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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배]파리의 잠 못 이루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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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배]파리의 잠 못 이루는 밤
2005-03-23 조회 11523    프린트스크랩
2000년 11월 13일이 끝나가는 늦은 밤, 프랑스 파리의 루테시아(Luttetia) 호텔에는 잠을 이루지 않고 무엇인가 분주한 두명의 인간들이 있었다. 선을 깔았다 말았다, 테이프를 말아 붙였다 말았다 하고 있는 175cm정도의 약간 네모난 얼굴을 하고 있는 한명의 인간이 그 한명이고, 또 그의 곁에서 노트북과 전화선만 만지작 거리고 있는 180cm정도의 마른 인간이 또 다른 한명.

14일 프랑스 파리의 루테시아 호텔의 1층 연회장에서 제5회 LG배 세계기왕전 8강전이 열리기로 돼 있었다. 네모얼굴의 인간은 검토실인 2층에 관전객과 관계자를 위한 위한 세팅과 모니터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었고, 마른인간은 인터넷 중계를 위해 노트북을 미리 대국 자리마다 세팅해 놓으려는 것이 이들이 분주한 까닭이었다.

당시 마른인간은 한가지 걱정이 있었다. 비싼 돈 쳐들이고 멀고 먼 프랑스 파리까지 날라와서 출장 목적인 인터넷 대국전송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이 넘치고 넘쳤던 것. 이건 아주 빌어먹을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당시 인터넷 중계를 하러 파리까지 날라간 곳은 두군데였다. 하나는 LG계열 PC통신 업체 채널아이(Channeli)와 그리고 또 하나는 (재)한국기원이 그해 5월에 출범시킨 사이버기원(Cyberkiwon 現 Cyberoro)이다.

채널 아이는 인터넷 계정과 회선등에 별로 걱정이 없었다. 채널아이의 해외 로밍 서비스를 이용해서 전화선을 통한 인터넷 연결계정을 이미 두개이상 확보했다는 것이었다. 접속도 잘 되는지 이들은 걱정이 없었다. - 너무 부럽다.

인터넷 접속계정과 회선 확보에 안달을 하고 있던 마른인간은 국내 PC 통신사의 로밍서비스에 안달을 하고 있었는데, 제대로 연결이 되지 않았다. 13일 오후쯤에 채널아이 담당자에게 1개라도 인터넷 계정이 남는 것 없느냐는 말을 무척 조심스럽게, 그것도 상당히 어렵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간절하게 꺼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우리것 밖에 쓸 것이 없다'는 다소 냉정한 것이었다. 이해는 했지만 섭섭했다. - 이런 매정한 놈들 같으니라구.

프랑스 바둑 협회쪽에서는 인터넷이 된다고 했다는데 그날 제대로 만나서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아마 이메일로 한국기원에 이야기한 것은 인터넷 전용선이 아니라 전화선을 통한 접속이었고, 호텔에는 원래 내부 전화선이 잘 들어와 있으니 이들은 별 걱정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방금전에 서울에서 파리로 날라온 실무자들이 현지의 인터넷 접속 계정을 제대로 준비하고 있을리는 없었다.

급한 대로 국내에서 쓰고 있던 PC통신사들의 로밍서비스를 확인해보기로 했다. 그나마 국내에서 구하고 준비했던 몇가지 로밍 서비스였고, 여러 통신사들의 로밍 계정을 몇개 사용할 수 있었는데, 접속도 어려웠지만 그나마 접속된 시늉을 하는 때도 5분에 한번씩 접속이 끊기곤 했다. 생각해보니 당연하다. 누가 여기까지 와서 국내 PC통신을 사용하려고 하겠나. 게다가 국내 PC통신사들은 'ADSL'로 무장한 거대 통신사들에게 접속 시장을 거의 내주고 있던 상황, 이런데까지 신경을 처지가 아니었던 듯.

'삐리리리리...비지지지직..ㅊㅊㅊ치치치치직'

늦은 밤, 현장에서의 해설과 수순입력을 위해서는 최소 3선이상이 필요한데 한선도 제대로 연결이 되지 않았다. 짜증과 더불어 꽉막힌 불안감이 엄습했다. 전화연결소리만 불쾌할 뿐.

"이런 된장, 누가 파리에서 대국을 잡고 그랬수아... "

어쨌든 한국기원 사업부의 얼굴 네모난 대리(당시, 지금은 과장님)는 꾸역 꾸역 밤새 일을 해서 검토실에서 대국장 바둑판을 볼 수 있도록 모니터 세팅을 마치고 있었다. 얼굴이 노랗게 뜬 마른인간은 몇가지 '네모'의 일을 도우면서 뎅그러니 노트북만 자리에 놨다. 그리고 제대로 된 인터넷 계정이 없어서 연결이 되지 않는 전화선을 일단 모두 끼워놨다. - 네대나 낑낑대고 들고 왔더니만 모조리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구나. 값비싸고 무거운 장난감이 되는 구나야.

계속해서 인터넷 전화 접속을 시도하는데 99% 젬병수준. 14일 새벽4시가 되었을 무렵 졸음과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와서 아침 7시까지 계속 꾸벅거렸다. 졸음이 깨서 대회장을 둘러봤더니 지난 밤 한숨도 잠을 청하지 않은, 얼굴이 네모나고 씩씩한 네모 대리가 대국장 세팅과 모니터 설치를 모두 끝내 놓은 상태였다. 잠을 전혀 못잔 상태라 상당히 구질 구질해 보였지만 특유의 사람좋은 웃음을 씨익하고 보내와 같이 웃었다. - "좋겠다. 일을 모두 끝내 놨구나."

대국시간인 오전10시는 조금씩 가까와 지는데 인터넷에 접속할 방법이 여전히 없었다. 별로 당황하지는 않았지만 심장이 좀 불규칙하게 뛰고 기분이 매우 더러워졌다.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 고전적인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그건 바로 팩스. "대국이 시작하면 10분에 한번씩 고요한 대국실에 뛰어 들어가, 대국자들의 얼굴을 힐끗 보면서 기록자의 기보용지를 들고 서울로 팩스를 날리리라. 아마 서울은 밤일텐데. - 뭐 이러면 못할 것도 없는데, 비싼 돈 쳐들이고 이곳까지 와서 제대로 일을 못한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자꾸 벌렁 벌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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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주! 프랑스 바둑인 Sylvain 씨는 오전 9시가 조금 넘어서 나타났다.

전날 인터넷 접속에 대해 대략 말을 들은 프랑스 바둑클럽 회원이 IGS에서 활동하는 (IGS를 운영한다는 것인지, IGS에서 온라인 바둑을 주로 둔다는 것인지 구분해서 알아 듣지 못함) Sylvain 씨를 소개시켜 준 것인데, 굳이 얼굴 노랗게 뜬 동양 청년에게 친절해야할 필요를 별로 느끼지 못한 것 같은 표정의 이 친구는 고맙게도 자신이 사용하고 있던 20여개에 가까운 프랑스 현지 인터넷 접속계정(ID 비번 접속전화번호)을 프린트해주고 그중 30~50%가량은 접속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게 어디냐?

Sylvain 씨에게서 계정이 프린트 된 용지를 받으면서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제2외국어 교육의 위력을 실감하면서, 딱 한가지 하는 프랑스말 " 멸치볶음!!!"(Merci boucoup = Thank you very much 프랑스어로 감사하다라는 말, 우리발음으로 하면 '메흐(르)씨 보쿠' 쯤 되는데 언뜻 들으면 멸치볶음으로 들린다. )

Sylvain 씨의 계정을 검토실에 설치한 노트북에서 TEST한다음 접속가능한 계정과 접속이 불가능한 계정을 나눴다. 그런다음 4~5개의 사용이 가능한 것을 택해 대국실의 기록자 노특북과 검토실의 해설자 노트북을 인터넷에 접속시켰다.

대국 개시선언이 떨어지고 돌을가리고 첫수가 착수되면서 중계는 무사히 시작되었다. 검토실의 모니터들도 정확히 사이버기원의 입력 수순들을 잘 보여주고 있었으며 후줄근하고 피로에 찌든 모습으로 아침을 맞았던 네모 대리는 어느틈엔가 샤워를 마치고 깨끗한 정장차림으로 나타나 대국 개시를 진행했다.

전날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생하던 것에 비할 때 모든 것이 순조로왔다. 다음은 이날 대국.

1.이창호 - 마샤오춘
2.조훈현 - 왕리청
3.이세돌 - 루이나이웨이
4.서봉수 - 저우허양

그런데 밤새 고생하고 회선 설치한 것을 채널아이도 그대로 고스란히 쓰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 (여분의 마른인간 노트북으로 전송되는 모니터까지 보면서) 뼈빠지게 고생하며 구축한 시설(?)을 이용해 밤잠 다자고, 관광다니고 파리 노천 카페에서 와인먹고(본 것이 아니라 순전히 상상이지만) 중계도 잘하는 구나. 아이고 배아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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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우울하던 차에 기회가 찾아왔다.

갑자기 채널아이 직원이 '인터넷 접속 계정이 두개정도 남는 것이 있느냐'며 '마른 인간'에게 문의를 해온 것이다. 순간 '마른인간'은 전날 채널아이의 로밍서비스 계정을 애타게 구걸했던 일이 번쩍 떠오르며 싸늘하고 매정하게 '우리밖에 쓸 것이 없다'고 딱잘라 말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어찌 그럴 수 있으랴. 저쪽도 이 먼 곳까지 비싼 돈 쳐들여 왔으리.

마른인간은 마음을 고쳐먹고 밤새 우울했던 기분에 비해서는 엄청나게 대범하고 자비로운 결정을 내렸다. '왜? 로밍이 안되시나요?'하면서 대략 4개정도의 불통 계정과 3~4개의 접속가능 계정을 적절히 섞은 다음 사용해보라고 알려준 것이다.

밤을 샌 마른인간에 비해 참을성이 약간 모자랐던지 '계정이 접속되지 않는 다고 약간의 신경질을 섞어 다시 물어 왔을때'는 6개 다 시험하면 그 중 접속 되는 것이 2개 이상은 될 것'이라고 자상히 설명하는 극도의 친철함을 덧 붙였다. - 왜이리 모질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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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이 끝났다. 그리고 중계도 끝이 났다. 이창호 9단과 이세돌 3단은 승리했다. 두사람은 이후 결승에 올라 겨루게 됐는데 그 때는 아무도 이창호 vs 이세돌의 결승대결이 성사되리라고 전혀 예상치 못했을 때다.

밤을 꼴닥 새며 중계 전송에 온 신경을 쓴 덕분에, 대국자들에 대한 인상깊은 에피소드나 기억, 그리고 대국이 열린 파리의 풍경을 마음편히 둘러 볼 수 있는 기회는 좀 놓쳤다.

대국이 끝난 후 마른인간과 일행 일부는 호텔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겨 고린내가 퐁퐁나는 치즈를 안주 삼아 포도주에 취하기 시작했다. 포도주를 마시면서 인문교양에 탁월한 프로기사 문용직 박사로부터 현재 술을 마시고 있는 카페가 200년도 더 된 카페이며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철학자나 시인이 자주 다니던 그러한 곳이라는 이야기를 해준다. - 사실은 이름을 들었어도 기억이 안난다 - 이야기가 흘러가던 와중에 그제서야 대국이 열린 루테시아 호텔 주변이 아주 고색창연한 파리의 상징적인 시가지중 하나임을 알게됐다. 그랬었었더랬구나. 관광은 별로 못했지만 술에 취하니 흐뭇했다.

(공항으로 가기전, 시내의 한 주류점에서 남은 여비를 털어 포도주를 좀 샀다. 그런데 주인이 약간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그렇게 막 사는 사람이 프랑스사람중엔 별로 없어서 그렇단다. 아 딱 한가지 그런 부류가 있다던데 바로 일본인이란다. 된장.)

5년이 지난 지금, 대국현장에서 전화선을 들고 인터넷 접속이 안되다며 낑낑대는 일은 이제 없다시피하다. 언젠가 창고에 보니 언제적 유품인지 모를 전화연결키드나 길다란 10m자리 전화선들이 굴러다닌다. 기보용지를 들고 팩스를 보내기위해 줄을 서는 장면도 찾아 보기 힘들다. - 당시 흔히 쓰던 윈도우 98환경에서 설정을 바꿀 때마다 보이던 '컴퓨터를 다시 시작하시겠습니까? '라는 메세지도 이젠 보기 힘들다.

지금의 출장 인력은 인터넷 회선에 신경을 줄이는 대신, 기사를 작성하고 사진을 전송하는 일에 대부분의 정력을 쏟게 됐다. 5년이라는 시간ㅡ 인터넷 환경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같은 것이 있다면 주위를 싸돌아다닐 시간이 여전히 약간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인터넷 접속이 안되면 담당자는 대국실과 팩스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기보용지를 들고.)

PS 아참 특이한 것, 당시 호텔에서 근무하는 서비스 잡역(?) 대부분이 우리와 같은 '유색인종'이었다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프랑스도 식민통치를 많이 했으니까, 피부색이 다른사람들이 식민지로부터 많이 유입됐었겠지. 그리고 그들에게 주어진 일과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직장은 '경제적 부가가치'가 무척 낮은 직종이었음에 틀림없을 것 같다. 유럽내 사상및 인종차별이 가장 없는 프랑스가 그러하니 다른 서구권 국가들은 어떨까? - 푸른 꿈을 품고 이민의 행렬에 참가하시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자신의 아들 딸들이 경제적 부가가치가 높은 직종에 종사하실 희망한다. 그렇다면 한국땅이 기회가 더 많은 것은 아닐까? 그냥 그런 어설픈 생각이 파리에서의 단편적인 기억땜에 한가지 의문으로 떠오른다. 한국땅에서 한국체류 외국계 노동자에게 기대하며 바라는 것이 저임금의 노동이듯이 말이다.

[C군]

제9회 LG배 결승 1차전 안내 3월 28일, 30일

결승1차전 제1국과 2국은 오는 28일과 30일 중국 상하이에서 펼쳐진다. LG배 세계기왕전 홈페이지(http://baduk.lg.co.kr)에서 무료 관전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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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부 |  2005-03-24 오후 1:57: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잘 봤네! 마른인간.... - 네모난 인간이 -  
웃는향이 |  2005-03-27 오전 2:23: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bfsa |  2005-04-10 오후 8:53: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ㅋㅋ정말웃기당  
fineltd |  2005-07-13 오전 12:47: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글 쓴이 이름은 어디에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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