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은 절해고도 같은 강진유배 시절 선비의 여름나기로 여덟 가지가 좋다고 추천했다. 여름이면 솔밭에서 활쏘기가 좋고 여자아이들은 느티나무 아래에서 그네를 타면 그만이라 한다. 정자 그늘 아래서 투호를 해도 좋고 대자리를 깔고 앉아 바둑두는 것도 좋고 달이 뜨면 개울가로 가 탁족을 하면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분 충만하다고 한다. 지남규의 여름도 다산선생이 추천한 여름나기(消暑八事)와 비슷하다.

7월1일. 맑음.
행인을 구경하지 못할 정도로 덥다. 장사도 파장이다. 강가에서 천렵을 했다. 마침 박초시가 개를 잡아와 술을 많이 마셨다.

7월2일. 맑음.
술병이 났다. 누웠다 앉았다 하며 기보를 봤다. 바둑을 생각해 본다. 바둑은 거친 형세에 맛이 있다. 포위하고 끊고 돌려치는 것 등은 특별하다. 세가 거칠게 부딛치는 곳에 묘수가 있다. 착수하고 수가 떠오르면 늦다. 이를 알기에 고수는 상대의 수를 먼저 알고 그 수를 쓰지 못하게 한다. 고수의 길은 골짜기의 메아리의 응답처럼 쉽지 않다. 그것이 고수의 바둑이다. (碁者勢險而有也 遊擊環攻特別 勢雖險中者妙手也 着手不旋後 是以善手 奪對功意 不能對手 善碁之法 若呼谷中言 不應束 道不善碁耶)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망할 줄 알면서 도박판에 끼어드는 것(明知生業之破産 而惑賭博之牌)도 삼갈 일이다.

대자리를 깔고 앉아 바둑두는 것을 여름나기의 한 방편이라 소개한 다산도 여름이면 개고기 마니아였다. 다산은 흑산도에 유배를 와 있던 형에게 흑산도에 주인 없이 떠도는 개가 많다는 편지를 받고 개를 잡아 몸보신하라 조언한다. 된장과 졸파를 듬뿍 넣고 끓이는 게 요리법이라 한다.

물론 다산은 이런 한가한 소리만 한 건 아니다. 1804년의 어느 여름날 '여름날 술을 마시며(夏日對酒)'라는 1060자에 달하는 장편(長篇) 시를 써 당시 전정(田政)·군정(軍政)·환곡(還穀)의 폐단과 불합리한 신분제도와 과거제도 등 조선후기의 모순을 사정 없이 질타하기도 한다. 


"생각하면 가슴 속이 끓어오르네. 술이나 들이켜고 진(眞)으로 돌아가리. 두어라 말아라 술이나 마시자, 백병 술이 장차는 샘물같이 되리라. 깊이깊이 생각하니 애간장이 타들어. 부어라 다시 또 술이나 마셔라."

다산은 울분을 담아낸 시 속에 바둑을 살짝 개입(?)시키는 센스를 보여준다. 지남규가 정치적인 인물이 아닌만큼  다산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어쨌든 강변의 천렵에서 박초시가 잡아온 개고기를 안주 삼아 술을 잔뜩 마신 지남규는 술병이 난다. 그런데도 지남규는  바둑을 떠나지 못한다.

김이 끌어들인 포천 서에게 뜨거운 맛을 본 지남규는 여전히 바둑타령을 늘어 놓으며 나름의 반성도 한다. 이미 답이 나와 있는 도박판에 부나방마냥 뛰어드는 것은 잘못이라 한다. 과오를 자행하고 곧바로 잘못을 시인하고 반성할 줄 아는 사람은 현명하다. 지남규는 바둑의 진정한 묘미는 극한 전투에 있다고 한다. 돌과 돌이 충돌하고 갈등이 더해 질수록 그 속에 묘수가 있다고 한다. 바둑의 맛은 그 묘수의 발견에 있다는 것이다. 상대의 수를 파악하고 대처 하는 자가 고수이고, 고수는 골짜기의 메아리처럼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말한다.

과연 바둑 마니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