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대사(西山大師)(1520~1604)의 <宿元曉寺(원효사에 묵으면서)>라는 제목의 시다. 서산대사는 청허휴정(淸虛休靜)이라고 불리는데 그분에 대해서는 대부분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좀 더 관심 있으신 분은 http://seosan.buddhism.org/ 사이트를 방문해보시길.

宿元曉寺               원효사에 묵으면서

矛草三春日 (모초삼춘일) 삼월 봄날 풀잎이 창(槍)과 같을 때

尋眞過虎溪 (심진과호계) 진인을 찾아서 호계¹를 지나가네

花飛風弱力 (화비풍약력) 산들바람에 꽃잎은 흩날리고

山靜鳥能啼 (산정조능제) 산은 고요하여 새 지저귀는 소리만

鳴澗琴常奏 (명간금상주) 시냇물 소리 항상 거문고를 연주하고

層峯劒不齊 (층봉검불제) 높고 낮은 산봉우리 칼끝처럼 들쭉날쭉

雲深僧入定 (운심승입정) 구름 깊은 곳에 스님은 참선에 들었고

松老鶴移棲 (송노학이서) 노송 가지 위에는 학이 자리 옮기네

着局人何去 (착국인하거) 바둑 두던 사람들 어디로 갔나

封苔路欲迷 (봉태로욕미) 이끼 덮인 길에서 헤매고 싶은가

夜來淸夢罷 (야래청몽파) 밤 깊어 맑은 꿈 깨어나 보니

梨月向窓低 (이월향창저) 창가에 나직이 걸린 배꽃 같이 하얀 달

畏(두려움)

이 시를 처음 대했을 때 경외감이 일었다. 스님으로서 출가할 때부터 득도한 이후까지 그분의 한평생이 그려졌다. 참선이나 득도의 상태를 알지 못하는 자로서 과연 이 시를 해석하고 감상해도 되는 것일까 하는 망설임도 일었다.

그러나 세상은 자신의 그릇과 자신의 안목이라는 테두리 내에서 읽혀지는 것 아니겠는가! 따라서 나는 그저 현재의 나 나름대로 읽고 감상하는 것뿐이다. 언젠가 후일에 다시 읽어본다면 또 다른 감흥이 있으려나?

虎溪三笑(호계삼소)

처음에는 그저 산 계곡의 시내가 호랑이 울음소리 같이 꽤나 시끄럽게 흘러가는 모양이다 하고 생각했었다. 혹은 그 냇물의 이름이 호계라는 것일까? 하고 추측하기도 했다. 무식하면 용감한 것이다. 찾아보기를 게을리 하는 자는 망신을 당하게 마련이다.

진대(晉代)의 승려 혜원(慧遠)이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에서 수도하면서 호계(虎溪)를 건너 밖으로 나가지 않고 안거(安居)하겠다고 맹세하고, 30년 동안 그 냇물의 돌다리를 건너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서로 마음이 통하던 도연명(陶淵明)과 육수정(陸修靜)이 찾아와 함께 담소를 나누고 전송할 때 무심코 호계를 건너게 되었는데, 호랑이 울부짖는 소리에 맹세를 어긴 것을 깨닫고 세 사람이 크게 웃었다는 고사에 기인한다. 더불어 호계삼소할 만한 사람이지 하며 돈독한 관계를 나타낼 때 쓰인다.

한편 불교의 혜원, 유교의 도연명, 도교의 육수정이 각 교를 대표해서 한데 모여 웃었다는 의미로 종교간 화해의 상징으로도 쓰인다고 한다.

중의적(重意的) 해석의 단초(端初)들

첫 단초는 역시 호계였다. 도를 이루지 않으면 산을 내려오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알게 되자 모든 글자나 단어들이 범상치 않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휴정은 9세 무렵에 부모를 여의고, 13세 무렵 성균관에서 수학을 하다 진사시 급제에 실패하고 15세 무렵에 출가했다고 한다. 三春은 바로 그 때를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진리를 찾기(尋眞)위해 입산을 결심한 것이다.

鳴澗은 돌 틈 사이에서 솟아 나오는 샘물 소리를 말하는데 끊임없이 이어지는 번뇌를 상징한다. 層峯劒不齊 역시 겉으로 드러난 뜻은 산봉우리들이 칼날과 같이 가지런하지 못하다. 즉 뾰족하고 들쑥날쑥하다는 뜻이지만 다르게 해석을 하면, 탐진치 욕화는 칼로도 가지런하게 하기 어렵다는 의미가 중층적으로 스며있는 것은 아닐까?

드디어 학이 둥지를 옮겼다는 말에 이르러 오도(悟道)했음을 노래한다.

서산대사는 견성성불의 과정을 바둑으로 비유했다. 이제 성불했으므로 보임(保任)을 하여 그 도를 더욱 익게 하고,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보살도를 행해야할 것이다. 그런데 이끼 낀 길에서 헤매고 싶다는 뜻은 무엇일까?

시를 읽다보면 언제 지은 것인지 시점을 알지 못해 답답할 때가 종종 있다. 추정하건대 혹시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이끌었던 것에 대한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중생구제의 보살도를 행해야 하는데 살생을 감행해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 마음이 흔들렸던 것을 말하는 듯하다.

그러건 저러건 자신의 깨달음의 본체는 배꽃같이 하얀 달처럼 여전히 의연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렇게 해석하고 보니 첫 번째 수는 입산수도와 처음 공부할 때, 두 번째 시는 용맹정진하는 과정과 오도, 세 번째는 속세의 일에 끼어듬과 자신의 도의 경지를 말한 것으로 보인다.

이상을 바탕으로 서산대사의 본마음을 추정하여 다음과 같이 다시 써본다.

이팔청춘의 때에 진리를 찾고자 굳은 맹세로 입산했네

이런 저런 유혹을 가볍게 여기며 오직 수행일념정진

번뇌는 끝없이 이어지고 욕화는 다스릴 길이 없었는데

공부가 익어가니 드디어 오도(悟道)하도다

아직도 속세의 인연이 다하지 않았던가! 망설였는데

참나는 여여(如如)하여 밝고 밝게 빛나는구나

서산대사는 대낮에 닭 우는 소리에 도를 깨쳤다고 한다. 그분의 오도송을 소개한다.

髮白非心白 (발백비심백)    머리는 세어도 마음은 안 센다고

古人曾漏洩 (고인증누설)    일찍이 옛사람이 일러주었는데

今聽一聲鷄 (금청일성계)    오늘 닭 울음소리 듣고

丈夫能事畢 (장부능사필)    장부의 큰일 능히 마쳤네

忽得自家處 (홀득자가처)    홀연히 내 마음의 본 고향을 얻었으니

頭頭只此爾 (두두지차이)    두두물물이 다만 이렇고 이렇구나

萬千金寶藏 (만천금보장)    천만금의 보배 같다는 불설(佛說)대장경도

元是一空紙 (원시일공지)    이제 보니 한갓 흰 종이(紙)에 불과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