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o 세계 인터넷바둑의 허브
  • 겜임&채널
불나비 1
Home > 소설/콩트 > 박쥐
불나비 1
2009-06-30 조회 5301    프린트스크랩

       




이 세상에서 가장 사연이 많은 곳...

누군가는 그런 얘기를 한다.


“그냥 끈이 있어서 끌고왔는데 뒤에 소가 달려있었어요. 난 죄가 없거든요.”


그렇게 얘기들을 한다.

죄 있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없다.

그런 죄 없는 사람들만이 사는 곳.


교도소.




죄가 없어서 그런지 그들은 음식도 웰빙식사로 잡곡밥을 먹고 적당한 운동과 적당한 일거리 규칙적인 기상과 취침을 강요 당한다. 

저녁 9시, 그들의 취침시간이다. 9시 이후에는 지구가 깨지는 한이 있어도 모포 깔고 누워야한다. 저녁 9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는 개미새끼 한 마리도 움직여서는 안된다.


마치 모든것이 정지되어버린 듯한 공간. 처음에는 그 적막감에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차츰 익숙해지면 오히려 취침시간 이후 들리는 소리가 더욱 신경을 긁게 된다. 심지어는 감방동료의 잠꼬대소리마저...11시면 잠꼬대조차도 조용해지는 시간. 너무 조용해서 개미가 기어가는 소리도 들릴 지경이다.

그런 시간에...


“408번.” 


교도관 두 명이 13방 철문을 개방하고 나지막이 누군가를 호명했다. 그것은 마치 사랑을 속삭이는 듯 아주 낮은 은밀한 목소리였지만 워낙에 조용한 탓에 마치 적막감을 송두리째 깨트리듯 감방 안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교도관의 호명에 13방의 수감자들이 한 사람 두 사람 눈을 부비며 몸을 일으켰다.


“408번 빨리 일어나.”


두 명의 교도관 중 인상이 더러운 교도관이 호명한 사람이 일어나지 않은 듯 다시 한번 채근하자 수감자 중 한명이 새우잠을 자고 있는 누군가를 흔들었다.


“이봐, 408번...”


“젠장...알았다구...”


수감자가 흔들어 깨운 남자는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느릿느릿 상체를 일으켰다. 마른 몸매에 얼굴이 앳돼 보이는 남자였다.


“늦었어, 빨리 준비해.”


인상이 더러운 교도관은 느려터진 남자의 행동이 맘에 들지않는 듯 짜증 섞인 목소리로 남자를 닦달했다.


“거 그만 좀 조르쇼. 발정난 암캐도 아니고...”


“뭐야, 이 새끼가...”


“이봐, 참아, 참으라고...”


남자의 말에 인상이 더러운 교도관이 금방이라도 남자를 후려칠 기세로 진압봉을 꺼내들자 수학선생같이 생긴 교도관이 부둥켜안으며 그를 말렸다.


“원래 저런 놈이잖아. 공연히 건드려봐야 시끄러워질 뿐이라구...더군다나 오늘이 마지막인데...”


수학선생같은 교도관의 말에 일단 진정은 했지만 인상이 더러운 교도관은 분을 삭이느라 씩씩댔다. 교도관들이 그러든 말든 남자는 몸을 앞으로 굽히거나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몸을 풀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희한한 남자였다. 겨우 해봐야 20살 정도의 나이인데 말투나 행동은 세상의 풍파를 다 겪은 듯했다. 


남자가 몸을 다 풀었는지 옷을 주섬주섬 입고 나갈 준비를 하자 그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수감자 중 한명이 무겁게 입을 뗐다.


“건투를 빈다.”


“예, 방장님.”


남자의 대답에 방장이라고 불리는 수감자는 남자를 뜨겁게 끌어안았다. 길고 긴 포옹이었다. 마치 방장은 자신의 기를 남자에게 모두 줄 듯이...

포옹이 끝나자 남자가 앞장섰다.


“갑시다.”


“전부 다들 취침해. 쓸데없는 짓하지 말고!”


인상이 더러운 교도관이 남자한테 받은 분이 아직도 덜 풀렸는지 공연히 애꿎은 수감자들한테 으르릉 거리며 감방문을 닫았다.




복도는 마치 끝이없는 듯 길었다. 감방복도를 걸을 땐 아무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생각을 하면 복도 끝까지 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4개의 자동개폐문이 열리고 닫혔다. 

마지막 문이다.

복도의 끝에 다다르면 T자 길이다. 왼쪽으로 가면 면회실이다. 오른쪽은 교도관 휴게실이다.


교도관들은 남자를 데리고 오른쪽으로 꺾었다.

수감자들은 절대 들어갈 수 없는 곳.

교도관들은 남자를 데리고 교도관 휴게실 안으로 들어섰다.


뜻밖이었다. 휴게실 안에는 교도관 외에도 여러 명의 수감자들이 있었다.

남자가 들어서자 일제히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전부 다들 기다리다 지친 표정이었다. 


“뭐하다 이제야 온 거야!”


교도관 중 한명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보안계장이다.


“408번 이...이놈이 하도 굼떠서...”


인상이 더러운 교도관이 혹시라도 자신에게 불똥이 떨어질까봐 황급하게 늦게 온 이유를 둘러댔다. 계장은 408번을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다 어쩔 수 없는 놈이라는 듯 체념어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뭐해, 새꺄! 빨리 앉아.”


휴게실 가운데에는 테이블이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바둑판이 놓여져 있었다. 바둑판 앞에는 이미 한 남자가 앉아있었다.


수의번호 527번.

독사라고 불리는 남자는 얼굴에 길게 칼자국을 훈장처럼 갖고 있는 폭력전과 7범의 수감자였다.


408번은 독사 앞에 마주하며 앉았다. 역시 늘보처럼 느릿느릿한 행동이다. 그 느릿한 행동에 독사의 입에서 기어코 한마디가 터진다.


“씹탱이, 좀 빨리빨리 할 수 없어?”


“밥먹는 입으로 똥싸는 소리하고 있군...”


“뭐야! 이 개새끼가 죽을라고...!!”


“527번!”


독사가 금방이라도 408번을 죽일 듯이 자리에서 일어난 것과 그를 제압하는 계장의 목소리가 유리창 깨지듯이 울려퍼진 건 동시였다.


“앉아, 527번!”


독사는 계장의 명령에 잠시 408번을 잡아죽일 듯이 노려보다 털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자. 규칙은 전과 동일이다. 생각시간 10분, 초읽기 30초 3개. 베팅은 3구간으로 구분된다. 50수, 80수, 100수...베팅 배율은 100대75대50, 베팅 수는 제한이 없다. 질문 있나?”


“항상 하는 건데 뭔 질문이 있겠습니까. 빨리 시작합시다.”


“기다리다 거시기털 다 새겠네.”


계장의 말에 수감자들은 드러내놓고 말은 못하지만 조금은 불만스러운 듯 한마디씩 던졌다.

수감자들은 일종의 베팅매니저였다. 약간의 수수료를 받고 자기 방을 포함하여 몇개의 방의 베팅을 위임받아 베팅하는 것이다. 물론 베팅하는 돈은 수감자들의 영치금으로 한다.


베팅 배율이라는 것은 10000원을 베팅했을 때 50수까지는 100프로, 80수까지는 75프로, 즉 7500뿐이 인정이 안된다. 100수까지는 50프로, 반이 깎이는 5000원이다.

만약 1구간에서 10000원을 베팅했는데 반대쪽이 유리해져 반대쪽에 베팅해 양매를 하려면 2구간에서는 15000원을 베팅해야 본전이다. 3구간에서는 20000원이다. 그래서 성급하게 베팅을 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2구간 3구간으로 넘어가면 배율이 떨어지니 그것도 계산에 넣어야한다.


한마디로 베팅매니저들에게는 피를 말리는 시간이다. 더군다나 오늘은 2,3개월에 한번씩 오는 최대 빅매치다. 빅매치라는 건 결국 영치금이 최고조에 달해있다는 뜻이다. 오늘 대국에서는 잘하면 3,4천까지 베팅금액이 올라갈 수도 있다. 마침 교도관의 월급날도 어제였으니...이런 대국에 입이 찢어지는 건 계장이다. 계장은 총 베팅액의 20프로를 가져간다.


“216번, 자리에 가서 앉아.”


계장의 말에 수의번호 216번이 대국 테이블 옆에 놓인 작은 테이블에 가서 앉았다. 테이블위에는 초읽기 계시기와 기보가 놓여져 있었다. 50대로 보이는 216번이 헛기침을 한번 하고 나지막이 말했다.


“돌을 가려주세요.”


독사가 한움큼 돌을 쥐자 408번이 흑돌 하나를 놓는다. 

홀수, 408번이 흑번이다.


“408번, 13방 베팅 있나?”


“240만원입니다.”


계장의 말에 408번이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408번의 대답에 계장이 다이어리를 뒤적이고,


“올인이군. 527번은?”


“올빵입니다.”


독사는 여전히 408번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독사가 그러든 말든 408번은 무심하게 바둑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에또...19방은 210만원, 맞지?”


“예.”


“좋아, 시작해.”


계장의 명령에 408번이 천천히 돌통에 손을 넣었다.


달그락달그락...

408번은 돌통에서 돌의 촉감을 음미하는 듯 손으로 돌을 몇 번 굴리다가 하나를 골라 천천히 길게 손을 뻗어 우상귀에 착점을 한다.


...따악...


그 손끝에 모든 눈이 쏠렸다. 

대국자 두 명.

계시원 한 명.

계장을 포함한 7명의 교도관.

그리고 베팅매니저 수감자 9명.

총 38개의 눈...눈...눈.

기껏해야 4평 남짓한 공간 안에 그 수많은 시선들은 마치 잔뜩 당겨진 바이올린줄처럼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고 있었다.




13방 안.

이 시간이면 꿈나라에 가있을 수감자들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나지막이 두런거리고 있었다.


“408번이 이기겠지? 난 영치금 7만원 다 걸었는데...”


“젠장...7만원이 돈이야? 난 25만원이 걸려있다고...”


“이번에 상대가 독사라면서...”


“빅매치니까 당연하지...”


“지금까지 408번이 7승2패로 압도적이긴 한데 이번에 독사가 칼을 갈았다고 하더라고...”


“그놈의 칼 갈아봤자지...408번한테는 안돼.”


“그만들하고 자.”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방장이 수감자들을 나무라듯이 조용히 말하자 수감자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잡아당겨 잠을 청했다. 그래도 수감자들의 눈은 더욱 말똥말똥해졌다. 방장 역시 마찬가지다. 이번 판에 100만원 가까운 돈을 걸어놓은 방장이었다. 


...딱딱딱...

돌놓는 소리가 빨라질수록 베팅매니저들의 눈과 입은 바빠졌다. 눈은 바둑의 전판을 읽으면서 입은 베팅액을 불러야했다.


“527번에 2방,7방 260만.”


“408번에 11방, 21방 170만.”


“408번에 3방, 6방, 12방 180만.”


“527번에 9방, 18방 220만.”


긴장감이 가득한 냉기는 점점 뜨거운 열기로 변하고 있었다.

1구간이 끝나기도 전에 베팅비율은 880대930이었다.

치열하지만 미세하게 독사가 앞서는 바둑이다.


바둑은 1구간이 끝나고 2구간으로 접어든다. 대국자는 물론이지만 매니저들에게는 그야말로 지옥 같은 시간이다.

2구간이 승부처다. 1구간이 미스베팅이면 복구를 해야 하고 1구간이 굿베팅이면 더욱 베팅액을 올려야한다. 그리고 또 3구간도 생각해야하고. 머리통이 최신형 컴퓨터라도 부족할 판국이다. 그러나 바둑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딱...

그 순간 408의 한수가 놓여진다. 무심한 착점...날일자를 건너붙였다.

독사가 움찔 408번의 수를 내려다보았다. 설마 그걸 끊으랴 했는데 408번이 여지없이 끊어버린다. 상변에서 길게 중앙으로 뱀처럼 늘어진 돌 20여 개가 끊어진다. 일순 매니저들도 바둑판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독사가 힐끗 계시기를 본다. 남은시간은 2분. 

끊어져도 안에 궁도가 넓어 쉽게 죽을 말이 아니다. 그렇다고 쉽게 살 수도 없다. 살기만하면 흑은 엄청난 손실을 입는다. 


독사의 눈에 핏발이 선다.

마치 모든 것이 정지돼버린 듯한 침묵. 독사의 머릿속에 수천, 수만 경우의 수읽는 소리만이 들린다. 그때 침묵을 깨고 408번이 하품을 하듯 한마디를 던진다.


“쯧쯧...천하의 독사도 한물갔구먼...그 정도 생사도 한눈에 못보고...”


“뭐야!!”


“그 넓은 천지에서 두 집 못나면 바둑돌 놓아야지.”


“이 개새끼가!”


금방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느물대는 408의 안면에 주먹이라도 꽂을 듯한 독사의 기세를 말린 건 216번 계시원의 초읽기였다.


“527번, 초읽기 들어갑니다. 하나...둘...”


계시원의 초읽기에 독사는 허겁지겁 바둑판을 보았다. 아까 봐둔 수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

...딱...

한 집을 내자는 수다.


408은 호구자리를 들여다보며 한 집을 허용하지 않는다.

치열한 흑백의 착점.

백은 겨우 한 집을 만들며 그 넓은 공간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70수를 넘자 매니저들은 행여라도 늦을 새라 게거품을 물고 베팅액을 불러댔다.


“408번에 350만.”


“408번에 330만.”


“408번에 420만.”


바둑은 끝났다. 3구간을 생각할 필요도 없다. 매니저들은 가지고 있는 돈을 전부 408번에 쏟아부었다. 계장은 매니저들의 외침에 부지런히 다이어리에 베팅액을 체크하며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참을 수가 없었다.


베팅비율 3670대 930. 

408번의 압도적인 비율이다.


<2편에 계속>


(2편 보기) <== 여기클릭!! 

 

2009-02-17  본 내용은 작가의 순수 창작물이므로 무단복제나 도용, 표절을 금합니다.

 




  • 페이스북
  • 구글+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트위터
이전 다음 목록
┃꼬릿글 쓰기
선비당수 |  2009-06-30 오후 4:24:2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잘 읽었습니다. 다음편이 기대되는 군요  
박쥐 |  2009-06-30 오후 5:39:1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음..까마득히 잊고잇엇는데 다시보니 새롭군
이어서 써야지..^^
오로다방 좀 더 쓰다가 쓸게요.. 8월부터..  
당근돼지 |  2009-07-01 오전 7:23:3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잘 보고 갑니다...........감사 합니다.  
stupid |  2009-07-04 오전 11:29:2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잘 봤슴니다~~~  
홍따 |  2009-07-04 오후 8:05:0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잘 봤습니다 재미있네요 ^^  
홍따 |  2009-07-04 오후 8:05:2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잘 봤습니다 재미있네요 ^^  
못난?미지 |  2009-07-05 오후 12:37:1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재미있당~ 후속편 빨리나오길...  
AKARI |  2009-07-08 오후 3:55:0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박쥐님 안녕하세요^^ 불나비도 ..잘 있네요 저도... 불나비 많이 좋아하는것 아시지요..불나비5편을 읽으면서 언뜻언뜻..느껴지는..사범님들의 향기.이름..느낌(아니면 할수 없구..ㅠ.ㅠ)들이 있어 더욱 박쥐님은 고수님이야 하고 웃었는데...불나비를 기다리는 십만명의 독자가 있음 그 속에 제가 있을거구요 천명이나 백명이나 열명의 독자가 있다면 그 속에 제가 있을거예요...  
AKARI |  2009-07-08 오후 3:56:2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나중 시간 넉넉해질때..마음껏 읽고 많이 행복하고 싶어요. 순진한 독자(기다리는 독자님들 무지 많으실건데...ㅎㅎ)의 가슴에 불을 당기셨으니 책임감(?)을 가지시고 꼭 완결까지 화이팅하셔요.. 좋은 소설 마음껏 읽게 해 주셔서 늘 감사했습니다 꾸벅.  
박쥐 뜨금.. 가슴을 찌르네요.. 아카라님 말이.. ㅠㅠ 네에.. 쓸게요..












* 띄어쓰기 포함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000 / 400바이트)
대국실입장하기
다운로드 이용안내 고객센터
정회원가입
오로볼구매
가장 많이 본 기사
스폰서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