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남규는 1년동안 세번이나 한양에 간다. 그중 두번은 순전히 바둑을 두기 위해서다. 지남규는 한양에서 친지를 만나는 일 외에, 고수를 만나 바둑을 두고 기보를 사고 도회지 바람을 쐬며 시골살이의 울울함을 나름대로 달래기도 한다.

9월22일. 맑음.
한양에 갔다. 가는 도중 동행인이 있어 함께 갔다. 한양 동대문에서 그와 헤어져 사동여관에 묵었다. 단골집이여 내가 들어서자 먼저 와 있던 사람들이 방안에 나에게 방을 비워주고 집 모서리방으로 옮겼다. 저녁을 먹은 후 곤하게 잠을 잤다. 경비로 7냥을 썼다.

(晴 往京行 到中鄕人同行 至東門分別 到寺洞館 舊住越房 雜牌 見我到遑忙 移件物角于小耳房 夕飯後 困頓就眠 路子七兩用)

'사동'은 오늘날의 인사동을 말한다. 인사동은 조선시대 한성부의 관인방(寬仁坊)과  대사동(大寺洞)에서 가운데 글자인 인(仁)과 사(寺)를 따서 부른 것이다.

인사동에는 숙박업소가 밀집되어 있었다. 육조거리와 육의전이 가까운 거리에 있어 업무를 보러오는 지방 관원과 지방상인들의 숙박편의를 위해 자연스럽게 생긴 거리였다. 지남규가 단골집에 들어서자 방안에 있던 사람들이 방을 비워주고 다른방을 옮겼다는 것으로 보아 상인보다 더 낮은 계급의 사람들인 모양이다.

9월23일. 맑음.
아침에 남산을 돌아보고 와 밥을 먹고 진고개 박국을 갔다. 일본인들이 바둑을 두기에 그들과 몇 판을 두어 이기고 지고 했다. 기보 한권을 사서 돌아와 여관 주인과 야심토록 대화를 나눴다.

(晴 朝出南山 觀光入來 喫飯而往博局 倭人圍碁 其人對局 伴勝半敗也 得碁譜而歸來 館主夜深談懷)

지남규는 진고개 박국을 다시 찾는다. 그곳은 일본인들의 세상이다. 1894년 충무로 일대에는 수천 명의 일본상인들이 들어와 일본인 거리가 조성되어 있었다. 사진관 음식점 양복점 당구장 등 현대식(?) 상점들이 자리를 잡고 '서점' '기원'까지 일본의 도회지와 다를 것이 없을 정도였다.

지남규는 일본인들과 바둑을 두어 이겼다 졌다 했다고 한다. 지남규가 하수들과 바둑을 두기 위해 박국을 찾은 것은 아닐 테니 '박국'에는 어느 정도의 수준의 고수들이 있었을 것이다.

지남규는 바둑에서 기보를 구해 여관으로 돌아와 여관주인과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한양고수 '조'를 만나러 그의 집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