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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 바둑동호회 난가계(爛柯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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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 바둑동호회 난가계(爛柯契)
2010-03-23 조회 9066    프린트스크랩

 

도박은 인간을 피폐케 하고 인간관계를 조잡하게 만드는 첩경이다. 바둑이 도박과 연결되어 기록으로 나타나는 것은 조선시대 전체다. 내기바둑으로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이 속출했고 살인사건도 불사(?)했다. 조정이 급기야 포도청을 발동시켜 바둑도박을 단속하려 했어도 그때뿐이었다. 내기바둑이 서민들만 아니라 유력자들이 더 즐긴 탓도 있다.

이요(李橈, 1684∼?)는 한수대라는 바둑 고수를 영조에게 소개하여 바둑인을 외교에 활용케 한 바둑후원자다. 그는 종친으로 중국 사신단의 정사를 맡을 정도의 유력자였다. 그런 인물이 내기바둑을 두다 망신을 당한 해프닝 한 토막이 있다. 화가 최북(1712-1786)과의 대국인데 이 내용을 남공철(南公轍 , 1760-1786)이 전(傳)으로 남겨 놓았다.

최북은 조수삼의 기록에도 바둑고수였다 기록될 정도로 나름 고수였다. 이요가 최북을 불러 바둑 한판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요가 죽기 일보직전인 자신의 돌을 살리기 위해 물러 달라고 한 모양이다(而西平請易一子). 최북이 흑백돌을 쓸어 담으며 손을 가지런히 하고 앉아 한마디 한다(七七遽黑白劍手坐曰). 바둑은 물릴 수 없는 것이지요. 바둑을 물리기로 말한다면 한판의 바둑은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겁니다(碁若易不己則終歲不能子一局矣) 한다.

당대의 유력자가 한갓(?) 화원을 청해 바둑을 두면서 체모를 구기는 모습이 흥미롭다. 내기가 아니면 바둑이 재미도 성의도 없다는 당시대의 분위기라 하겠다. 지남규가 김이라는 친구와 내기 바둑에 몰두한 모습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4월23일. 맑음.
박초시댁 사랑에서 나와 김외 십여 명이 모였다. 곗돈으로 5냥씩 내고 술과 밥을 먹고 종일 바둑을 두었다. 나와 김이 고수라 종일 손이 분주하다(하수들과 바둑을 두어 주느라). 박회가 열렸다는 소문에 근동의 어른 아이들까지 몰려들어 큰집 마당이 장마당이 되었다. 박초시가 국수를 말아 내었다. 국수값이 족히 수십 냥은 될 것이다.

4월24일 맑음.
박초시가 부르기에 갔다. 돌아오는 곗날 일수기를 초대할 생각인데 어떠냐 묻기에 좋다고 했다. 김과 상의하라기에 그렇게 하겠다 하고 왔다.

장사가 잘 되었다.  백 냥 남짓 이문을 보았다. 땔감. 고기. 술. 담배를 샀다. 30냥을 썼다.

4월25일. 맑음.
을동이가 왔다. 문제로 낸 '십면매복'을 별 어려움 없이 푼다. 놀랍다. 마침 집에 왔던 김이 그것을 보고 천재다 박수를 친다.

김이 바둑 두판을 둬주고 장래에 일수기라 거듭 칭찬을 한다. 을동이 집으로 갈 때 국수라도 사가라고 5냥을 주었다. 김이 그것을 보고 3냥을 더 준다. 을동은 아비가 없다.


박초시는 읍(邑)의 토호다. 그의 집에서 박회(博會)가 열린다. 참석자들은 회비를 추념하고 밥과 술을 마시며 종일 바둑을 둔다. 상대적으로 고수인 지남규와 김은 회원들의 상대가 되어 주느라 힘들다. 박회소식에 근동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유지인 박초시는 그들에게 국수를 말아 내놓는다.

고수들이 있고 그들을 중심으로 일단의 하수들과 바둑팬들이 결집하는 모양세다. 고수와 바둑팬들을 한바구니에 담아 모두를 즐겁게 해주는 후원자도 있다. 오늘날의 바둑계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박회가 회비를 갹출하는 것으로 보아 일회성이 아니다. 돌아오는 모임에는 일수기를 초대해 오자는 박초시의 말은 상쾌하다. 우물안의 세상은 발전이 없다. 기력(碁力)이 덕목인 바둑은 고수들과의 끝없는 접촉이 중요하다. 일기는 이렇게 간단간단 하다. 사회적으로 아무런 영향력이 없던 한촌필부에 불과한 사람의 내용없는 기록이지만 바둑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남규는 며칠 만에 찾아온 을동에게 '십면매복'의 묘수풀이를 문제로 내준다. 을동은 그것을 쉽게 푼다. 그 모습을 본 지남규와  김은 아낌없는 박수를 친다. 그리고 을동이 돌아갈 때 용돈을 챙겨준다. 후생가외(後生可畏)라 했다. 술값으로 오늘 백냥을 자신의 몸에 투자하면 몸이 그만큼 축이 가지만 인재에 열냥을 투자하면 세상에 만냥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기보에 이어 '십면매복'이 등장한다. 다음회에는 기보와 십면매복을 입체적으로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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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살자 |  2010-03-23 오전 5:59:2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하하.. 재미있군요. 수고하세요.  
youngpan |  2010-03-23 오전 8:25:55  [동감1]  이 의견에 한마디
십면매복이라...역시 옛날에는 이름도 거창하군요..  
靈山靈 물어본거 대답 안해주셔유?
靈山靈 |  2010-03-23 오후 1:17:5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매복?
군대시절 지피에서 매복 맨날 섯다고 입만 열면 떠드는 친구가 생각나네요.  
알프스소년 |  2010-03-23 오후 5:43:3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글 잘쓰시네.... 진짜 재미있어요. 간단한 일기지만 너무 소중한 내용이네요. ^^*
십면매복이라 무슨 문제일까 나도 도전해봐야지 ㅎㅎㅎㅎ  
목연 |  2010-03-23 오후 8:48:0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열가지 방면에 매복을 세워서 어떤 적이라도 절대 빠져나가지 못하는 진세를 말하는데.
절대고수가 한 방향으로 직진하면서 쳐부수어야 빠져나가게 된다고 들은 적 있습니다.
 
자객행 四面楚歌를 생각하시면 항우가 열겹 매목에 걸렸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인듯 합니다.
자객행 이백의 시에 [蜀道難難於上靑天]라는 구절이 잇으니 촉땅이 험하기는 한 모양입니다.
棧途 |  2010-03-24 오전 7:16:1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상산사호. 십면매복. 난가의 전설.
바둑이 역사가 길다보니 얻는 훈장들 아닐까요.  
棧途 |  2010-03-24 오전 7:17:2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도박은 아시아 삼국의 전통적 놀이(?)의 하나로 역사가 정말 깊은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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