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다. '회남자'에 나오는 말인데 변화무쌍한 인간살이의 속성을 잘 표현한 명구다. 노자가 말한 "화는 복을 의지하고 복은 화에 숨어 있다(禍兮福所倚福兮禍所伏)"는 말보다 전자가 더 실감난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사실 기복도 심하지 않다. 기복이 심한 삶이 원만한 삶은 아닐 것이다. 추석을 보낸 지남규는 큰 충격을 받는다. 자신을 형이라 부르며 따르던 '상개'가 죽은 것이다.

8월18일. 맑음.
형개는 나를 형이라 불렀다. 형개는 스스로 나를 형으로 받들겠다 했고 형리가 증언자였다. 나 또한 형개를 그렇게 대했다. 그런 협객 형개가 죽다니(晴 介我呼兄 以介而有 自薦之約 以吏而有 自生之證 以余而有待介 然俠客介且死矣).

자세한 언급이 없어 알 길이 없으나 형개는 관에서 맞아 죽은 듯하다. 조선의 관아에서 사람이 맞아 죽은 경우는 의외로 많다. 조선의 법인 경국대전에 고문의 방법과 절차 고문기구의 제약 등 엄격한 규정을 두고는 있으나 현실의 그것은 전혀 아니(?)였던 듯하다.

중인 이하의 신분이  관아에서 형신을 당하다 죽었다 해도 딱히 손해배상의 절차 등이 마땅치 않았던 조선이다. 수사관아 '형방'에서 왈짜 형개가 감옥에서 맞아 죽은 것은 큰 사건도 아닐 터이다.

8월19일. 비.
아침일찍 형리가 와 형개집에 갔다. 삼칸초가 안에 상개의 노모가 애통해 하며  앉아 있기에 문안을 했다. 상개모가 다른말 하지 말고 어서 들어오라 했다. 형개영전에 엎드려 조의를 표하고 50냥을 부조하고 왔다. 참으로 탈 많은 한해다(雨 曉往刑吏與介家 三間草家內 哀痛介母 問安 介母願子無一辭速入 形吏與我伏于內庭 弔儀五十兩歸家也 眞多難歲也).

형개를 물고를 낸 관장은 탐관오리의 하나로 보인다. 지남규는 이런 관장의 행태를 몇번 못마땅한 듯 지적한 바 있다. 조선후기의 기록에 보이는 지방행정의 모습은 말이 아니다. 열약한 살림에 독한 세금징수가 트레이드마크(?)인 조선지방 관아의 모습을 '박제가'는 1797년 '북학의를 올리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정조에게 고발하고 있다.

지방시골의 대부분의 백성들이 나무수저와 나무그릇을 사용하는데 이유를 알고 보면 세금을 못내 관아에서 모두 걷어 간 탓이란 것이다. 신유한(申維翰, 1681-?)은 1739년 연천현감으로 부임하여 관아의 모습을 생생히 기록하고 있는데 코미디가 따로 없다.

내가 고을에 도착했을 때 말고삐를 잡은 아전이 가시덤불을 헤치고 작은 집을 가리키며 이곳이 관아의 '아문'이고 창고올시다 한다. 내가 마루에 앉자 아전들과 하인들 그리고 밥짓고 빨래하는 관노 십수 명이 나와 인사를 하는데 정강이도 못가린 옷과 자는 곳도 일정하지 않아 새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민호는 천여 호인데 반이 양반이고 세금은 무거워 풍년이 든다 해도 세금을 낼 사람이 열에 넷 정도다. 그러나 조정의 세금징수는 추상같아 채칙이 악독하다. -신유한일기

형개의 죽음도  아마 이런 분위기 속에서 생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 가난하고 무도한 시대에 협객의 죽음은 아무런 감동도 파문도 일어나지 않는다. 허전한 상갓집을 지키는 노파와 50냥을 부조하고 나오는 지남규의 에피소드만이 저물어가는 시대의 흔적으로 남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