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오월말이면 날씨는 덥고 후덕지근하다. 이런 날씨는 사람들의 기분을 가라앉히기 마련이어서 잠깐 시간을 내어 근교로 소풍을 가는 것도 좋다. 지남규는 뱃놀이를 다녀온 후 곧바로 박초시의 연통을 받고 한강가의 어느 강정(江亭)으로 바람을 쐬러 간다.

5월 25일. 맑고 시원한 바람이 분다(晴風).
박초시가 동리에서 십리 정도 떨어진 강정(한강가의 어떤 누각)으로 바람을 쐬러 가자고 전해 왔다. 언젠가 그곳에 갔을 때 바둑판을 챙겨 가지 못해 후회를 한 기억이 났다. (而之江亭之行 不携局以爲恨)

하루가 비쁘게 지나갔다.

5월 26일. 맑음.
아침 일찍 강정으로 출발하기 전에 부리는 아이에게 바둑판과 바둑알을 챙겨 먼저 출발을 시켰다. 박초시와 나를 포함한 일행이 뒤를 따라 누각에 도착해 보니 부리는 아이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누구는 이놈이 길을 잊은 것이라 하고 누구는 다른 누각으로 간 것이라 하니 박초시가 "아이가 조금 모자란 듯하더니 분명 착오가 생긴 것"이라 했다. 바둑판이 없어 바둑을 두지 못하고 삶은 개고기를 안주로 하여 놀다가 왔다.

(曉日訪江亭也 以其講一局 付一童先行 亭待着 不至 某曰 其者失路也 某曰他亭也 朴曰是敢甚必誤路也 無局無對 犬烹酒戱歸遊也)

친구들이 모여 강변에 자리를 잡고 개를 잡아 술안주를 하고 바둑을 두며 하루를 즐기는 모습은 우리들에겐 친숙한 모습으로 별다른 게 아니다. 복날 개를 잡아 몸보신 겸 심신을 달래는 모습도 생소하지 않다. 복날 개를 잡아 먹는 풍속은 조선의 유습이다.
강세황(姜世晃, 1712-1791)은 개를 잡고 바둑을 두며 하루를 즐기던 선비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다. 강세황이 그림을 그리고 그의 친구 유경종이 글씨를 남긴 '아회도'(아래 그림)다.

(강세황 현정승집도)

복날은 개를 잡아 여럿이 모여 먹는 것이 풍속이다. 정해년(1712) 6월1일은 초복인데 다음날 현곡(안산) 청문당에 열한 명이 모였다. 주연이 무르익자 광지(강세황)에게 그림을 그려 먼훗날 볼거리로 삼자고 했다.
-유경종

유경종의 말대로 강세황은 누각 위에서 바둑두고 책읽고 담소하는 열한 명의 선비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긴다. 강세황은 김홍도를 어릴 때 발탁하여 화가로 키운 사람으로 조선시대 화단의 거목이다. 지남규는 강세황과 유경종 등에 견줄 인물은 아니지만 지역의 유지인 박초시의 부름을 수시로 받는 등 지역 공동체의 일원으로 역할을 한다. 심부름 하는 아이의 실수로 바둑은 두지 못했지만 나름 즐거운 놀이였던 듯하다.

개고기를 생각해 본다. 다산 정약용은 흑산도에 유배를 가 있던 형 정약전에게서 들은 흑산도에 무리를 지어 떠돈다는 개를 주목하여  편지를 쓴다. 개가 몸보신으로 최고라는 거다. 개를 잡아 껍질을 벗기고 된장과 골파를 잔뜩 넣어 푹 삶아내면 맛과 영양가가 그만이라는 요리법까지 첨부해서 말이다. 인간친화적인 개를 잡아 먹는 풍속이 썩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하여 무조건 내칠 일도 아닌 듯하다. 다시 지남규의 시대로 돌아가서 한강변에 있던 누각을 그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