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남규는 한양길에서 바둑의 갈증을 만족스럽게 풀지 못하고 내려온다. 마을에서는 박초시를 비롯한 많은 벗들이 반겨준다. 지남규는 그들과 환영의 술자리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자기 전에 바둑을 생각한다. 우내(宇內)라는 표현이 재미있다. 우내는 우주(宇宙)와 육갑(六甲)과 같은 말이다. 세상이란 의미다.

지남규는 바둑의 출발이 천문과 병법에서 왔다고 믿는다. 지남규는 '마융'이나 '노자'의 오리사리한 이론보다는 천문과 병법이 바둑과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다.

9월27일. 맑음.
집으로 돌아왔다. 박초시 등이 반겨줬다. 밤에 바둑을 생각해 보았다. 바둑은 병법이 시초라 한다. 천문이 시초란 말도 있다. 진퇴 포치 전개 등의 자유자재가 우주와 비슷하기도 하다. 하여 옛사람들은 천하의 요물이 바둑이라 한 것일까.

(晴 歸家 朴等歡迎 夜碁思也 此碁以爲兵法此以爲象天文 而進退 包置 戰開 造從之自由自在 似宇內 故云 碁天下奇物矣)

바둑이 병법이나 천문의 반영이란 말은 많은 자료와 최근의 학자들의 연구에서도 볼 수 있으니 설명을 생략해도 될 듯하다. 다만 정조임금의 말은 기억할 만하다. 정조는 '병학지남'을 출간하면서 서문에 바둑과 병법을 비교한 글을 쓰고 있다.

(군대에 법이 있는 것은 바둑에 기보가 있는 것과 같다. 이 병서를 읽는 자들은 바둑의 고수가 기보가 바둑의 전부로 알지 않은 것을 유념하기 바란다. 이것을 안다면 곧 병법을 안다 할 것이다.) (자료 홍제전서)

9월28일. 말음.
물건이 없다. 상점이 개점 휴업이다. 있던 물건을 모두 팔고 나면 앞으로의 장사가 걱정이다. 물가는 뛰고 팔 물건은 없다니.

(晴 無物休店也 旣之此物 則前頭賣買 恐難成形 是乎旀 物價甚高 賣物者鮮小矣)

지남규의 일기 중에 간혹 이두식 한자가 보인다. 시호(是乎~)가 그것이다. 是去乎(이므로) 是去等(시거든) 是乃(이나) 등의 표현은 뜻글자를 소리 언어에 맞추다 보니 생겨난 현상이다.

지남규가 한양을 방문하고 온 후부터 세상이 급격하게 혼란스러워진다. 시장에 물건이 공급이 안되어 물가가 천정부지로 뛰고 팔 물건도 살 물건도 없다고 한다. 이것은 전쟁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아마도 아산만에 상륙하여 경기도 일원에서 전쟁을 벌이던 청일전쟁의 여파일 것이다. 조용하던 지남규의 일상에도 세상풍파가 밀어닥친 것일까.

(바둑인 김옥균에 대한 탐험기를 이달 중에 5부작으로 올리겠습니다. 아마도 15일쯤이 될 듯합니다. 말로만, 글로만 보고 듣던 김옥균을 직접 취재하고 느낀 감정과 새로운 자료들이 많습니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지남규와 김옥균 두 분이 새삼 아름답고 따뜻하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