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5월은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난 달이다. 동학군은 5월27일 전라도 관부인 전주성을 점거하면서 조선은 큰 소용돌이에 빠진다. 동학농민운동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전주성이 함락된 지 불과 수일 만에 청나라군대가 6월8일 아산만에 상륙했고 일본은 6월7일에 조선조정에 일본군의 출병을 통보한다.

지남규가 동료들과 박회를 하기로 한 5월 그믐날은 갑오년 경오월 기사일(甲午年庚午月己巳日)로 음력 5월29일, 양력으로는 7월2일이다. 그러니까 시간상으로 청나라 군대와 일본군이 충돌한 시점에 해당한다. 양력과 음력을 함께 사용한 구한말의 역사는 주의가 필요하다.

5월29일. 흐리고 비.
난리다. 오늘 박회 불가는 어젯밤에 통기되었다. 상점을 철시하고 관아에 사람을 보내어 소식을 알아오게 했다. 동비(東匪)들이 이곳까지 들어 왔다는 소문이다. 

6월1일. 비.
오늘의 비는 금년 농사에 도움이 된다. 무상으로 출입하던 김이 발길을 끊었다. 그새 좌은행에 나선 것인가. 어디로 갔기에 나와 바둑 두는 일을 잊었단 말인가. 혹시 나에게 감정이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유감이다.

(今日之雨爲之農多益. 無常出入然 足斷 金其間坐隱行耶. 仰往於處而忘 我對局 或有感不欲相逢而然耶. 此則爲傷.)

6월2일. 맑음.
관어암 스님이 와 식사를 대접했다. 손금과 관상을  봐주기에 봤다. 집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지남규는 동학군을 '동비'라 말한다. 동비라는 말은 황해도에서 동학군의 대항군을 조직했던 안중근도 사용했던 용어로 당시 동학을 바라보던 시선이 썩 좋은 것만은 아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동학군이 전주성을 함락시키고 그것을 빌미로 조선에 출병한 청일군이 경기도 일원에서 전투를 벌이자 조선백성들이 상점을 철시하고 모임을 작파하는 등 나름 대처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지남규는 상점을 철시한 후 사람을 관아로 보내어 정보를 얻고자 한다. 사실 구한말 동학의 출현은 엄청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서의 평가는 가당치 않을 것이다.

지남규는 기대하던 박회가 연기되고 상점도 철시한 상황에서 김을 생각한다. 박포 사건 후 김이 발길을 뚝 끊었다고 한다. 지남규는 그가 발길을 끊은 이유에 골몰한다. 불과 김과 못만난 지 일주일 정도다. 그리고 지남규는 김에게 큰돈을 잃기도 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김이 밉기도 하련만 지남규는 그렇지 않다. 못말리는 사람이다.

6월3일자 일기 한쪽에 아고기양단이갈언(我叩其兩端而竭焉)란 글씨가 보인다. 지남규가 좋은 의미라 생각해 써 놓은 듯하다. 논어에 나오는 말로 양쪽을 다 알아보고 대답을 한다는 말이다. 논어는 공부하는사람의 자세를 말한다. 흑백논리의 양극단을 두드려 답을 얻는 것이 진정 공부하는 사람이란 것이다. 지남규도 김을 생각하면 답답한 모양이다. 미우면서 보고 싶은 사람 김은 그런 사람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