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민은 사육되었다.
4년전, 박회장으로부터 유정이 홍콩에서 죽었다는 말을 듣고 영민은 큰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이미 3개월전 유정의 실종으로 큰 홍역을 겪었던 영민으로서는 충격이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더군다나 기원을 운영하는 입장으로 실의에만 빠져있을 수도 없는 처지였다.
기원은 연일 만원이었다. 영민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몸도 마음도 다른것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날 때쯤 박회장이 운동을 권유했다. 아니 강요했다.
박회장은 리츠칼튼호텔 휘트니스 클럽 회원권을 영민에게 안겼다. 그리고 매일 하루 2시간씩 운동하는 걸 보고받았다. 하루라도 빠지는 날에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렇게 영민은 점점 박회장의 명령에 복종하는 인간이 되어갔다.
어찌됐든 덕분에 영민은 점점 남자가 되어갔다. 운동으로 몸을 만들고 클럽에서 여러부류의 사람들을 사귀었다.
그러던 어느날 박회장은 영민을 데리고 경기도의 어느 농가집으로 데려갔다. 사람이 살지않는 농가에는 돼지 한 마리가 네 다리가 묶인 채 눕혀져 있었다. 놈은 포박에서 벗어나려는 듯, 아니면 앞으로 자신에게 닥칠 운명에서 벗어나려는 듯 몸부림을 치면서 온갖 오물을 배설하고 있었다.
영민은 금방이라도 토할것 같았다.
“잡아!”
그런 영민에게 박회장이 단 한마디를 던진다.
“예?”
영민은 박회장을 돌아보았다. 무슨뜻인가. 돼지를 잡으라니...
“못알아 듣겠나. 그럼 쉽게 말하지. 죽여!”
“회장님...”
영민은 거의 울듯한 표정이었다. 영민이 그러든 말든 박회장이 옆에 서있는 농부에게 고개짓을 하자 농부가 영민에게 칼 하나를 내밀었다. 한뼘 정도 길이에 양날이 있는 끝이 날카로운 칼이었다. 도축용 칼이다. 칼은 아주 잘 갈린 듯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영민은 애원하는 표정으로 박회장을 돌아보았다. 박회장은 자비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표정이었다. 이유 따위는 없다, 시키는대로 해야한다. 그것이 박회장이다.
영민은 농부의 칼을 받아들었다. 영민이 칼을 받자 농부는 자신의 손으로 목을 긋는 흉내를 내며 웅얼거렸다.
“한번에 하셔야 합니다. 안 그러면 힘들어요. 놈이 발버둥을 치거든요.”
영민은 떨어지지않는 걸음으로 돼지한테 걸어갔다. 돼지는 몸부림치다 지친 듯 몸을 누인 채 씩씩대고 있었다.
- 한번에, 한번에 목을 그어야 한다.
영민은 돼지를 그렇게 가까이에서 본 건 처음이었다. 돼지는 생각보다 컸다.
씩씩대던 돼지가 영민이 가까이 가자 대가리를 치켜들었다. 그 순간 영민의 눈과 돼지의 눈이 마주쳤다. 마치 단추구멍처럼 작은 눈이었다.
그런데 그 눈은 아무 감정이 없었다. 반항도, 두려움도, 슬픔도...
영민은 떨리는 손으로 돼지 눈을 가렸다.
한번에! 한번에! 한번에!
영민은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돼지의 목에 칼을 쑤셔넣었다. 그 순간 피가 솟구치면서 돼지는 단말마같은 비명을 질러댔다. 숨이 끊어지지 않은 돼지는 미친 듯이 몸부림쳤다. 얼마나 몸부림을 쳤는지 앞발을 묶인 줄이 풀어졌다.
기괴한 모양이었다. 뒷발은 묶인 채 앞발이 풀린 돼지는 세 개의 다리로 몸을 일으키며 분수처럼 피를 뿜어댔다.
지옥이었다. 영민은 지옥에서 벗어나려는 듯 절규했다.
“못해!!”
영민은 미처 서지도 못한 채 엉금엉금 기었다. 그 앞을 박회장이 막고 있었다.
“영민아...”
영민은 박회장을 보았다.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이었다.
“이 못난 놈...”
“회장님..전...”
그 순간 박회장의 두꺼비 같은 양손이 철썩 소리가 날 정도로 영민의 얼굴을 움켜잡았다. 얼마나 아픈지 영민은 정신이 번뜩 들었다.
“나를 봐, 고영민!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봐!!”
영민은 박회장을 보았다.
영민이 잘못본 것일까. 박회장의 눈은 핏빛이었다.
“내가 누구냐! 박문식이다! 넌 누구냐! 고영민이 아냐! 너도 박문식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넌 나야!! 넌 내가 되어야해! 고영민이 아니고 박문식이 되어야 한단 말이야! 저깟 돼지는 이 박문식이한테는 파리 한마리 죽이는 것보다 쉬운 일이야! 겨우 이까짓 일로 계집애처럼 징징거리지 말란말이야! 죽여! 저 펄떡대는 고깃덩어리의 숨통을 끊어! 넌 할 수 있어! 박문식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거다! 죽여!!"
영민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
영민은 칼을 들었다. 그리고 발버둥치는 돼지목에 칼을 꽂았다.
칼은 목을 따라 그어졌다.
순직간이었다. 돼지는 그저 고깃덩어리에 불과했다.
그렇게 영민은 일주일에 한마리의 돼지를 잡았다. 그리고 얼마되지 않아 돼지 한마리를 잡는 데 단 1분도 걸리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되자 박회장은 영민에게 개를 잡게 했다.
개는 돼지와 다르다. 돼지는 무저항적 생명체지만 개는 저항을 한다. 비록 긴줄에 묶여져 있었지만 개는 죽음 앞에서 필사적이었다.
이빨은 흉기였다. 영민은 팔과 다리를 물려가며 개와 사투를 해야만했다. 물론 결과는 영민 앞에 고깃덩어리가 되는 건 같았지만 일주일에 한마리씩, 그렇게 20주쯤 지나자 개들은 더이상 영민에게 저항하지 않았다. 영민이 나타나면 개들은 오줌을 질질싸며 꼬리를 내렸다.
그렇게 6개월도 안돼 영민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영민의 눈에는 살기가 돌았다.
“자넨 확실히 변했어. 예전의 고영민이 아니야. 하지만 말이지. 자신의 장점까지 버릴 필요는 없어. 자네의 장점이 뭔지 아나? 순수함이야. 아니, 정확히 말하면 순수하게 보이는 거지. 그건 큰 장점이야. 칼은 그대로 가슴에 감춰두고 순수함은 다시 살려."
어느날 박회장이 영민에게 한 말이다.
영민은 살기어린 눈빛을 바꾸기 위해 다시 꽃꽂이, 서예, 클래식과 명화감상을 해야했다. 그렇게 영민은 박회장에게 2년동안 사육됐다.
신영철. 비아그라 룸살롱 사장이다.
100킬로그램이 넘는 몸무게에 온몸에 훈장처럼 문신을 새기고 다니는 그는 악질 중에 악질이었다.
제법 장사가 되는데도 임대료는커녕 관리비조차 몇달 동안 밀리고 있었다. 한마디로 배째라는식이었다.
박회장은 신사장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 골치아픈 일을 영민에게 맡겼다. 그것이 영민으로서는 박회장한테 맡은 첫번째 일이었다.
영민이 찿아가자 신사장은 룸에서 혼자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신사장은 술만 취하면 사람을 때리는 습관이 있어 언젠가부터 혼자 술마시는 것이 버릇처럼 돼버렸다. 이미 소주 두어 병을 마신 듯한 신사장은 휘번득한 눈으로 영민을 보았다.
“박회장이 보내서 왔다고?”
“예.”
“그래, 무슨 일이야?”
“그동안 밀린 임대료 때문입니다만...”
“임대료?”
“예.”
신사장은 소주 한잔을 들이키고 영민을 다시 보았다. 신사장이 보기에 영민은 그야말로 착하디 착한 사람이었다. 파리 한마리도 죽이지 못할 것 같이 선한 얼굴에 말투도 영락없이 범생이었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오만 것을 다 겪은 신사장으로서 그런 영민은 밥처럼 보였다. 아니 밥보다 더 못한 존재였다.
저런 인간한테 임대료를 받아오라고 보내다니...이제 박회장도 다 됐군.
“이봐, 나 돈 없어. 이거 보면 몰라? 룸에서 소주나 마시고 있는 거...”
“글쎄요, 전 술을 못마셔서 잘 모릅니다. 그저 임대료만 주시면 됩니다.”
영민의 말투는 한없이 공손했고 부드러웠지만 자신의 할말을 또렷이 했다.
신사장이 보기에 그런 영민이 어이가 없었다. 겁이 없는 건지 세상물정을 모르는 바보인지 분간이 안됐다. 어쨌든 신사장의 성질을 건드린 건 분명했다.
“이 새끼가 지금 나랑 장난치자는 거야, 뭐야. 새꺄! 너 죽고싶어?”
“전 임대료를 받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습니다. 어차피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목숨 억울할 건 없습니다만..."
영민은 소주병을 들었다. 영민의 어이없는 행동에 신사장은 황당했다.
“뭐야, 지금 그걸로 나를 치겠다는거야?”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영민은 신사장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소주병으로 자신의 머리를 내려쳤다. 소주병이 박살이 나며 영민의 머리에서 피가 솟구쳤다.
그런 영민의 행동에 신사장은 눈을 부릅떴다. 신사장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영민은 다시 두번째 소주병으로 자신의 머리통을 내려쳤다. 영민의 얼굴은 온통 피투성이었다.
“이...이 새끼가 지금 미쳤나. 너 뭐하는 짓이야, 지금...”
“제가 뭘한 게 아닙니다. 사장님께서 저한테 뭔가를 한 거죠.”
“무슨 뜻이야, 그게?”
영민은 대답대신 핸드폰을 꺼냈다.
“경찰에 연락하겠습니다. 이 정도면 적어도 전치 10주는 나오겠죠.”
“뭐...뭐야!”
영민이 핸드폰 버튼을 누르자 신사장은 황급하게 영민의 손을 잡았다.
“지금 뭐하는 거야? 경찰에 연락을 하다니...”
“사장님이 소주병으로 절 치셨잖습니까. 저같이 힘없는 사람이 기댈 곳은 경찰밖에 더 있겠습니까?"
어이가없는 신사장은 할말을 잊었다.
아니, 당장 이 사태를 수습해야한다. 미치고 팔짝 뛸 일이지만 카메라로 찍어 놓은 것도 아니고 증인도 없다. 경찰이 오면 자신이 왕창 뒤집어쓸 판국이다. 더군다나 신사장은 폭행죄로 집행유예 중이었다. 이번에 들어가면 최소한 5년은 햇빛 보기는 힘들 것이다.
“이...이봐, 진정하라구. 그러니까...그러니까 말이야. 임대료를 주면 되잖아. 그렇지? 임대료만 주면 되는 거지?"
"관리비도 주셔야 합니다."
신사장은 밀린 임대료와 관리비를 전액 현찰로 지불하고 앞으로 임대료를 단 한달이라도 밀리면 가게를 비워준다는 각서까지 써줘야했다.
사람이 그렇게 변할 수 있다는 사실에 영민은 스스로도 믿을 수 없었다. 2년전만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해냈다.
영민은 자신이 괴물로 보였다. 그 괴물이 박회장은 자랑스러웠다. 그동안 꽃을 가꾸 듯 비료를 주고 물을 주어 정성스럽게 가꾼 클론이었다. 그렇게 영민은 몸이 자유롭지 못한 박회장 대신이었다. 박회장대신 해야 할 일들은 말로 차마 다 할 수 없이 야비하고 추잡스럽기 그지없는 일들이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만했다.
폭력은 차라리 깨끗했다. 장애인과 여자, 노인 등 모든것이 도구로 활용됐다. 물론 영민 자신도 하나의 도구였다. 영민은 수많은 여자들과 잠자리를 했고 여자들은 영민에게 원하는 걸 내놓았다.
미영은 일주일에 한번 정도 기원을 찾았다. 특별한 건 없었다. 영민하고 한두 판 정도 바둑을 두고 가는 게 고작이었다.
승률은 거의 50 대 50이었다. 물론 영민이 전력을 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미영은 상당한 고수였다. 미영이 기원을 찾은 지 한달쯤 되는 날이었다.
“잘두었습니다.”
대국을 끝내고 영민이 인사하자 미영이 빙긋 웃으며 한마디 한다.
“언제나 그 말뿐이군요.”
“네?”
영민이 무슨 뜻인가 고개를 들어 미영을 보았다.
“벌써 한달째인데 언제나 같은 말뿐이라서요. 어서오세요, 한수하실까요, 잘두었습니다...영민씨한테 들은 말이라고는 그것뿐인 것 같아요."
“아...그...그랬던가요. 미영씨가 말수도 없고 무슨 얘기를 좋아하는지 몰라서...”
미영이 피식 웃었다.
“하긴...저도 말이 없는 편이죠.”
“...”
달리 할말이 없는 두 사람이었다. 미영은 잠깐의 무료에 문득 창밖을 바라보았다. 잿빛하늘은 금방이라도 한바탕 눈이라도 퍼부울 기세였다. 미영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런 날 생각나는 건 없나요.”
“글쎄요...군고구마가 어울릴 것 같군요.”
영민의 말에 미영이 폭소를 터트렸다. 미영의 웃음에 영민이 토라진 아이처럼 입술을 삐죽거렸다.
“왜 웃습니까?”
“미안해요. 군고구마란 대답이 재미있어서요...”
그러면서도 미영은 웃음을 참느라 쿡쿡댔다.
“보통 남자들은 소주 한잔이 생각난다든가 그러잖아요.”
“전 술을 못 마십니다. 원래 체질이 그래요.”
“그럼 안주만 먹으면 되잖아요.”
“네?”
“같이 나가요. 제가 한잔 살게요.”
미영의 뜻밖의 말에 영민의 입이 벌죽해졌다.
“정말인가요?”
“기뻐하긴 하는 것 같군요. 그런데 이런 말을 꼭 여자가 먼저 해야하나요?”
미영이 보기 싫지 않게 눈을 흘겼다.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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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2 본 내용은 작가의 순수 창작물이므로 무단복제나 도용, 표절을 금합니다.
당근돼지
AK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