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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벙거지와 면사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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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벙거지와 면사포
2003-01-02     프린트스크랩
찬 겨울 바람이 차창(車窓)을 거칠게 두들기고 지나갔다. 출발할 때만 해도 청명했던 하늘이 어느 새 몰려든 구름에 회색 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변덕수는 스쳐 지나가는 겨울 농촌 풍경을 찬찬히 새삼스런 기분으로 음미했다. 푸르름을 잃은 농촌이란 역시 요석(要石)이 잡혀버린 바둑 만큼이나 을씨년스럽다. 그는 지금 고향에 다녀오는 길이다. 지난 여름 수해(水害)때 찾아본 이후 반년만의 귀향이었다.

집집마다 굴뚝에서 피워 올리는 저녁 밥 짓는 연기가 온 마을을 휘감고 있었다. 설에나 내려올 것으로 알고 있던 부모님은 함박웃음으로 맞았고 아우들은 깡충깡충 뛰었다. 지치고 외로운 중생들에게 고향은 언제나 두 팔을 펼쳐 맞아준다. 이 쪽 형편을 따지는 법은 단 한번도 없었다. 실업자건 무일푼 건달이건, 짝사랑하던 여인을 빼앗긴 사랑의 패배자였건 고향 마을은 언제나처럼 넓고 따스한 품을 내밀어 주었다.

오나랑 양이 마침내 면사포를 쓴단다. 결혼 상대는 성희룡이라고 했다.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변덕수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줄 알았다. 사흘 전 저녁 무렵, 만방기원 지하 1층 다방으로 변덕수를 끌고 내려간 제갈길이 잠시 후 낯빛을 가다듬더니 이 청천벽력같은 뉴스를 귀띔해 주었다. "2월 초순으로 날짜까지 잡았다더군." 제갈길의 목소리가 이명(耳鳴) 처럼 아득하게 귓전을 울렸다. 마침내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지고 있었다.

바둑을 두다보면 잡았다고 굳게 믿고 있던 적의 대마가 계가(計家) 직전 살아가는 황당한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그때까지의 형세 판단은 엉망이 되고 바둑도 대패로 끝나버린다. 변덕수는 성희룡과 둔 수백 판의 바둑 가운데 [장면 1도]를 떠 올렸다. 잔끝내기만 남은 상태에서 흑을 쥔 변덕수가 넉넉하게 이긴 모습. 우상귀가 문제인 듯하지만, [1도] 백 1엔 흑 4까지 백의 수 부족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래도 성희룡은 돌을 거두지 않았다. 성질 급한 변덕수가 폭발하기 직전, 성희룡은 조용한 손길로 [2도] 1로 공배를 이어왔더랬다. 여기서 [3도] 흑 1이면 백 2의 치중으로 흑이 잡힌다. 당황한 덕수는 [4도] 흑 1로 2의 1을 차지했으나 4까지, 오히려 흑 돌이 전멸하고 말았다. [5도] 흑 1 역시 4까지 안되는 진행. 덕수는 여기서 허망하게 돌을 쓸어담았었거니와, 상대가 [2도] 백 1의 묘수를 진작에 보고서도 속으로 키득거리며 수십 수나 잔끝내기를 진행했다는 생각에 진저리를 쳤었다. 이번 결혼 사건과 어쩌면 그렇게도 똑같을 수 있는가.

만방기원 안에서만 통하는 은어가 몇 개 있다. 이기고 지는 것을 일컬어 '벙거지 장사'라고 하는 것도 그 중에 하나다. "바둑 한 판 이기고 졌다고 일희일비할 일이 아니다. 승패는 그저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일 뿐"이라고 구경만 선생이 설파했을 때, "그럼요. 기나긴 인생 항로에서 모자 하나 더 팔고 덜 팔고에 일희일비해서 되겠습니까"하고 되물었던 것은 다른 사람아닌 변덕수 자신이었다. 하지만 청천벽력같은 그 소식 이후 그는 벙거지 공장이 아예 전소(全燒)된 듯한 비탄에 빠져있다. 인생 승부에서 너무도 치명적인 1패를 당한 때문이었다.

비보를 접하던 날 밤, 덕수는 군대 시절 이후 실로 10여년만에 확실하게 장(腸) 세척을 경험했다. 김대박과 헤어진 뒤 하숙집에 돌아와서도 혼자서 소주 병을 두 개나 더 눕혔으니, 그랬는데도 속이 요동치지 않았다면 그건 내장(內臟)의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몸도 마음도 파김치처럼 피폐해지자 덕수는 새벽의 칼 바람을 뚫고 불문곡직 서울역으로 향했었다. 양력으로 섣달 그뭄이 내일 모레였건만 대합실은 별로 붐비지 않았다.

김천(金泉)을 출발한 기차가 영동(永同) 역에 들어섰다. 유리창은 바깥 바람을 견디다 못해 부르르 몸을 떨며 비명을 질러댔다. 초저녁처럼 어두워진 들녁, 강풍에 대책없이 휘둘리고 있는 가로수들의 모습이 마치 산발한 광녀(狂女)의 춤 사위를 떠올렸다.

오나랑 그녀가 한 때 나마 덕수에게 관심을 보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덕수는 고개를 떨군 채 아직도 자신의 왼손 무명지(無名指)를 두르고 있는 나무 반지(木環)를 응시했다. 언젠가 초여름날, 덕수는 그녀와 서울 근교 유원지에서 데이트를 즐긴 적이 있다. 나랑은 그 때 기념품 가게에서 그 반지를 사서 덕수의 손에 끼워준 뒤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박장대소 했었다. 아직 성희룡이 만방기원에 나타나지 않았던 시기였다. 비록 싸구려 기념품에 불과했지만 그날 이후 나무 가락지는 단 하루도 덕수의 손가락을 벗어나지 않았다.

면사포 뒤집어 쓴 나랑이 턱시도 차림의 성희룡이 결혼 행진곡에 발을 맞춘다니. 세상 모두로부터 배신당했다는 생각이 가슴을 아프게 찔러왔다. 내 순정을 짓뭉개 마치 추첨 발표가 끝나 휴지 쪽으로 변해버린 복권 신세로 만든 나랑은 그렇다 치자. "자네가 직장만 잡으면 내 사윗감으로 한 표 던짐세"하며 바람을 잡던 오만방 원장, "변덕수씨 만큼 성격 무던한 사람 마누라될 사람은 복도 많지"하며 헷갈리게 만들던 생불여사 모두 야속하기 그지없었다. 변덕수는 좌석을 뒤로 제쳐 두 다리를 길게 뻗어 누으며 사랑과 미움, 질시와 용서, 야속함과 이해에 대해 생각했다. 인간 애증(愛憎)의 감정만큼 미묘한 게 또 있으랴.

시트에 기댄 채 갖가지 상념 속을 헤매던 덕수는 순간 스르르 잠에 빠져 들어갔다. 아! 숨이 멎을 만큼 수려한 경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깊은 산 속,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울창한 숲 나무 그늘 밑에 두 명의 동자(童子)가 바둑을 두고 있다. 17, 8세 쯤 됐을까, 해맑은 눈동자와 전신에서 내뿜는 기품이 한 치의 속진(俗塵)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곳이 말로만 듣던 선계(仙界)로구나. 덕수는 동자들이 펼쳐놓은 바둑판 옆 한 쪽 덤불을 헤치고 퍼질러 앉았다.


바둑은 곧바로 시작되지 않았다. 10분 가까이나 뜸을 들이던 동자가 첫 점으로 천원을 차지한 뒤 혼자 중얼거린다. "돌이 놓여지면 뒷 맛이 없어져 항상 망설여진단 말이야.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덕수는 자신이 마치 중국 고서(古書) 술이기(述異記)에 등장하는 나무꾼 왕질(王質)이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 곳이 석실산(石室山)이란 말인가. 하지만 지금이 진(晋) 나라 시대도 아니고, 나는 나무하러 온 것도 아니다. 비록 실연은 했지만 나는 어엿한 대한민국의 건실한 청년 변덕수다. 그 순간 동자 하나가 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덕수에게 건넨다. 대추 같기도 하고 귤 같기도 한 환약이었다. 향긋한 것이 맛도 기가 막혔고 시장기도 단숨에 사라졌다.

동자들의 바둑이 중반의 고비로 넘어서고 있었다. [장면 2도] 흑이 ▲로 파호해 온 장면이다. 이 한수로 우하쪽 백 일단은 도저히 두 눈을 내기 어려워졌다. 변덕수는 바둑이 여기서 끝났다고 단정했다. 시커먼 흑진에서 도저히 또 한집을 낼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 동자는 별 망설임없이 [1도] 4까지 선수하더니 [2도] 10까지의 수순을 밟았다. 그리고 11. 여기서 잠시 생각하던 흑 동자, 빙긋 웃더니 패국을 선언하는 게 아닌가.



변덕수가 정신을 수습해 자세히 보니, [2도] A의 곳에 백돌이 놓이면 전체 백은 산다. 그 연결로 하변 쪽 옥집이 한 눈 구실을 하는 것이다. 이른바 '옥집 활'의 형태. 옥집 활이라면 변덕수도 일가견이 있다. 언젠가 성희룡과의 대국서 절망적인 곤마를 이 숫법으로 뒤집어 만방기원의 영웅이 됐었다. 그러나 흑이 [2도] A의 곳을 끊으면 어쩌겠다는 것인가. 변덕수는 참지 못하고 동자들을 향해 손가락을 뻗어 A의 곳을 가리켰다.

백 동자가 덕수를 힐끗 바라보더니 "아저씨, 손 좀 자주 씻으세요"하며 농담을 건넨다. 그리곤 [3도]의 수순을 늘어놓아 보였다. 4까지는 필연. 여기서 5때 백 6의 2단젖힘이 절묘하다. 이 뒤 흑 A면 백 B의 치중으로 최소한 흑 두점은 못 살아간다. 또 흑 C면 백 D에 끊은 뒤 흑 A, 백 B로 양자충. 우와! 덕수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무리 신선들의 바둑이라지만 이렇게 신묘할 수가!

흑 동자가 덕수를 향해 말했다. "어느 한 쪽이 안된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쪽에 더 좋은 수단이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인생살이도 이와 똑같은 거죠." 그리곤 고개를 들어 덕수의 손가락을 가리켰다. 이게 웬 일인가. 왼손 무명지에 끼고 있던 가락지가 썪어 있었다. 놀란 덕수가 손을 갖다대자, 나무 반지는 수십년 간 온갖 풍상에 시달려 온 서까래처럼 풀썩거리며 부숴져 나갔다.

덕수는 땀에 절은 채 꿈에서 깨어났다. 내가 지금 어딜 갔다 온 것일까. 신선들의 바둑 한 판을 구경하는 동안 수백년이 흘러 도끼 자루가 썪었더라는 난가(爛柯) 전설. 왕질(王質)이 자루없는 도끼만을 든 채 마을로 귀환했을 때는 마을 사람들도, 세상도 수백년 후의 모습이더라고 했다. 그러고보니 열차 내 승객들의 얼굴도 모조리 바뀌어 있었다. 아뿔싸! 당황한 덕수는 황급히 유리창에 제 머리를 비춰 보았다. 천만 다행으로 아직 백발로 변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열차가 평택(平澤)역에 들어서고 있었다. 잠깐 눈을 붙인 것 같은데 그 새 대전(大田) 신탄진(新灘津) 조치원(鳥致院) 천안(天安)을 지났으니 왕질이 따로 없는 셈인가. 흘낏 옆자리를 돌아보니 노인 두명이 태평스럽게 바둑을 두고 있다. 꿈 속의 그 동자들도 어느 새 되게 늙었군. 덕수는 입이 찢어질 듯 선 하품을 내 뿜었다.

화장실에 가 찬 물로 얼굴을 씻고 왔건만 현실과 꿈 간의 간격은 아직도 모호했다. 단아한 모습으로 대국 중인 노인들의 모습에서 심산유곡(深山幽谷)의 환상은 덕수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 미몽(迷夢)을 대국 중이던 노인이 깨웠다. 상대의 장고에 진이 빠진 듯, 흑 돌을 쥔 영감님이 말을 건네 온 것이다.
"젊은이 결혼했나, 아직 총각인가?"
"예, 아직 미혼입니다."
"관상이 꽤 좋군."
"아,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처복(妻福)이 있겠어. 하지만 색씨를 잘 고르지 못하면 말짱 헛 일이지."
"어떤 여자가 좋겠습니까?"
"화려함보다 수더분한 부인을 만나야 사주가 잘 풀릴 상이야. 자네가 좋아하는 여자보다, 자네를 따르는 처녀를 택하란 뜻이지."

바둑이 계속되면서 대화가 중단됐다. 나를 따르는 처녀라고? 그런 여자가 어디있어. 쓴 웃음을 짓던 덕수는 문득 서봉숙을 떠올렸다. 언젠가 맡긴 대사(臺詞)를 의도적으로 악용해 자신의 대사(大事)를 그르쳐 버렸던 여자. 하지만 그 사건 이후에도 그녀는 덕수 앞에서 전혀 기죽지 않고 당당했다. 그녀는 한번도 요란하게 화장하는 법이 없는 대신 항상 여유넘친 미소로 사람들을 대했다. 내 휴대 전화 번호를 물어왔을 때, 대답을 듣지 못하고서도 무안해하기는커녕 그저 빙긋이 웃었던 여자.

열차가 수원(水原)을 지나 영등포(永登浦) 역에 섰다. 이제 하늘은 온통 먹물을 풀어놓은 듯 시커멓다. 사흘 전 귀향 때와 달리 차창 밖으로 지나쳐가는 풍경이 정겹게 느껴진다. 덕수는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어느덧 기동도 자유스럽지 않은 어머니, 어른 티가 나기 시작한 동생들, 고향의 여러 벗들, 그리고 오나랑과 성희룡과 오만방 씨와 생불여사... 그리고 동자와 영감님들에 이르기까지 숱한 사람들을 만났다. 사흘이 아니라 30년은 족히 흐른 느낌이다. 복잡하게 생각하면 한 없이 복잡한 삶. 그러나 그것은 어떻게 변화한들 역시 '벙거지 장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영등포를 출발하는 순간 변덕수의 허리춤이 찌리리 요동쳤다. 진동으로 해 놓은 휴대 전화가 주인을 찾고 있었다. 덕수는 소리를 낮춘 채 자신의 이름을 댔다. 잠시 뜸을 들이더니 여자 목소리가 전해져온다.
"저 봉숙이에요."
"어, 어쩐 일이요?"
"지금 기차타고 올라오는 길이죠?"
"헉!"
"전화번호 안 알려줘도 다 알아내는 수가 있어요. 그간 어디갔다 오는건지, 몇시에 도착하는지 까지도. 호호. 서울역 정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께요."

열차에서 내렸을 때 천지는 탐스럽게 쏟아지는 함박 눈으로 인해 전혀 딴 나라같은 분위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덕수는 자신이 왕질(王質)보다는 미국 작가 W·어빙의 단편집에 나오는 립밴윙클(Rip Van Winkle) 같다고 생각했다. 그 만큼 낯선 세계에 첫 발을 들여놓는 기분이었다. 쓰린 속을 움켜잡고 탈출하듯 새벽에 떠났던 사흘 전의 서울 땅이 아니었다. 덕수의 오른 손이 천천히 왼손 무명지를 향했다. 손가락을 빠져나온 나무 가락지는 썪기는 커녕 윤을 내며 반질거리고 있었다. 그리곤 아직 온기가 남은 채, 멀리 허공을 날아 어느덧 수북이 쌓인 눈더미에 힘차게 쳐 박혔다. 개찰구(改札口) 너머로, 웬 남자용 벙거지를 든 채 손을 흔들며 웃고 있는 서봉숙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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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xzerg |  2005-01-05 오전 6:00: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덕수씨 화이팅  
soul0307 |  2006-01-13 오후 12:47: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덕수씨 人生에 아직 패맛은 남아있는듯..^^힘내삼..  
탕탕평평 |  2011-09-08 오후 5:47:5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자기를 따르는 여자라...! 좋은 얘기네요  
오금동에서 |  2015-06-19 오후 1:29:5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인간은 어리석어 깨우침이 늦지만, 깨우치기만 한다면, 행복은 찾아온다...
이홍렬 작가님의 격조높은 문장에 그져 감탄할 따름입니다...
잘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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