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남규는 일상을 나름으로 살면서 의와 명이라는 삶의 가치에도 조금은 신경을 쓴다. 하루는 박초시와 기방을 찾아 밤을 새우고 생뚱맞게 의와 명과는 먼 사람이 자신이라며 자탄을 하는 것을 보면 그 또한 세상의 시선에 부담을 느끼는 평범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지남규가 말하는 의와 명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박지원이 말한 '의리는 공명정대고 명은 개인의 비루함이다. 의리의 길에 나서 이름까지 추구한다는 것은 착오다( 義之爲名也 夻而大 名之爲名也 私而鄙 好子之論也)'라는 거창(?)한 것은 아닐 것이다.

8월21일 비. 쌀쌀한 바람.
상점을 쉬고 밤에 박초시와 읍내 기방에 갔다.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며 즐겁게 놀았다. 가을밤에 듣는'자야가'가 좋았다. 희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나는 의와 명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雨寒風  休店 夜朴與邑妓房 而飮酒歌舞 樂樂也 秋風好子夜歌 嬉作不明日 余義與名之不關焉)

장사로 생도지망이 해결되고 가끔은 지역유지와 기방을 찾는 사람이 지남규다. 지남규는 아등바등 하지 않는다. 원만한 성격에 놀기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탓에 엉뚱한 사건에 끼어들어 곤혹도 치르지만 전반적으로 여유가 있다.

가을밤 기방의 모습이 선명하다. '자야가'를 들었다 했으니 기생들의 노래가 분명하다. 자야가(子夜歌)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조선후기 가장 유행했던 기방의 노래를 하나 소개한다. 제목도 '자야가'다.

좋은 향기는 향수 때문이라지만

얼굴 화장 때문이란 말은 싫어요.

하늘이 (우리) 만남을 거부치 않았으니

내가 서방님을 만난 것이지요.

(芳是番所爲 治容不敢當 天不奪人願 故使儂具郞)

조선의 기생들이 하나의 문화로 포장되는 과정에 낭만과 철학(?)이 있는 기생들의 삶이 강조되기는 하나, 기본적으로 하룻밤 풋사랑을 미친 듯 반복해야 하는 기생의 운명이기에 이 노래는 역설적이다. 기방에서 기생과 손님이 만나는 것은 회전문식이 규칙이다. 방문 순번대로 정해진 것이 기방만남의 법칙인 거다. (물론 일부 유력자나 부호들은 예약제를 애용했겠지만) 이 무도하고 무식한 남녀의 만남을 강이천( 姜彛天)은 '한경사에서 '이름도 성도 알 것 없이 그저 평안하신가 묻는다(不通性名問平安)'며 고발한다.

지남규는 기방을 다녀와 문득 의와 명에 대해 생각한다. 가을밤 기방에서 보낸 지남규의 시간이 당시의 '풍류'의 일종이겠지만 지남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줄기에서 두 송이 꽃이 피는 '병두연(竝頭蓮)'의 기다림은 아니더라도 뽕밭의 약속(桑中約) 정도는 담보돼야 하는 남녀의 만남이 벼락치듯 해서야 되겠냐고 묻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