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남규의 생활은 지극히 한가한 날의 연속이다. 생업인 장사와 취미인 바둑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한다. 이런 상황에서 지남규는 활쏘기와 독서 등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지남규의 독서는 '서상기'나 '희설'류의 책에 그치고 있다. 깊은 학술에 대한 관심이나 흥미와는 거리가 있다.

8월4일. 맑음.
물건을 들였다. 집안 청소를 하고 겨울에 쓸 장작을 맞추었다. 이익 30냥이다. 고기와 담배 술 5냥을 썼다.

8월5일. 맑음.
추석이 열흘 앞이다. 박초시가 부르기에 가서  바둑 몇 판을 두고  강가 활터에 가  몇 순(한순 5발)을 쏘고  돌아왔다. 밤에 '희설'을 읽었다. 읽을만하면 다음권을 사라니...장삿속이 심하다.

추석이 가까운 가을밤에 지남규는 '희설'을 읽는다. 중요한 대목에서 책이 끝나며 다음권을 기대하시라는 예고 멘트가 얄미웠던 모양이다. 다음편을 기대하라(且看分解)라는 멘트는 18-19세기 소설의 한 특색이다. 지남규가 읽은 '희설'이 어떤 책인지는 알 수 없으나 비슷한 시기의 '희설'로 그 내용을 엿볼 수가 있다. '절화기담(折花奇談)'이란 책으로 19세기 조선사람이 쓴 한문소설이다. 바람둥이 이생(李生)이 유부녀 '순매'를 꼬드기는 장면이다. 이생의 끈질긴 꼬드김에 매순이 물래방앗간(?)으로 나와 답변을 한다.

댁이 이토록 간절하고 외롭다 하시여 내가 밤을 타고 이곳에 나오기는 했으나 몸이 떨리고 두려워 잠시도 가만 있을 수 없습니다. (郞君之勤意 不可孤焉 故敢此乘問 來蹈是期身苦驚彈之鳥 小須頃)

남편 있는 여자가 외간남자의 꼬드김에 밤이슬을 밟고 와 불안한 마음의 일단을 피력한다. 보통 담력(?)의 여자가 아니다. 이생이 순매의 말을 받아 넘기며 대답을 한다. 오입(誤入) -소설은 이렇게 쓰고 있다- 쟁이의 능청이다.

그대는 이미 이곳에 와 있고 마침 좋은 밤이니 떨 것 없다오. 혹여 수많은 일들이 생긴다 해도 그냥 이 밤을 즐깁시다. (汝旣到此 如此良夜 不可虛度 雖有許多難事 汝勿憂疑 以暢樂事 )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는 것이다. 욕심만 채우려는 사내의 심보가 고약하다. 이생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두려움에 떠는 순매를 어르고 달래며 다음의 진도에만 관심을 표한다.

허리춤을 풀고 치마를 들추며 수작질을 시작한다. 순매의 우유빛 가슴이 출렁거리고 옥같이 흰 피부가 반짝인다. 그 순간 불청객이 찾아와 문을 두드리며 안에 순매 있냐고 묻는다. (困解去裸帶 弄手深戱  酥胸蕩瀁不定 玉膚潤滑難式     剝啄叩門 大聲呼 曰 梅乎安在?)

그리고 다음편을 기대하라며(且看下文分解) 끝을 맺는다. 조선의 한문소설은 의외로 많다. 대부분 18-19세기의 것으로 그 수가 수백 종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작품들 속에는 의외로 단단한 문장과 재미있는 스토리를 담아낸 작품들이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 '절화기담'을 잘 읽어보면 김시습의 '금오신화'의 범주를 넘어선다. 이런 작품이 겨우 수년 전에야 고문 연구자 '김경미' '조혜란' 두 사람의 노고로 세상에 알려졌다. 절화기담의 작가는 후기에 말한다. 지나친 중국사대가 '희설'마저도 조선의 것을 천대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