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  이번 여행은 오래간다. 며칠 정도의 출타가 전부였던 김의 출타가 오래가자 지남규는 직접 김의 집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허탕을 치고 돌아와 좌은행(坐隱行)을 운운한다. 세상에는 바람같은 사람들이 있다. 역마살로 치부하기에는 상괘를 벗어나 이탈의 삶을 살아가는 인물군을 말하는데 김도 이 범주에 들어간다 하겠다.

은자(隱者)는 세상에 무엇인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재능과 경륜이 있으면서도 그 재능과 경륜을 세상을 향해 쓰지 않고 내적 소진으로 덜어내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말할 수 있다면 세계와 불화하는 회색인간이라 하겠다. 김을 이 범주에는 넣기에는 어폐가 있다고 본다. 조선시대 은자의 전형을 박지원의 소개로 살펴보면 알기 쉽다. 박지원은 '김홍기'를 소개한다.

누군가가 김홍기를 찾아가자 그 집 식구 중 한 사람이 말한다. (김홍기)가 궁금하다면 체복동의 술 좋아하는 김봉사를 찾거나, 루각동의 바둑 잘두는 김첨지를 (樓閣洞金僉知好碁) 찾으라 말한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 뒷집의 거문고 잘타는 김만호나 손님을 좋아하는 삼청동의 이만호집을 찾으라 한다. 누군가는 그 말을 믿고 그들을 찾아나선다. 누군가가 찾은 그들은 입을 모아 대답한다.

그 사람은 방금 이곳에 있다가 갔지요. 어디로 갔는지 언제 올지 우리는 모른다오. 어떤 때는 하루에도 두세번을 오다가 어떤 때는 수년에 한번도 오지 않기도 한다오. (是居無常主遊無定方. 來不頻期去不留約. 一日中或雨三過.不來則亦闡歲)  -김홍기전.

박지원은 김홍기의 나이를 백살을 넘게 살았다 말하며 그의 나이와 경륜의 깊이를 아무도 모른다 말한다. 박지원은 그를 사람들이 신선(神仙)이라고 한다고 한다. 동가식 서가숙하면서도 김홍기는 호평을 받고 살고 있다. 김홍기는 은자의 전형이다. 김홍기가 무전취식을 하면서도 호평을 받는 이유는 그의 타고난 재주 때문이다. 물론 그의 인격도 보탬이 될 것이다.

김홍기는 '금기서화'에 뛰어난 문풍(文風)의 뒷받침을 토대로 은자행을 하고 있지만 바둑 외에는 내놓을 게 없는 김의 좌은행이 평탄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동안 보이지 않던 김의 행방이 여주관아의 통기로 알려진다. 김이 도박죄로 여주관아의 옥사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5월10일 맑음.
서남초가 좋다고 하기에 10냥어치를 샀다. 땔감 5냥. 고기 2냥어치를 사고 밭일을 한 일꾼들 술 국수값으로 5냥을 썼다.

5월11일. 맑음.
김이 여주관아에 잡혀 있다는 소식을 관아 형리에게 들었다. 여주에서 도박을 한 모양이다. 일손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처가 또 아파 누웠다. 이래저래 심난하다.

서남초는 평양에서 생산되는 담배다. 조선후기 담배는 국가적 골치거리일 정도로 유행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열살 아이들까지 담배를 피울 정도였던 모양이다. '연경'을 지은 이옥은 꼴불견중의 꼴불견으로 어린것들이 담배대 물고 있는 것이라 했다.

지남규는 김과 묘한 애증관계를 유지한다. 바둑의  호적수로 서로간에 돈을 잃고 따는 결코 좋은 관계는 아니다. 그러나 지남규는 김을 많이 생각한다. 도박으로 입는 상처보다는 수담(手談)으로 나누는 인정(人精)이 더욱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