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세 여자가 오로 포차에 뭉쳤다.

몸빼와 나마담, 예다움이었다.

하긴 뭉친다고 해봐야 나마담과 다움이만 오면 된다. 어차피 몸빼는 오로 포차 주인이니까.

어쨌든 세 여자는 하루가 멀다하고 포차에서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며 수다떠는 걸 취미로 삼았다. 흔히 하는 말로 아삼육이 잘 맞는다고나 할까. 

하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세 여자는 나이도 비슷한 데다 주량도 용형호제이며 난형난제였다. 거기다 수다떠는 건 마치 카라얀의 지휘에 우아하게 울려퍼지는 베를린 필하모니 악단처럼 반죽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반죽이 잘 맞을 수밖에 없는 것이 그녀들의 화제는 단 한번도 이의를 달 수 없을 만큼 언제나 이구동성이고 공통적이었다는 것이다.

남자는 원수다.

이것이 세 여자가 입만 열면 떠들어대는 수다의 주제였다.

몸빼는 술 한잔만 들어가면 튀어나오는 원수가 5년전 공사판에서 죽은 남편이었다. 고시공부한다는 말에 속아 결혼한 남편은 천하의 백수건달이었다. 평생 자기 손으로 돈 한푼 벌지 못했고 결혼한 후로도 마찬가지였다. 하루 일과가 방에서 뒹굴며 술 마시는 게 일이었다.

처음에는 새색시처럼 애교를 부려가며 남편을 집 밖으로 내보냈고 반년쯤 지나서는 악다귀로 변해 남편을 닦달했다. 그러나 남편은 변하지 않았다. 사람은 안 변해도 환경은 변한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 애는 왜 그렇게 잘 들어서는지. 결혼한 지 3년이 채 되기도 전에 애가 둘이나 생겼다. 이제 몸빼가 부업으로 하는 일로는 네 식구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다. 

몸빼는 시장에서 좌판을 벌렸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었다. 몸빼는 30살이 채 되기도 전에 60살 할머니로 변했다.

어느날 몸빼의 터진 손을 보고 남편이 공사판이라도 나가겠다는 말을 했다. 몸빼가 결혼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감동한 날이었다. 

그리고 1년은 행복했다. 딱1년...

남편은 벽돌을 지고 계단을 오르다 떨어져 그 자리에서 죽고 만다. 낮에 술을 마시고 일한 게 화근이었다. 술을 마시고 일하다 생긴 일이라 회사는 어떠한 보상도 해줄 수 없다고 했다. 남편은 개값도 못 받고 그렇게 죽었다. 몸빼에게 애 둘만 남겨둔 채...

그렇게 몸빼에게 자신의 인생에 가장 큰 원수는 남편이었다. 더불어 세상 모든 남자도 원수가 되었다.

나마담은 자신의 짱돌에 희생된 남자들의 얘기가 전부였다.
현재까지 92명, 앞으로 8명만 채우면 100명이라고 한다. 과연 누가 100번째 희생자가 될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 희생자들에 얽힌 드라마틱한 얘기는 필설로 다 옮기지 못할 정도였다. 사실 몸빼하고 다움이가 들은 얘기도 아직 50명이 채 되지못했다. 아마 그 짱돌얘기를 글로 쓴다면 새로운 천일야화가 될 것이다.

다움이는 몸빼와 나마담과는 조금 다른 경우다. 몸빼와 나마담이 갖는 남자에 대한 적의가 남자 때문에 발생한 원인이라면 다움이는 비극적 운명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도 설명했듯이 다움이는 일류 헤어스타일리스트다.
그녀는 인생 자체가 마치 실크로드처럼 순탄했다. 미용 일을 처음 배울 때부터 그녀는 뛰어난 자질과 폭넓은 대인관계로 일찌감치 순탄한 출세가도를 예고했다. 그런 그녀가 어느날 친구들하고 우연히 점이란 걸 보러간 적이 있었다. 그녀 나이 21살 때였다.

점쟁이는 다움이를 보고 감탄을 했다. 거의 완벽한 사주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자신이 철학을 한 지 30년이 넘었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좋은 사주는 처음이라고 입에서 침이 튀도록 칭찬을 했다. 사실 점이지만 칭찬들어서 기분나쁠 건 없지 않은가.

다움이가 두둑하게 복채를 내고 일어서려는데 점쟁이가 갑자기 다움이를 잡아 앉혔다.

“내가 깜빡하고 하나 놓친 게 있는데 자네 지금 만나는 남자있지?”

“예, 있어요.”

역시 점쟁이는 족집게였다. 다움이는 동갑인 남자와 열애 중이었다.

“당장 헤어져.”

“왜요? 안 좋은가요?”

“헤어지라면 헤어져. 헤어지지 않더라도 어차피 헤어질 거야. 죽어서...”

“예? 죽어요? 누가요?”

다움이는 깜짝 놀랐다.

“누군 누구겠어. 자넨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 명줄이니 그 남자가 죽겠지. 그 남자가 죽으면 자네 이성운(異性運)이 깨져. 남자복이 없단 말이야. 지금 헤어지면 그 남자도 살고 자네 이성운도 탄탄대로일 거야. 그러니 두 사람을 위해서 헤어져.”

점쟁이 말에 헤어질 연인이 어디 있겠는가. 찝찝했지만 다움이는 점쟁이 말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다. 

남자는 대학생이었다. 점을 보고나서 6개월 후 남자는 군대를 갔다. 그리고 1년 후에 남자는 사고로 죽었다. 점쟁이 말은 우연처럼 맞아 떨어졌다. 그리고 그 우연은 다움이에게 사실로 다가왔다. 

남자가 죽으면 이성운이 없다.

점쟁이의 말이었다.

남자가 죽고 1년동안 슬픔에 잠겨있던 다움이는 다른 남자를 만났다. 다움이는 일할 때와는 다르게 남자에게 순종적이고 헌신적인 여자였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남자에게 바쳤다.  그런데 두번째 남자도 다움이를 떠났다. 이유도 이유 같지 않았다. 돈을 잘 벌어서 싫다는 것이다.

세번째 남자는 결혼 직전까지 갔는데 남자의 엄마 때문에 헤어졌다. 남자의 엄마가 약을 먹었다. 간신히 살아난 엄마의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은 “그 여자는 안돼”였다. 결국 남자는 다움이를 떠났다.

한 남자만을 사랑하고

한 남자만을 섬기고

한 남자만을 위해서 살려는 다움이는 그렇게 부득불 남자들을 떠나보내고 또 다른 남자를 만나야했다.

네 번째...다섯번째...여섯번째...

그렇게 떠난 남자를 열 손가락으로 다 셀 수 없게 되자 다움이는 인간의 남자란 개체에 대해서 포기하기에 이른다. 

다움이에게 남자란 단어는 지워져버렸다.

그렇게 다움이는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몇 년 후, 다움이가 31살이 되던 해...그 남자가 다움이에게 다가왔다.

백구두.

명동에서 모두들 그를 그렇게 불렀다. 사채를 하는 남자는 명동의 신사 중에 신사였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하얀 양복에 백구두를 신고 다녔다. 

다움이보다 20살이나 많은 남자는 그저 아는 아저씨였고 삼촌 같은 사람이었다. 언제나 밥은 먹었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자상하게 물어보는 아저씨였다. 때로는 혼자 술마시기 싫어 불러낼 사람이 없을 때 부담 없이 대작을 해주기도 하고 속상한 일 때문에 누군가에게 밤새 수다를 떨고 싶을 때도 가만히 수다를 들어주는 그런 아저씨였다. 

그런 다정하고 편한 아저씨가 감동도 시키기도 했다. 어느날 헤어샵 입구에 1000송이 장미로 치장을 해서 출근하는 다움이는 눈물을 흘릴 뻔하기도 했다. 또 어느 비오는 날에는 십여 명의 남자들이 양옆으로 도열해 샵에서부터 차 타는 곳까지 우산을 받쳐들게 하기도 했다.

어느 눈내리는 겨울날...

집까지 바래다준 남자에게 다움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저씨, 고마워.”

“부탁이 있는데...”

남자는 다움이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뭔데?”

“아저씨 말고 다른 호칭은 안될까?”

다움이는 문득 그 말뜻이 뭔지 황망하게 남자를 바라보았다. 황망한 다움이의 눈동자가 그윽한 남자의 눈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리고 두 사람의 입술이 하나로 겹쳤다. 하얀 눈이 그들 머리 위로 수북이 싸이도록 그렇게 두 사람은 한 덩어리가 되었다.

다움이는 매우 행복했다.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남자를 만난 듯했다.

나이 따위는 상관없었다. 하긴 20살 차이가 뭐 어떤가. 

남자는 실제 나이보다 어려보여 두 사람이 다녀도 잘 어울리는 한 쌍으로 보였다. 호칭은 아저씨에서 자기로 바뀌었다. 자기로 바뀌고 남자는 다움이에게 더더욱 지극 정성이었다. 세상에 그런 남자는 없을 것이다.

두 사람의 사랑은 명동의 호사가들에게 좋은 가십거리였다. 

탑 헤어스타일리스트와 명동의 젠틀맨의 사랑. 

어느 연예인 못지않은 가십이었다. 그리고 그에 따르는 온갖 루머도 뒤따랐다. 

전부 남자에 대한 루머였다.
아직 미혼인 백구두는 사실 다섯 번을 결혼했다라든가 불치의 병에 걸렸다라든가, 채권이 전부 깡통이됐다라든가...마약장이에 노름장이까지...

사실 모든 건 헛소문이었다. 단 하나만 빼고...

백구두는 노름을 좋아했다. 노름판이 벌어지는 곳에는 종류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백구두가 있었다. 고스톱에 포커에 마작, 내기바둑까지.

백구두가 노름을 한다는 걸 안 다움이는 노름을 하지 말라는 말을 수십 번도 더 넘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말은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단지 “적당히 하세요”라는 말로 말끝을 흐렸다. 행여 남자가 기분이 상할까봐...그래서 남자가 떠날까봐 그것이 두려웠다.

어느날 백구두는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그리고 노름도 하지 않았다. 아마 운용할 수 있는 자금이 다 떨어진 모양이었다. 다움이는 그런 백구두에게 가만히 통장 하나를 내밀었다. 통장을 받아든 백구두는 감격했다. 백구두는 꼭 갚겠노라면서 아이같이 좋아하며 득달같이 노름판으로 뛰어갔다.

그렇게 다움이는 백구두에게 자신의 통장을 바쳤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자기 스스로 그런 것이다. 그리고 통장이 다 떨어져갈 때쯤 처음으로 백구두가 다움이에게 요구했다.

“마지막이야. 이걸로 끝낼게. 아주 큰 건이야. 한번만 도와줘.”

다움이는 백구두의 눈을 보았다.
간절한 눈이었다.

백구두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자신이 더욱 가슴이 아플 것 같았다. 다움이는 미련없이 헤어샵을 담보로 돈을 대출받아 백구두에게 주었다.

“잃어도 좋아. 내일 아침 집으로 돌아온다고 약속해.”

“약속할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백구두는 돌아오지 않았다.

소문만이 남았다.

가지고 간 돈을 전부 날리고 오른손마저 잘렸다는 소문이었다.

다움이는 몇날 며칠을 울었다.

나중엔 눈물도 안 나오고 한숨만 나왔다. 그 한숨이 자신의 인생이고 삶이었다. 한숨을 토해내는 만큼 삶에 의욕을 잃었다.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단지 자신을 아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 그래서 샵을 정리하고 구석지고 구석진 곳으로 들어왔다. 그곳이 바로 오로동이다.

“야야...남자란 건 말이야...딸꾹...다아 필요없어 딸꾹...이거 왜이래...남자 없어도 잘 산다 이거야.”

다움이의 혀가 꼬이기 시작했다. 술 취하면 언제나 하는 말이다.

“다움이 이거 또 취했네...야, 소주 몇 잔이나 마셨다고 벌써 취해. 한잔 받아.”

“좋아, 좋아, 따라 봐. 죽자, 마시구 죽자구...”

다움이는 숨도 안 쉬고 소주 한잔을 마시고 젓가락을 두들겼다.

...해에 저어문 소양강에...

...아싸 살리고...

...황호오오니 지이면 외로오운 갈대밭에...

다움이의 선창으로 세 여자의 합창이 시작됐다. 그날도 그렇게 몸빼의 포차는 세 여자의 수다와 노랫가락으로 불이 꺼질 줄 몰랐다.

그해 여름의 늦더위는 정말이지 극성이었다. 8월의 끝자락에도 한낮의 수은주는 30도를 오르내렸다. 덕분에 오로기원의 원장인 우당탕은 입이 더이상 찢어질 수 없을 만큼 찢어졌다. 

날이 더우니 사람들이 꾸역꾸역 기원으로 몰려왔다. 3천원 내고 하루종일 이 더위를 피할 곳이 기원 말고 어디 있겠는가. 기원 열자마자 기료 3천원을 내고 더위를 식혔다가 볼일보고 다시 기원으로 오는 기원 피서족들로 연일 기원은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우당탕은 만원인 기원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런데 거기에 옥의 티가 있었다. 저기 창가에 바둑을 두고 있는 노인이다. 60살이 훨씬 넘은 듯 보이는 꽤재재한 노인은 그야말로 바둑 매너가 발바닥이었다.

열흘 전부터 나타난 남자는 자신의 기력을 6급이라고 했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강3급, 아니 웬만한 데서는 1급 정도의 수준이었다. 내기바둑만 아니라면 기력을 속인들 뭐라하겠는가. 노인은 처음에는 기료에서부터 시작해서 담배내기, 커피내기를 하더니 급기야 돈내기로 내기바둑을 진화시켰다.

이제는 방내기로 보통 만원에 2천원이다. 승자는 기본 걸어놓은 만원을 먹고 이긴 방 수에 따라 2천원, 4천원씩 보너스를 받는다는 얘기다. 당시로는 상당히 큰내기였다.

지금까지 노인에게 당한 피해자가 한두 명이 아니다. 우당탕은 노인에게 뭐라고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노인의 기력 속이는 수법이 워낙 교묘해서 마땅히 할말이 없었다. 

새로운 피해자인 워러는 얼굴이 시뻘개져서 바둑판을 노려보았다. 아무리 봐도 만방을 피할 길이 없다. 워러는 돌을 패대기치고 싶었지만 불계는 3만원이다. 이 판을 잃으면 오늘만해도 벌써 20만원 가까이 잃는 셈이다.

지금까지 워러는 100만원 가까운 돈을 노인의 주머니 속에 넣어줬다. 하지만 가진 게 돈뿐인 워러 아닌가.

“젠장! 졌수다. 한판 더 합니다. 이번엔 2만에 5천, 어때?”

“허허...나야 딴 사람이니 선택의 여지가 없지. 그렇게 합시다. 원장, 여기 커피 좀 시켜줘.”

우당탕은 노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하고 워러를 은밀히 불러냈다.

“이봐, 워러. 그만하는 게 좋겠어.”

“왜요, 형님.”

“저 노인네하고 자넨 상대가 아냐.”

“뭐요? 상대가 아니라니...저 노인네 바둑 별거 아냐. 내가 실수로 지는 거라니까. 아까도 형님 봤잖수. 내가 두 판 연짱 이기는 거...내가 맘만 먹으면 저런 노인네는 상대가 안돼. 두고 보라구. 판을 올려놨으니까 몇 판만 먹으면 원상복구될 거라구.”

워러도 역시 다른 피해자들하고 같았다. 눈이 뒤집혀져서 무슨 말을 하든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