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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바둑두러 한양 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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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바둑두러 한양 간 사람
2010-03-14 조회 10269    프린트스크랩

 

아침 흐리고 오후  갬.

음청록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제는 거의 죽은 문자가 된 한문 초서로 쓰여진 한 사람의 일상이 옛것을 사랑하는 사람의 서랍 속에서 잠을 자다 어느날 망실의 시간을 찢고 불쑥 우리 앞에 모습을 보인다. 1894년 4월13일로 가보자.

 

4월13일. 아침흐리고 오후 갬(朝陰晩晴).

경상 박점(朴店)에서 그릇 20바리(馱)를 받았다. 양근분원(도기공장)보다 비싸다. 땔감 15냥어치를 사고 김(金)이 고을 형리(刑吏)와 함께와 늦게까지 바둑을 두었다.


4월14일 맑음.
일꾼 4명을 얻어 밭일을 시켰다. 술값 국수값으로 4냥을 주었다. 김이 와 어제의 복수를 청하기에 일이 바빠 내일로 미뤘다. 상점이 성업을 이뤄 50냥 남짓 이익을 보았다.


4월15일. 종일 비, 바람도 불었다.

김이 오지 않았다. 한양(京)으로 바둑을 두러 간 모양이다. 기보(碁譜)를 보며 앉았다 섰다 했다. 늦게 술 5전어치를 사와 먹고 잤다.

 

음청록은 모두 이런식이다. '지남규'의 하루의 일과는 장사하고 집안일을 돌아보고 취미를 즐기는 지극히 소박한 생활인의 모습이다. 일기 하루 분량은 원고 한장에서 대여섯장 정도로 간단 간단하다. 지남규는 한강주변(송파 양주)에서 비교적 큰 상점을 운영하며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상인이다. 그릇을 한양상인들과 양주분원 등에서 도매로 사와 소매를 하는 식이다.

땔감을 15냥어치 샀다고 한다. 일기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술, 땔감, 쌀, 담배, 고깃값이 재미있다. 일기에 쌀 한섬(10말)이 150냥에서 250냥을 오르내리는 가격에 비교해 보면 품삯이나 땔감 등의 가격은 엄청나게 낮다. 상대적으로 쌀값은 거의 금값 수준이다.

지남규의 상점에 김(金)이란 사람이 찾아온다. 지남규와 가까운 곳에 살던 사람으로 바둑도박에 빠진 인물이다. 김이 형리와 함께 왔다고 한다. 형리는 고을 관아의 '형방'에 근무하는 포교다. 지역의 포교가 무상으로 출입하는 것만 봐도 안정된 지남규의 생활이 엿보인다.

그날 바둑은 지남규가 이겼다. 김이 다음날 복수전을 하겠다고 다시 나타난다. 그러나 지남규의 상점이 바빠 대국을 다음날로 미룬다. 상점영업이 잘되어 50냥의 이문이 남는다. 50냥을 오늘날의 쌀값에 비추면 큰돈이 아니지만 당시 여타 물가에 견주면 상당한 액수다. 다음날 온다하던 김이 나타나지 않는다. 한양으로 바둑을 두러 간 모양이다 했다. 김(金)의 심상치 않은 포스가 느껴진다. 지남규는 '기보'를 보며 바람불고 비오는 날의 무료를 달랜다.

지남규의 3일간의 행적은 (바둑인의 입장에서) 흥미롭다.

바둑을 즐긴다. 내기 바둑꾼이 찾아온다. 내기 바둑꾼은 한양까지 바둑을 두러 원정을 다니는 사람이다. 비오고 바람부는 날은 공치는 날이다. 지남규는 이런 날이면 기보를 꺼내 든다. '기보'라고 했다. 우리는 지남규가 말한 기보가 궁금하다. 1894년 4월 지금으로부터 117년전 송파 양주부근에 살던 지남규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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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바 |  2010-03-14 오전 2:33:36  [동감1]  이 의견에 한마디
아주 흥미롭군요.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때 이야기군요  
靈山靈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아마)도^^;;
靈山靈 120년전이전이면 그정도 안될까요?
AKARI |  2010-03-14 오전 7:35:2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으윽..분(?)하다...1등을 하고 싶었는데.ㅋㅋ

아침흐리고 오후 갬(朝陰晩晴).
날씨 표현이 왠지 재미있네요..
조운만청.
다양한 날씨 표현 기대할게요.ㅎ


개인적으로 단정한 해서와 매력적인 예서가 좋습니다.
초서는 초서는....나름의 매력이 있는데..제가 매력을
못 느꼈어요..지못미 초서...

이청작가님은 한국바둑의 보물중의 보물이십니다.
아무나도 못하고 누구나도 못하고..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들만이 할수있는..  
도살자 |  2010-03-14 오전 9:29: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잘보고 갑니다. 재밌군요. 한문실력이 상당하신가 봅니다.  
도살자 기보라.. 암..
youngpan |  2010-03-14 오후 1:32:4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좋구랴..  
전등사박새 저두요.
알프스소년 |  2010-03-14 오후 7:40:4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저도 기보라는 것이 너무 궁금해요. 어떻게 엮어졌는지 어떤 내용인지 진짜 궁금하네요.
^^*  
돼지곱창 |  2010-03-14 오후 8:01:1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이청님 덕분에 우리 조상님들의 삶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어서 고맙습니다. 좋은 글 자주 부탁드립니다.  
법공 |  2010-03-14 오후 8:14:4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감사합니다.  
dugubee |  2010-03-15 오전 9:24:50  [동감1]  이 의견에 한마디
기보를 보았다니 놀랍군요. 출판된 기보가 있었을까요? 아니면 자기들이 둔 바둑을 기보로 남겨 두었을까요? 그렇다면 상당한 기력이겠지요. 좋은 자료 잘 봅니다.  
테크노홍 |  2010-03-15 오후 6:12:3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고문을 통해서 지남규에 대한생활사를 볼수있다는것이 얼마나행복하시겟읍니까? 이글을 접하는바둑팬도 행복하지요 시인한분노력으로 팬들 전체가 행복합니다.강령하십시요.

 
유마행열차 동감입니다.
棧途 |  2010-03-24 오전 7:14:4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역사는 층층으로 쌓아가는 지층이란 말이 있습니다. 역사는 공역이 필요한 과학입니다.  
ruben007 |  2014-01-15 오후 6:23:1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z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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