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노래한 시를 꼽으라면 임억령(林億齡1496-1568 )의 시 한편이 가품이다. 임억령은 호남의 한 산수간으로 은거하여 집앞에 작은 연못과 정자를 지어놓고 여름을 나며 외로운 산골에 해가 지면 창룡이 품어내는 시원한 물을 모아 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다(古峽斜陽裏 蒼龍噴水銀 襄中如可拾 欲奇熱中人) 했다. 

임억령이 말하는 창룡은 동방칠숙을 말하는 것으로 동궁창룡(東宮蒼龍), 즉, 각-심-기(角心箕)의 별자리를 말한다. 일명 용각성(龍角星)으로 불리는 이 별자리는 9월초 이른 새벽 동쪽 지평선에 머리가 나타나 10월초에 몸체가 보이는데 동양사람들은 이를 잠룡(潛龍)에서 견룡재전(見龍在田)의 시간으로 보고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예비하는 시간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지남규는 임억령과 같은 귀거래사를 읊을 입장은 아니지만 나름 제한적인 생활공간 안에서 피서지를 찾아 동분서주한다.

7월3일. 맑음.
며칠간 장사가 엉망이다. 아우가 고기 5냥어치를 사왔다. 박초시가 여주를 거쳐 한양에 갔다가 돌아왔다. 오후에 박초시와 강변에 갔다. 하얀빛의 강변 모래밭에 천막이 쳐져 있는데 모두 천렵하는 사람들이다. 어떤 천막에는 아낙들과 어린 여자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드는데 나설 필요가 없어 강변의 나무 그늘 아래서 조용히 앉아 있었다. 내일 모래가 바둑대회다.

(前日利益不實 同弟肉五兩 朴初試自驪州上來京 今始下來 午與朴江邊行 白廣明沙往往設幕 皆是川獵人也 各幕女溫少孃 戱謔籍矣 不必間攝 故從江邊木陰 坐靜 日暮歸來 二日後碁宴也)

한달전 나라에 난리가 나면서 자연스럽게 연기되었던 바둑모임의 날짜가 돌출(?)한다. 모임의 좌장인 박초시가 여주를 거쳐 한양을 다녀온다. 어느날 오후 지남규는 박초시와 강변으로 나가 더위를 식힌다. 강변에는 천막을 치고 피서에 나선 사람들이 많다. 피서객들 중에는 여자들도 상당수다. 역사를 조금만 들추고 들어가 보면 '남녀칠세부동석'이니 '아내를 천하게 대했다'거나 '여자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다' 등의 오해를 만나게 된다.

우리가 아는 조선시대의 여성상은 한마디로 질곡과 억압이다. 그러나 사실의 그것은 많이 다르다. 사회공동체 안에서 여자를 옥죄던 사회적 메시지(?)가 남아 역사의 현장을 어지럽히는 결과라 하겠다. 역사의 기록은 남편에게 할말을 하는 당찬 아내들과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고 죽은 어린딸을 부여잡고 수일간을 통곡하던 실로 가정적인 아비들을 쉽게 만나게 된다.

7월4일. 맑음.
강변에 장막을 다섯 개를 쳤다. 병방(兵房)에서 큰 장막 두 개를 빌려왔고 나머지는 동리의 치알이다. 바둑기물과 술 고기 안주를 준비했다. 그것은 내가 맡아서 했다. 김이 아쉽다. 어디서 잘 지내고 있는지. '한양 조'가 내려와 박초시댁에서 잤다.
 

바둑모임이 착착 진행된다. 동리 천막으로도 모자라 관에서 천막을 빌려오고 바둑판 바둑알 그리고 술과 안주를 준비한다. 한양에서 초대한 바둑고수 '조'도 내려와 박초시집에서 하루를 묵고 내일을 준비한다. 이 모임의 집사격인 지남규의 손과 발이 분주하다. 이 와중에도 지남규는 김을 생각한다. 어디서 밥은 먹고 다니는지 걱정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저런 사람이 자신의 주변에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덕은 사람을 아끼고 가엽게 여기는 곳에서 생기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