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어수선하니 지남규의 생활도 영향을 안받을 수 없다. 일단 생업인 상점운영이 여의치 않다. 시절이 이러한 데도 지남규는 친구들과 술 바둑 정담 등을 그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태평성대를 사는 것 같다. 지남규는 자신의 나이가 사십에서 오십을 바라본다고 말한다. 지남규의 나이가 가늠되는 대목이다. 지남규는 문득 세계 속에 놓인 자신을 돌아보며 의기소침해 한다. 문장이나 바둑 어느 것 하나 신통치 못한 것이 아쉽다는 것이다.

9월29일, 맑음.
일이 없으니 음풍농월과 바둑 두는 것이 일이 되었다. 대장부의 사업이 가소롭다. 사십에서 오십을 바라보며 사람이 이 모양이 되었다. 글자는 편지를 알아보는 정도고 어린날부터 뜻을 두었던 바둑은 하수를 겨우 면했으니 세상일이 허깨비다. 그렇다.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수천 판을 두고 성심을 다해야 하거늘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바둑)의 묘리도 얻지 못했다.

(請 不業 吟風譚碁說酒事業 長夫業可笑也  四十五十間 人而至此  文字之諶通簡札 志習幼年方念時 碁力下品而 世間諸物  槩多有化 然 向善碁執念而式至千萬 算 盡熱誠 終爲吾不行 所妙不得)

지남규는 문장은 겨우 간찰(편지)를 주고 받는 정도고 바둑의 고수가 되어 보겠다 마음 먹었던  다짐도 겨우 하수를 면한 정도였다며 불혹에서 지천명을 바라보는 자신을 반성(?)한다. 사람은 미친 듯 무엇인가를 추구하다가도 일순 걸음을 멈추고 지나온 것들을 돌아보는 지혜도 필요하다고 본다. 무엇보다 자신을 안다는 것만큼 세상을 살아내는 좋은 방법은  없을 듯하다.

책을 읽다보면 여러 개성을 만난다. 조용하고 차분하면서 세상만사에 순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대를 등지고 시대의 조류를 거부(背時嗜而違俗好者)하는 자세로 개성을 발산하는 사람들도 보게 된다. 전자가 '지남규'라면 후자는 '김옥균' 같은 경우다. 시대를 순응하는 사람과 거부하는 사람의 간격은 어느 정도일까.

(순조때 한 선비의 간찰)

문자는 겨우 간찰이나 읽고 쓰는 정도라는 지남규의 발언이 뜨끔(?)하다. 한문(文言文)으로 편지를 주고 받을 정도라면 이 사람은 문리를 튼 사람이다. 오늘날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옛사람들의 간찰(편지)은 수십 만 건이다. 이 많은 간찰 중에서 무작위로 뽑은 '광초서'로 쓰여진 간찰 몇 통을 면전(面前)에 보여주고 그 자리에서 답장을 써보란 미션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국내에 몇 명이나 될까. 

아마도 열손가락(?) 안쪽일 것이다. 허전하고 쓸쓸하지만 아마도 그것이 현실일 것이다. 하여 필자도 저 몇 자에 불과한 지남규 스토리 한쪽을 파악하는데 꼬박 하루가 걸리는 것를 부끄러워하면서도 중언부언한다. 조금 더 노력을 해 볼 요량이다. 지남규가 자신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고민한 날은 1894년 9월29일(甲午年 甲戌月 壬寅日)로  달은 초승달이고, 양력으로 따지면 1894년 10월27일 토요일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