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o 세계 인터넷바둑의 허브
  • 겜임&채널
7회/ 지옥에서 바둑 두던 사람
Home > 컬럼 > 바둑의노래
7회/ 지옥에서 바둑 두던 사람
2010-04-03 조회 9037    프린트스크랩

 

베델은 1878년 한양에 들어와 포교를 활동을 하다 우포청 기찰들에 체포되어 수감되어 있다가 얼마후 좌포청으로 이감되어 본격적인 심문을 받는다. 베델은 서양인 신부라는 신분 탓에 좌포도청 수장인 이경하(李景夏, 1811-1891)와 대면을 한다. 베델은 이경하의 인상착의를 이렇게 기록한다.


- 60세 정도에 하관이 길고 눈이 호랑이 눈처럼 부리부리하다. 잔인하고 강해 보이는 인상이다.


이경하는 대원군의 우익을 자처하며 포도대장 훈련대장 형조판서를 두루 역임한 강골이다. 특히 이해관계에 능해 대원군이 실각한 후에도 임오군란의 책임을 지고 고금도에 유배를 갈 때까지 금위대장 어영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치는 정치적 수완가이기도 했다. 베델은 그런 이경하의 성격을 잘 파악하고 있다.

베델은 좌포청의 옥사를 우물정(井)자 형식이라면서 출입구를 중심으로 시계방향으로 간수방. 단순잡범방. 사채 세금체납자방, 중범방. 창고 화장실이 있는 구조라 한다. 정(井)자의 한 가운데는 물이 항상 흥건하게 고인 진창이 있고 위생상태가 최악이라 했다.

베델은 단순잡범방에 수감되어 있었는데 천주교인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옆방은 사채와 세금체납으로 잡혀온 사람들이 있었고 그 옆방에 살인 강도 절도 등 중죄인들이 수감되어 있다고 했다. 베델은 감옥 안의 불량한 위생상태와 형리(간수)들의 잔인무도함을 고발한다. 간수들이 수감자들을 상대로 온갖 패악을 서슴치 않았다는 것이다.

먹을것은 물론 생필품을 단 한가지도 국가에서 배급하지 않는 것이 조선의 감옥이었다는 것이다. 베델은 가족이 있는 수감자는 먹을것과 생필품을 보급받고, 그렇지 못한 수감자는 굶어(?) 죽는 시스템으로 조선의 감옥을 이해한다.

간수들의 행패는 인격모독은 물론 수감자들을 구타하는 것이 일상이다. 간수들의 이미지는 사람을 패는 것으로 재미를 삼는 야차(夜叉)로 인식되어 있다. 간수들 중 가장 하급인 망나니(劊子手)의 모습은  압권이다. 망나니는 포도청의 고용직으로 죄수들의 사형과 고문을 담당하는 전문직답게 수감자들은 망나니를 저승사자로 이해한다.

취침 무렵 옥사 안으로 망나니가 들어오면 수감자들은 오금을 저리고 숨을 곳을 찾다가 망나니와 얼굴을 마주한 수감자는 비명을 지르고, 담이 약한 사람은 기절을 했다고 한다. 망나니는 수감자들을 상대로 무자비한 구타와 행패를 가하고 그러다 죽는 사람이 나오면 고문도구를 넣어 두는 창고에 시체를 집어 던지고 다음날 '시구문'에 내다 버리면 그것으로 끝이라 한다.

베델은 조선의 포청에서 죄수가 죽으면 면책특권이 있었던 듯 이해한다. 그만큼 조선포청의 위세를 강조한 것이다. 대명률과 경국대전 등 엄격한 형법이 존재하던 조선도 후기로 오면서 기강이 무너지고 있는 모습이다.

베델은 물론 다수의 서양인들이 본 구한말의 조선의 형벌과 고문은 상상 이상이다. 어떤 서양학자는 동아시아 삼국 중 조선의 고문이 가장 악랄하다 평가한 사람도 있다. 그들의 기록을 다는 믿지 못하더라도 조선백성들에게 포도청이나 지방 관아의 형방은 공포스런 존재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베델은 감옥 안에서 한가하게 바둑판을 놓고 수(數)를 세는 간수장을 기록한다. 혼자서 바둑판을 놓고 수를 셌다는 것은 복기(復碁) 장면을 보고 말한 것이다. 백면의 서양인 신부의 눈에 포착된 복기의 모습이 신기하다. 서양인의 눈에는 복기의 모습이 무엇인가를 셈하는 것으로 보였던 것일까. 간수들은 바둑과 장기 또는 마작을 즐겼다고도 한다. 베델은 복기하는 간수장에게서 작은 칼을 얻어 손톱과 발톱을 깎기도 한다.

낮고 비좁은 햇볕도 들어오지 않는 습한 감옥 안에 야차같은 간수들과 저승사자인 망나니 그리고 일단의 수감자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신부인 베델이 지옥도로 본 것은 이해가 간다. 베델은 그 속에서 바둑판을 놓고 수(數)를 세던 간수장을 기억하고 조선 감옥 안의 슬픔을 증언한다. 지남규는 다시 일기를 쓴다.

 

4월29일. 날이 화창하다(日朗).
종일 정신이 없다. 대목만큼 장사가 잘 되었다. 처가 계속 아파 약국에서 약을 더 지어 왔다. 밭일을 한 인부들에게 국수 술 담배값으로 5냥을 썼다.

 


  • 페이스북
  • 구글+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트위터
이전 다음 목록
┃꼬릿글 쓰기
youngpan |  2010-04-03 오전 1:00:1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고놈의 담배는 예나지금이나..
태음인이 많은 우리나라는 폐 약한 분들이 절대다수인데..참 안타깝기도 하죠..
뭐 앞에 가는 사람이 담배를 피우면서 가면..정말 보기 싫죠..

기다렸다가 연기 지나면 가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추월하죠..
담배에 빠진 사람들은 참 고치기도 어렵다더군요..  
유마행열차 |  2010-04-03 오전 5:39:3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서양신부들의 활약상이 대단했군요.
유마행열차 군대서 소대원들 엄청 학대하던 (밤이면 술 먹고) 선암하사가 생각나네요. 그립기도 하고요. 저도 나이를 먹었나요  
유마행열차 그 선임하사도 바둑 좋아했는데 방패부대 시절 다시갈 수 있디면 .
우당탕 |  2010-04-03 오전 8:26:4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많이 배우고 갑니다.  
동묘땅꼬마 |  2016-06-07 오후 9:40: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여의도에만 산다는 300마리 돼지들을 조선감옥으로 보내야 긋구만,,,,부럽다 조선시대,,,,,잉? 북조선이 조선인가? 그래서 그렇쿠나,,,  












* 띄어쓰기 포함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000 / 400바이트)
대국실입장하기
다운로드 이용안내 고객센터
정회원가입
오로볼구매
가장 많이 본 기사
스폰서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