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남규는 바둑판과 바둑알 여러벌을 새로 구입하고 다가올 모임을 준비 하는 동안 오월이 가고 있다. 오월은 신록의 아름다움이 농번기의 고단함을 달래 주기도 하는 계절로 지남규는 잠깐의 시간을 내어 가까운 곳으로 천렵을 간다.

5월 23일. 맑음.

강상에서 뱃놀이를 했다. 춘천관아의 '양오위장'을 수년만에 만났다. 너무도 반갑고 즐거웠다. 해어지는 순간이 너무 아쉬워 우리집으로 와 하루 더 시간을 보냈다. 

5월 24일. 맑음.

양오위장이 돌아갔다. 마을끝까지 배웅을 했다. 바둑 한판 두지 못하고 해어지는 것이 서운하다. 돈30냥과 건어물 종이등을 선물로 주었다. 어제 오늘 이익이 40냥이다. 담배 술 국수값으로 5냥을 썼다.

강에서 뱃놀이를 했다고 한다. 춘천관아에 근무하는 양오위장(梁五衛將)을 수년만에 만났다고 한다. 오위장은 지방군영의 장교다. 양오위장은 지남규와 친분이 있었던 모양이다. 지남규는 양오위장과 하루를 자신의 집에서 보내고 동구밖까지 배웅을 하며 이별을 아쉬워 한다.

이런말 저런말을 하면서 회포를 푸노라 바둑 한판 두지 못했다고 한다. 양오위장도 바둑인이다. 지남규는 그와의 이별을 아쉬워 하면서 이것 저것을 노자로 챙겨준다. 시 한수도 있을법 하지만 일기에는 없다. 이 대목에서 남공철(南公轍1760-1840)이 떠오른다.

남공철은 어느날 충청도 제천에 내려가 친구 이언직(李彦植)과 만나 몇일을 보낸 후 한양으로 돌아와 친구와 해어지던 순간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 내용이 마음의 거문고를 울리고도 남는다. 조선시대 문인으로 영의정까지 역임한 대행정가였던 남공철의 여린 마음의 일단이다.

(한벽루에서 해어졌지요. 슬퍼서 정신이 혼미했어요. 말을 타고 성남쪽 사오리를 나왔는데 여전히 생황소리와 북소리 끊이지 않고 들려 왔어요. 붉은 루각 굽은 난간에 단정하고 멋진 맵시의 당신 모습이 저녁물속에 어리는데 서 있는 사람은 티끌만하고 떠나는 말은 콩알만 했어요.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부채로 화답했지요. 언덕을 돌아 숲으로 들어가니 루각은 보이지 않았어요.

우리들은 젊고 건강하니 나중에라도 또 만날 수 있겠지요. 그런데도 이별이 이토록 아프니 나이들면 어떻겠어요. 강노래에 봄풀 푸르고 봄물 물결 이룰때 남포에서 님 보낸다 했으니 그때부터 이별의 순간은 아팠던가 봐요.

寒碧送別  黯然鎖魂  騎馬出城南門四五里  猶聞笙歌肅鼓之聲 久而不絶 紅樓曲欖 幀粧被服 下照水際 人立如介 馬行如豆 往目回道  以扇相應  回岸轉林  樓隱不見 吾儕俱少年强壯  他日會合必無窮時 以猶此戀戀如此 若至衰而老 則何如也. 江生曰 春草碧色 春水錄波 送君南浦 傷如之何 自古別離之際悵然矣.)

(남공철의 필체)
 

백오십년전 사람 남공철과 백년전 사람 지남규의 행보를 보면서 허전하다. 젊고 건강하니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아스라하다. 사내간의 이별이 남녀의 그것보다 더 절절하고 찰지다. 문장만 놓고 보면 영낙없는 남녀간의 이별 장면이다. 그러나 불과 백년전 사람들의 이별법은 저렇다. 잘 이별 한다는 것,그것도 인간살이의 덕목임을 실감하며 많은것을 생각케 한다.

남공철 지남규 그들이 보냈던,  그날 봄날의 한때는 오늘 2010년에도 유효한가. 전화와 이메일 온갓 쪽지 기능등으로 맺어진 오늘날의 인간의 관계망은 세밀하고 빈틈 없지만 남공철과 지남규의 일기속의 그것과는 너무도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