(한 줄의 차이 큰가-2) 2도에서는 우상귀와 좌하귀를 비교하고, 좌상귀와 우하귀를 비교하자. 집이 커지면 상대에게 영향력을 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좌상귀와 우하귀의 비교에서는 어떤가? 상대가 A와  B로 붙여올 때 대응의 힘에 차이가 있으며, C와 D로 바짝 다가올 때 허점의  차이 또한 있다. 가볍게 결론 내리면, 서로 간에 차이는 있으나 우열은 쉽게 가리기 힘들다고 할 수 있다. 어느 것을 선택해도 한 판의 바둑이다.

참고로, 우린 오늘날 3선보다 4선을, 발빠름보다 두터움을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시대적 취향 때문에 우리가 자신도 모르게 받아들인, 그래서 하나의 선입견일 수 있다.
 

3도(한 줄의 차이 큰가-3)

3도에서도 우린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어느 굳힘이든 일장일단이 있다. 어느 것이 더 나은 것이라 말하기는 힘들다.

4도(한 줄의 차이 큰가-4)

물론 4도에서 보듯이 중앙으로 머리를 내미느냐, 3선 이하로 머리를 떨어뜨리느냐, 그 차이는 적지 않은데, 이에 대해서는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동일한 조건 하의 동일한 수법에 대해서도 의견이 다를 때가 많다. 간단한 예로 실리를 좋아하는 사람과 세력을 좋아하는 사람은 같은 결과를 두고서 서로 다른 의견을 내곤 한다. 실제로 이는 의견과 판단의 문제를 넘어선 것으로, 이 장면에서는 - 다소 단정적인 표현인 듯하지만 - 바로 이 수법밖에 없다, 는 그런 경우는 반상에서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정수(正手)와 속수(俗手)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선악은 물론이고 경중 또한 가리기 힘든 것이 보통이다. 모호한 세상, 모호한 반상. 그것이 현실이다.

절대적인 답은 없다. 때문에 답보다는 반상의 리듬에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리듬에 주의했다면, 상대에 대한 지나친 감정적 투사 없이 마음을 그런대로 안정적으로 지켰다면 반상은 대국자의 실력을 잘 반영할 것이다. 그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눈앞의 바둑은 물론이고 실력의 진보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리듬을 중시하지 않기에 우린 부분 부분에 얽매여 판단과 판단으로 살아가는 것이 보통이다. 다소 과한 이해일지 몰라도 의외로 우리의 안목은 몇몇 제한된 관념에 초점이 잡혀있다. 우린 배경을 볼 수 있는 눈이 거의 없다. 그것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인식하고 있는 바 현실이다. 배경을 볼 수 있다면 약간의 실수, 바른 맥에서 벗어난 수법 등에 대해서 그리 큰 걱정을 아니 해도 될 것이다.

예를 들어 프로에게 바둑을 배우는 아마추어의 경우, 부분적인 맥과 같은 테크닉에 대한 갈증을 많이 갖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저러한 기술을 배우면 곧 실력이 향상될 것이라는 예상 하에서 이 경우에는 이렇게 두고 저 경우에는 저렇게 두어야 한다, 는 그런 답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을 모아서 잘 분류하면 곧 고수의 대열에 쉽게 들어설 수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아쉽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멀리 나아갈 수 없다. 물론 테크닉이 필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부분적인 맥, 정석, 행마법은 천천히 하나 하나 쌓아가야 하는 것이기에 집을 짓는 벽돌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벽돌만으로는 집을 짓지 못한다. 

리듬에 어울리는 것이 착점 하나하나의 바람직한 운명이다. 그 흐름에서 벗어날 때 착점은 외롭고 우울하다. 그러므로 리듬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조정하느냐? 그것이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반상의 안팎, 그 기반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