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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女子(Ⅳ 끝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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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女子(Ⅳ 끝내기)
2009-06-04 조회 5241    프린트스크랩

 

 

이 바둑이란 게 참으로 묘하다. 똑같은 사람이 두는데도 그날 심리상태와 컨디션, 상대방에 따라 1~2급 정도는 쉽게 차이가 난다. 


오늘 박회장의 바둑은 내기라고해서 특별히 실력이 나아지거나 달라진 건 없었다. 단지 전처럼 무작정 전투로 일관하지 않았을 뿐이다. 차분히 자신의 집을 지키면서 두텁게 뚜벅뚜벅 바둑을 둬가고 있었다.


거기에 비해 영민은 뭔가 힘이 들어가 있었다. 꼭 이겨야한다는 심리적 부담 때문일까. 바둑이 자꾸 위축되었다.


계가를 해본다, 할 때마다 다섯 집 이상씩 오차가 난다.

집중이 안된다는 뜻이다.


자신감이 없다. 아니 자신감보다 영민의 어깨에 올려진 부담의 무게가 너무 컸다.

계가까지 가기에는 너무 고통스런 영민이었다.


영민은 우상변쪽을 노려보았다. 흑돌 10여 개가 무질서하게 널려있었다. 확실하게 두 집이 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미생마로 보기에는 그 덩치가 너무 컸다.


영민은 침을 꿀꺽 삼켰다.
피말리는 계가보다는 차라리 피터지는 싸움이 나을지도 모른다.


3점바둑이다. 하수도 한창 하수 아닌가. 내가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그래, 이건 어린애 손목 비틀기다.


마음을 다잡은 영민은 상변쪽으로 몇 개의 돌을 놓았다. 도주로를 미연에 차단하는 돌이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흑은 얼씨구나 변쪽에 집을 벌어들인다.


대충 포위망은 완성되었다.

잡는다! 잡고야만다!

영민은 어금니를 지그시 악물고 백돌 하나를 흑돌 중앙에 떨어트린다.


박회장이 멈칫 자신의 돌 사이에 뛰어든 백돌 한점을 본다. 그제야 백의 속셈을 눈치 챈 모양이다.


박회장이 힐끗 영민을 보았다. 영민의 눈과 마주친다. 그 눈은 지금까지 본 영민의 눈이 아니었다. 핏발이 선 눈이었다. 마치 포식자처럼, 혹은 벼랑에 몰린 피식자처럼...


어느쪽이든 상대를 죽여야 살 수 있는 입장이다.

타협은 없다.


박회장은 잠시 백돌을 내려다보더니 가만히 한점을 잡는다. 흑으로서는 백 한점을 잡지 않을 수 없다. 그 돌이 빠져나가면 흑은 대번에 두동강이 난다. 어쨌든 흑은 백돌 한점을 포획하면서 일단 한집을 확보했다. 관건은 나머지 한집을 어디서 내느냐였다.


설마, 그 넓은 데서 한집을 못내겠는가.
그렇다고 쉽게 낼 수도 없는 모양이다.


흑과 백, 둘 다 처절했다.

백은 흑이 한집을 낼 곳을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고 파호했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무리수들이 총동원된다.


곳곳이 옥집이고 파호모양이다. 급기야 백은 흑이 한집을 낼 모양에서 자신의 돌 아홉 점이 끊기는 고통을 감수하면서 옥집으로 만들었다. 외따로 떨어진 백 아홉 점, 역시 집이 없는 모양이다.

만약 백이 집을 만들지 못하면 유가무가로 백 사망, 백 필패다. 

한집만 만들어도 빅, 역시 백 필패.


백은 후수로 거의 한집 모양은 만들어져 있었다. 영민이 아무리 뚫어지게 봐도 후수로 또 한집을 만들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더위 때문인지 긴장 때문인지 땀이 비오듯 흘렀다. 손도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영민이 한집이 날 공간에서 날일자로 넓게 벌린다. 착점에 힘이 없다. 

박회장이 백의 착점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엉뚱하게 다른 곳을 놓는다. 행여라도 한집이 날수 있는 공간을 없애버린다.


순간 영민의 눈이 번득였다. 심장이 고동을 쳤다.

이겼다!!


백은 다시 날일자로 집을 넓혔다. 착점이 날렵했다. 

흑이 뭐 별수 있느냐는 식으로 가운데 치중을 한다.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한집이지 않느냐는 거다.


그러나 흑의 착각이다.

백은 한집이라도 4궁이다.

소궁대궁이다.


흑 전멸!




와장창...

뭔가 박살이 나는 소리에 유정은 방문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회장님.”


“저리 비켜!!”


아마도 박회장이 분을 이기지 못해 바둑판으로 유리탁자를 내리쳤는지 유리탁자가 산산조각이 나고 박회장 손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여보!”


유정이 득달같이 달려가 박회장의 손을 감싸 지혈을 했다.


“회...회장님...”


영민은 난처한 표정이었다.

박회장은 지혈을 하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화를 삭이는 모양이었다.


“고사범, 오늘은 일단 가봐. 약속은 지키겠네. 어찌됐든 10년 동안 살을 부비며 산 여잔데 정리할 시간은 줘야지. 수일 안으로 보낼 테니 걱정 말게...이걸로 자네와 내 인연은 끝난 걸세.”


“알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건강하십시오. 회장님.”




“고영민 그 친구 어떻게 생각해?”


영민이 돌아가고 난 후 박회장은 이틀 동안 말이 없었다. 유정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이틀 만에 박회장이 한 말이다.


“여...여보, 정말 오해여요. 난 고사범하고 아무 일도 없었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묻는 게 아냐. 그 친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거야. 대답해봐, 어떻게 생각해?”


박회장은 유정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 세상에서 박회장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그만큼 박회장의 눈빛은 강렬했다.


유정은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박회장의 눈을 피해 고개를 떨어뜨렸다.

박회장은 유정의 앞에 서류봉투 하나를 던졌다.


“그동안 고생했어. 퇴직금이야.”


유정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무기명 채권하고 통장, 전부 동산이야. 대충 80억쯤 될 거야. 그 정도면 뒤에서 내 욕할 정도로 섭섭하진 않을 테지.”


“여...여보...”


“여보라고 부르지마!! 자넨 해고됐어!! 그렇지 않아도 지겹던 참인데 나한테는 잘된 셈이지.   불명예 퇴직쯤으로 생각해.”


유정이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터트렸다.

박회장이 인터폰을 눌렀다.


“이봐, 이기사 어디 바람 좀 쐬러갈 테니까 차 준비해.”


“알겠습니다. 회장님.”


박회장이 인터폰을 끄고 유정에게 차갑게 마지막 말을 던졌다.


“떠나는 마당에 서로 얼굴 볼 필요 없겠지. 나도 여자가 징징 짜는 건 딱 질색이고...내가 다시 들어와서 자넬 안 봤으면 좋겠군.”


유정은 소리 없이 흐느꼈다.

박회장이 유정을 본 것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장마의 끝자락은 유난히 질겼다. 벌써 일주일째 비는 내리고 있었다.
영민은 창밖으로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비 때문인지 거리엔 개미새끼 한마리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 요즘 영민에게는 하루 일과였다.


벌써 열흘째다.

박회장과 마지막 바둑을 둔 것이...

그러나 유정은 오지 않았다.


이기사를 통해 들은 소식은 이미 일주일 전에 유정은 집을 나갔다고 했다. 유정의 핸드폰은 이미 주인을 잃어버린 번호였다. 유정은 그렇게 연기처럼 사라졌다. 

연기가 돼버린 한 여자를 영민은 하염없이 기다렸다. 마치 망부석이라도 될 듯이...




2개월 후 홍콩국제공항.

입국장에는 마중 나온 사람들로 북적댔다. 대부분 여행사 직원들로 피켓이나 플래카드를 들고 있었다. 유독 한 여자만이 그들과 달라보였다. 커다란 챙모자에 베르사체 선글라스. 야자수가 프린팅 된 민소매 원피스에 커다란 귀걸이와 메탈 팔찌 등이 여자의 세련된 패션감각을 알게 하였다.


유정이었다.

살짝 태닝해서 갈색인 그녀의 얼굴은 한눈에 봐도 건강하고 아름다웠다.


유정은 입국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입국대에는 인천발 비행기 승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대부분이 단체여행객들로 혼잡스러웠다. 


그 여행객 틈에 한 남자가 간단한 심사를 받고 입국대를 통과했다. 간단한 옷차림에 달랑 가방 하나만 끌고 나오는 남자였다. 유정이 기다리는 사람이다.


제우스, 이기사였다.

유정은 이기사를 향해 발을 구르며 손을 흔들었다. 비로소 유정을 발견한 이기사가 유정을 향해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유정도 기다림이 아쉬운지 이기사를 향해 뛰었다.


두 남녀는 한덩어리가 되었다. 뜨겁고 긴 포옹이었다. 무려 두달 만의 만남이다. 단 하루를 보지 못해도 몸살이 나던 두 사람이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유정이 투정어린 말투로 이기사를 나무랬다. 


“말도 마, 꼰대가 좀 의심이 많아야지. 알잖아, 자기도...거기다 그 순댕이가 자기 안온다고 징징대지...꼰대가 사람 풀어서 자기 찾는다고 난리가 아니었다구...그런 판국에 어떻게 그만둔다는 말을 하겠어.”


“깔깔깔...그래? 가관이었겠군.”


“오히려 자기 걱정을 하던데...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닌가 하고 말이야.”


“사실은 나한테 준 80억이 아까운거겠지. 그나저나 그 순댕이는 어떻게 됐어? 고사범 말이야.”


“말도 마. 사람 완전히 폐인됐어/ 며칠 전에 집엘 가봤는데 사람이 눈이 풀렸더라고...이건 밥이나 먹고 사는 건지...쯧쯧...”


“자업자득이지. 자기 주제를 모르고...”


이기사는 유정을 다시 한번 쳐다봤다.
하여간 무서운 여자다. 찔러도 피 한방울 나지 않을...


두 사람은 유정의 차에 올라탔다. 

아우디TT, 카브리올레.

미션임파서블이라는 영화에서 톰크루즈가 운전했던 차로 유명하다.

유정이 버튼을 누르자 하드탑이 소리도 없이 접히며 지붕이 오픈됐다.


“아우디TT, 죽이는군.”


“한국에서는 내돈 주고도 이런 차 사려면 눈치봐야 하지만 여긴 그런 게 없어서 좋아. 완전한 자유야. 돈만 있으면 내맘대로야.”


유정은 능숙한 운전솜씨로 공항을 빠져나가 해안도로를 시원하게 질주했다. 


“아파트는 리펄스베이에 있어. 자기도 잘 알 거야, 풍수지리 때문에 가운데 구멍을 뚫은 아파트 말야. 성룡도 거기 살아.”


유정의 머리가 바람에 날렸다.
이기사는 유정의 모습이 새삼스러웠다. 갈색피부에 긴 머리카락을 날리는 유정의 모습은 아름다움을 넘어서 황홀하기까지 했다.


“왜 그렇게 빤히 쳐다봐?”


“너무 아름다워서...”


“아름다워? 깔깔깔...빈말이라도 기분 나쁘지는 않은데...”


“아냐, 자기라는 여자라면 목숨도 걸 수 있어.”


“그래? 그럼 걸어봐.”


“어떻게...”


“우리 키스 안했지, 키스해 줘.”


“지금?”


이기사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속 80킬로로 달리면서 키스라니...


“그래, 목숨을 걸 수도 있다면서...키스해줘.”


유정이 이기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기사는 도로를 힐끗 보았다. 쭉 뻗은 도로는 한적했다. 하긴 죽을 때 죽더라도 유정의 유혹을 거부하기에 그녀의 입술은 너무 섹시했다.


이기사의 입이 유정의 입술을 덮쳤다.

2개월이다, 무려 60일이나 참았던 욕정이었다. 마치 움츠리고 있었던 활화산이 터지듯 뜨겁고 긴 키스였다.


그리고...


...빠아아앙...


긴박한 경적소리를 들은 것이 그들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들은 마지막 소리였다. 그리고 그들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 본 것은 막 커브를 돌아나오는 산더미 같은 트럭이었다.


...콰앙... 


그들의 동공에 맺힌 트럭의 잔상이 채 없어지기도 전에 그렇게 모든 건 끝이 나고 말았다.

순간이고, 찰나였다.




3개월 후.

강남의 한 번화가의 건물입구에는 개업 축하화환이 줄을 지어 서있었다. 


영바둑살롱.

기원인 듯싶은데 상호는 신세대 감각이었다. 기원은 꼭대기층에 자리잡고 있었다. 100평이 넘는 기원은 탁 트인 것이 한눈에 봐도 시원하기 그지없었다. 넓은 홀과 함께 개인 교습을 위한 룸이 3개가 있었고 한쪽에는 인터넷 기우들을 위한 컴퓨터가 다섯 대 놓여져 있고 그 옆에는 스낵바가 자리잡고 있었다. 스낵바에서는 간단한 요기와 술 한잔 정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개업한 지 일주일된 기원은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벌써 30명쯤 자리잡고 있었다. 룸에서는 한 남자가 열심히 복기지도를 받고 있었다.


“카아...그게 그렇게 되는군요. 내가 이 정석을 너무 모르니...”


“책을 보셔야해요.”


“어우...책만 보면 잠이 쏟아져서 말이죠...책 속에 무슨 수면제를 넣은 것도 아니고...아무튼 이렇게 사범님한테 지도를 받으니 그냥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영민은 남자의 말에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때 여직원이 노크를 하고 들어왔다.


“사범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손님은 박회장이었다.


“회장님.”


“고사범. 제법 티가 나는데...근사해.”


“별말씀을...”


영민이 머쓱한 듯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내가 개업식 때 못와서 말이야...어디보자, 넓직하고 좋구먼...저긴 요기를 할 수 있는 공간도 있구먼...”


“네...회장님.”


“손님도 제법 많구먼...”


“50명까지는 회원제로 운영하고 하고 있는데 그게 반응이 좋습니다.”


“그래...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회원이라면 껌뻑 죽지. 좋은 생각이야.”


기원은 박회장이 영민에게 마련해준 것이었다. 


유정이 떠난 후 영민은 무덤 같은 날을 보냈다. 영민은 급기야 병원에 입원을 했다. 미라 같은 영민이 다시 살아난 건 한달 만이었다. 퇴원하는 날 박회장이 영민을 데려온 것은 이곳이었다. 물론 아무것도 없는 텅빈 공간이었다.


“자네, 여기다 자네 꿈을 키워보게. 자네가 지금까지 배워온 건 바둑뿐이니 바둑으로 할 수 있는 걸 해봐. 자금은 내가 다 대겠네. 자넨 머리만 있으면 돼. 알겠나? 우린 동업자가 되는 거야.”


박회장은 그렇게 영민의 동업자가 되었고 다 죽어가는 영민에게 새 생명을 불어 넣어주었다.


“회장님, 오셨으니까 한수하셔야죠.”


“그래야지, 한판 두들기자구...”


“룸으로 가실까요.”


“아냐, 그냥 홀에서 하지.”


박회장은 휠체어를 움직여 한쪽 테이블로 갔다.

영민과 박회장이 마주앉았다.


“그러고보니 오랜만이군. 자네하고 바둑을 두는 건...유정을 걸고 둔 이후로는 처음이지?”


“아...네...”


영민은 박회장의 말이 껄끄러웠다.


“자네 아직까지인가?”


“네?”


“유정이 말이야. 아직까지 마음에 담아두고 있나?”


“그...그저...”


영민은 고개를 숙이고 말을 얼버무렸다.


“혹시라도 그러고 있다면 잊어버려.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까...”


영민이 흠칫해서 고개를 들었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니...영민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회장님...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죽었다더군. 3개월쯤 전에 홍콩에서...”


영민의 동공이 커졌다.


“뭐 사소한 일이니 뉴스나 신문에는 안나왔지만...교통사고였다더군. 거 뭐냐...아우디인가 뭔가 뚜껑 없는 차 타고 가다가 볼보 25톤짜리 트럭하고 정면으로 박았다더구먼...트럭이 그 뚜껑 없는 차를 올라탔다니...뭐 안봐도 뻔하지 않나...아...참 유정이 그 친구하고 같이 동승한 사람이 있었다던데 누군지 아나? 이기사야. 이 기사 알지?”


영민은 너무 놀라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다지만...이기사하고 유정이가 그렇게 배꼽을 맞춘 사이였다니 말이야. 도대체 언제부터 그런 사이였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자네나 나나 눈 벌겋게 뜨고 당한 셈이야. 나도 이런 말까지 안하려고 했지만 행여라도 자네가 아직도 유정이 때문에 가슴아파한다면 지금이라도 잊어버리라고 하는 말일세.

이기사하고 유정이가 자넬 끌어들인 이유가 뭔지 아나? 나한테 돈을 뜯어내려는 속셈이었어. 내 몸뚱아리야 이 지경이니 반쯤 유정이를 포기한 상태이고 어떻게든 유정이를 누군가하고 엮어서 날 이해시키려고 한 거지. 그 누군가가 바로 자네야.

누가 자네를 지목했는지 모르지만 자넬 택한 건 정말 탁월한 안목이었어. 자네의 때묻지 않은 눈, 순수함. 자넨 나하고는 정반대였어. 난 알다시피 더러운 인간이거든. 그래서 자넬 좋아했던 건 사실이야. 유정이하고 자네 두 사람이 그런 사이란 걸 알았을 때 자네라면 내 여자를 맡겨도 좋을 거란 생각을 했지. 유정을 걸고 둔 바둑, 우상변에서 서로 끊겼을 때 내가 결정적인 순간에 손을 뺐었지. 설마 자네 같은 고수가 그걸 단순히 내 실수라고 생각한건 아니겠지?"


그렇다. 영민은 박회장과의 바둑을 두고 난 후 그 점을 미심쩍게 생각했다. 살얼음판을 걷는 순간 박회장은 한수 손을 뺐다. 박회장이 한수 노는 덕분에 영민은 4궁으로 한집을 만들수 있었다. 그건 누가 봐도 이상한 한수였다.
하지만 영민은 그땐 그걸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영민의 머릿속에는 온통 유정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박회장의 말은 계속됐다


"어쨌든 두 년놈의 계획은 성공한 셈이야. 유정이 그냥 나한테 도망을 간다면 땡전 한푼 없이 나가야 했지만 어쨌든 자네로 인해 80억을 챙겼으니 말이야. 물론 계획대로 되지 않았어도 그 두 년놈은 손해볼 게 없지. 아직까지 이기사란 놈은 표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으니까...언제든지 두번째 세번째 계획을 세울 수가 있는 거지. 그렇게 자넨 그 년놈들에게 이용당했던 거야. 알겠나?”


영민은 박회장의 얘기가 끝날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머리도 텅 빈 것 같았다.


“자 몇 점 깔까? 5점으로 할까...”


“어떻게 아셨습니까?”


영민의 말에 박회장이 영민을 보았다.


“유정이하고 이기사 죽음 말입니다. 뉴스에도 신문에도 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상세하게 알고계십니까?”


“알고 싶나? 그럼 내기를 하지. 석 점으로 할까?”


박회장은 비릿하게 미소를 지었다.


<끝>



2009-01-06 본내용은 작가의 순수 창작물이므로 무단복제나 도용, 표절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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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ndo~ |  2009-06-04 오전 1:16:0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햐...너무재밋다...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게속올려주셔야해요...엉엉....  
당근돼지 |  2009-06-04 오전 5:34:0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잘 보고 갑니다.........감사 합니다.  
js2215 |  2009-06-04 오후 5:08:3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훌륭한 창작글 정말재미있어요 잘읽고감사드림니다  
황금능선 |  2009-06-05 오전 12:28:4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쩝 좌우간 세상에 믿을x 없넹 ㅠ.ㅠ
재미가 솔솔 햇는데 끝이라니 아쉽네요 ...  
못안 |  2009-06-06 오후 2:17:3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박찌님 감사해용 잼나게 보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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