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사(瑞光寺) 도신스님을 대여섯 번 만났다. 스님이 펼치시는 '바둑 템플스테이'가 바둑 마니아를 자처하는 필자의 입장에서 의미가 있다고 보고 나름의 근거를 찾는 작은 논문 한편을 쓰느라 불식간에 보름의 시간이 지나갔다. 참으로 시간은 바람이고 물이다. 이 과정에 박성균(53) 사범과 몇날을 함께 했다. 바둑의 기력을 떠나 그가 기울이는 바둑사랑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서산 당진 지역의 바둑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도신스님, 최기남, 박재웅 사범을 위시해 '원석회(서산 당진 바둑인들의 모임)' 그리고 박성균 사범까지 이들 바둑인들의 분투(?)는 지켜보는 사람의 가슴을 뛰게 한다. 지방 바둑이 시들해진다지만 저들이 있는 한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피어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10월5일. 맑음.
박초시 등과 가까운 산사를 찾았다. 푸른 산봉우리를 감상하니 기분 상쾌하고 시원하다. 스님과 바둑을 두었다. 이수기(고수 다음 수준)의 기력이다. 스님은 동리 윤모와 처남매부지간인데 두 사람이 만나 서로 반가워 했다. 바둑판을 둘러싼 모든 사람이 즐거워 했다.

(晴 朴與近郊庵 同行 淸華之遊 何等快事壯觀 僧對局 能二手碁 僧洞里尹也 爲娚妹 二人相樂 方圍快樂也)

지남규는 박초시 등과 가까운 산의 암자로 바람을 쐬러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스님과 바둑 한판을 둔다. 스님의 기력도 어느 정도 된 듯하다. 마침 스님이 지남규 동리의 한 사람과 처남 매부의 인연이 있었던 모양이다. 두 사람이 반가워 하는 모습에 참가자들 모두가 즐거웠다 하고 있다. 사람 사는 모습의 반영이다.

수덕사 방장이자 종정이었던 원담스님 작품. 
인생사 하룻밤의 꿈이고 천지의 일은 한판의 바둑이라 쓰고 있다.

절집에서  바둑을 두는 모습은 이질적이지 않다. 많은 고승대덕들의 바둑시와 바둑글이 존재해 오는 이유도 나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승려들이 쓴 바둑글 중 혜견(慧堅, 1830-1908) 스님의 바둑글이 좋다. 그리고 매월당(梅月堂, 1435-1493 )의 바둑시 한편은 손과 발을 오그라트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한그루 배나무에 핀 꽃 고요함을 짝하고/ 가련하다. 달밝은 날을 헛되게 보내누나/  청년은 외로이 창가에 턱을 괴고 앉아 있고/  어디에 계시나 옥통수 부시는 님은/  짝잃은 물새 혼자서 날아가고/  님 잃은 원앙은 맑은 강에서 노는데/ 그 집에서 만나 바둑 두자던 약조 잊으셨나/  밤이면 창가에서 불꽃점을 친다네.

( 一樹梨花伴寂寥/可憐辜負月明宵/靑年獨臥孤窓畔/何處玉人吹鳳肅/翡翠孤飛不作雙/鴛鴦失侶俗淸江/誰家有約敲碁子/夜卜燈花秋倚)

매월당이 만복사의 주지로 있을 때 쓴 시다.

가을에서 겨울의 사이(際)다. 사이는 언제나 위험하다. 일기불순한 밤에 책상 위에 종이를 내놓고 편지를 쓴다. 물론 발신자도 수신자도 없는 편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