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남규는 김과 함께 동리로 돌아온다. 여주옥사와 도박죄의 뒷담화는 생략되어 있다. 도박금지는 '포도청 단속사항' 중의 하나일 정도로 엄격하던 조선사회였던 만큼 김이 매운맛을 본 것은 알 수 있다. 지남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5월15일. 맑음.
상계가 칙미포구 주막에서 열렸다. 경상(京商)들과 일본상인들의 갈등이 느껴진다. 말인즉 경상 일상을 따지지만 장사치야 이익을 좇는 것이 법... 웃긴다.

곗돈 10냥을 내고 계원 허(許)의 처가 아프다기에 5냥을 부조했다.

5월16일. 맑음.
며칠간 결산을 못하다 해보니 이익이 150냥이다. 김이 구해온 일본 기보를 거듭거듭 보았다. 난가계 통문이 왔다.

돌아오는 그믐날 세화정에서 열기로 하고 비가 오면 박초시댁에서 하기로 했다. 비용은 계원 5냥 비계원 1냥이다. 땔감 10냥어치를 들였다.

             (에도시대 기보를 만들던 원판)

칙미포구는 양근나루를 말하는 것으로 강원도에서 내려오는 모든 물상이 일단 이곳을 거치기에 양근(양평) 장은 일찍부터 강동 5대 장으로 불릴 정도로 큰 장이었다. 양근나루에는 화물선을 20-30척씩 운용하던 화주들이 있을 정도로 번창한 곳이기도 하다.

지남규는 포구에 모인 상인들의 모임을 통해 당시 조선상계에 공세적으로 침투하는 일본 상인들을 언급한다. 조선상인들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단결을 운운하는 분위기도 느껴진다. 지남규는 이익을 추구하는 장사치의 생리를 들어 희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지규남은 김이 구해온 일본 기보를 본다. 그것도 거듭거듭(反數反數)이라 했다. 1894년 5월의 기록이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일본에 유학을 가 그곳 신문사에 기자로 근무하며 눌러 앉았던 사람이 한명 있었다. 1909년 4월에 발간된 기계신보(棋界新報)는 한 편의 기보를 싣고 있는데 그 기보가 이인직과 하라(原槍) 3단의 순장식 기보다.

이 기보는 사실 일본학자들의 논문에 수회 인용된 바 있고 그러다가 10년전 국내에 소개된 기보로서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인직(李人稙, 1862-1916)은 혈의누, 광화사 등을 쓴 현대소설의 선구자다. '국민보' '만세보' 등의 주필을 거쳐 '대한매일신보'의 사장을 역임한 언론인이기도 하다.

이인직은 1909년 2월 일본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는 한상룡 일행을 취재하고자 일본에 갔다가 애기가였던 한상룡의 주선으로 일본 전문기사와 한판 대국을 벌인 것이다. 이 기보가 그것이다.
이인직은 바둑마니아였다. 그가 바둑을 언제 배웠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이인직은 이 기보를 남기기 8년전에도 바둑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것도 일본신문에 말이다.

일본이 문물이 신식이듯 바둑도 강하다. 전승이 끊어진 조선과는 달리 발전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일본 풍속이 한갓 바둑마저도 조선의 상대가 아니게 되었다.  -1902년 미아꼬신문 

이 기록은 1902년 미야꼬신문(都新聞)에 실린 이인직의 글이다. 학자들의 논문은 물론 지면에 처음 소개하는 내용이다.

이인직은 1862년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나 1900년 관비유학생으로 일본에 건너간다. 39세의 적지않은 나이에 일본에 건너간 이인직은 그곳에서 일본여자와 결혼하고 다음해 미야꼬신문에 기자로 입사를 한다. 유학을 가기 전 이인직의 나름의 준비를 엿볼수 있는 대목이다.

이인직은 이천사람으로 지남규과 인접한 고장과 비슷한 세대의 인물이다. 두 사람은 바둑을 잘 이해한 공통점도 있다. 동시에 이 두사람은 조선바둑과 일본바둑을 경험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지남규는 이인직이 말한 강한 일본바둑을 접하고 충격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