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남규는 김과 해어진 후 주변에 적당한 기력의 소유자가 없어 무료한 날들을 보내다가 한양에서 그 갈증을 푼다. 매일 바둑을 두는 형리는 물론 박초시도 기력이 떨어지는 관계로 긴장된 바둑을 둘 기회가 없는 것도 스트레스였던 모양이다.
지남규는 내심으로 한양 '조'와의 한판 대국을 결심했던 듯하다. 여관을 잡고 새벽에 일어나 기보를 보며 마음을 진정시킨 후 '조'의 집을 찾은 것을 보아도 그렇다. 그러나 조는 그리 한가하지 않은 사람이다. 언젠가 지남규가 사는 동리에 왔었던 것처럼 한양 '조'는 또 다른 지방으로 바둑여행을  떠나고 없었다.

9월24일. 맑음.
아침일찍 일어나 양치질과 세수를 하고 책상에 기보를 펼쳐놓고 앉았다. 여관틀안의 나무들이 푸르고 새들의 울음소리 가득하다. 조를 찾아 가는도중에 어물을 샀다. 조는 지방출타중이어 없었다. 최모라는 사람과 바둑 몇판을 두어 모두 졌다. 황망하여 여관으로 돌아와 술을 마시고 잤다.

(晴 朝起 養洗而後 坐案 錄松內庭 方鳥鳴嚶 碁譜開案 往趙宅 到中賈魚物 方趙遠出他 不逢 崔某與對局 數次敗而遑忘歸館  飮酒後 眠)

도중에 생선전에서 어물을 선물로 구해 들고 갔지만 '조'는 출타중이다. 지남규는 조의 사랑방에 진을 치고 있던 사람들 중 '최모' 와 바둑을 두어 여러 판을 지고 황망히 여관으로 돌아온다. 조의 사랑방은 바둑인에게 무상으로 개방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9얼25일. 맑음.
아침에 다시 조의 집을 찾아 최와 바둑을 두어 이기고 지고 했다. 최가 말했다. "나는 조에게 한점이 부족합니다. 댁도 선기라 부를만 합니다. 앞으로 잘 지냅시다. " 말은 듣기 좋지만 무엇인가 허전하다. 나는 재주와 복이 있는줄 알았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걸 알았다.  세상을 넓고 재주꾼은 많다. 재능과 복은 하늘이 주는 것이다. 어찌 인력으로 좌지우지 하겠는가. 껄껄 웃을 일이다.

(晴 朝再趙宅行 崔與對局 勝敗兩分也 崔曰 余趙比 一點不足 宅善碁不足不爲可 願至近 言則善也 何心虛虛也  我有才與福 方不然 六甲廣 才士雲林 才福之來 自有天數 豈人力所可銷長 可可笑之也)

세상은 넓고 재주꾼은 많다고 자탄을 한 지남규는 다음날 최를 다시 찾아가 바둑을 두어 이겼다 졌다 한다. 지남규의 승부욕이다. 최모는 조가 자신보다 한점이 기력이 높다고 한다. 지남규는 그 말을 듣고 세상이 넓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고 풀이 죽는다. 인간 지남규의 앞에 놓인 고수의 길, 바둑의 길은 그리도 멀고 험했던 것이다.

오가사와라를 가다

마니아라는 말이 있다.

조선사람들은 마니아를 '벽치(癖癡)'라 했다. 벽과 치가 없는 사람을 맛이 없는 무미건조한 사람으로 그들은 이해했다. 지난 여름 필자는 청포대 바닷가의 한 펜션에서 일본에서 온 아오이겐타로(劍太郞, 56) 님과 이틀밤을 보냈다. 바둑을 두고 김옥균에 관한 몇가지 자료를 교환하고 즐거웠다. 그 분은 바둑마니아였고 동시에 김옥균의 팬이었다.

그 분이 이번에 필자를 일본으로 불러줬다. 며칠간의 단순한 방문이지만 필자는 이번 기회를 이용해 김옥균이 대략 3년여 유배살이를 한 오가사와라(小立原島)까지 다녀오겠다 마음을 먹었다. 도쿄시바 항에서 매주 한번 출항하는 여객선으로 25시간(뱃길 1천 킬로미터)이 소용된다는 절해고도라 일본인들도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곳이다. 그런 곳이기에 백년전 조선사람 김옥균이 유배를 갔을 것이다. 오랫동안 탁상에서 김옥균을 그려왔던 필자는 '아오이켄타로' 님의 호의와 '창사 10주년을 맞은' 사이버오로의 지원을 받아 떠난다.

김옥균과 본인방 수영의 전설이 깃든 섬 오가사와라에서 필자는 김옥균을 대면하기를 꿈꾼다. 그 대면기는 11월중 소개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