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전혀 관계 없는 바둑이야기 잘못된 만남
한동철...
지금 나하고 바둑을 두고 있는 놈이다.
놈은 내 친구다.
친구도 그냥 친구가 아니고 불알친구다.
같은 동네에서 태어났고 초딩을 거쳐 중딩, 고딩, 심지어는 대딩까지 같이 다녔다.
벌써 30년이 넘는 세월이다.
우린 부모보다도 형제보다도 같이 한 시간이 많았다.
그리고 그 시간만큼 치열하게 경쟁했다.
어릴 때 구슬치기와 딱지치기부터 시작해서 공부, 운동, 음악, 글쓰기 여친 사귀기, 장기, 바둑, 화투, 포커...경쟁할 것은 수백 가지가 넘었다.
문제는 경쟁의 결과가 언제나 일방적이라는 것이다.
난 놈을 이겨본 적이 없다.
무엇이든 졌고
무엇이든 빼앗겼다.
대학도 놈은 원래 Y대를 갈 생각이었으나 나를 따라서 K대로 바꿔 지원을 했다. 결국 놈은 과수석으로 입학했다.
물론 졸업은 어떻게 했는지 말할 필요가 없다.
우린 회사도 입사동기다.
그런데 놈은 벌써 팀장이다.
난 아직도 대리직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 말이다.
우리 엄마는 입버릇처럼 말한다.
“이놈아, 동철이처럼만 해봐.”
만약 동철이가 결혼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엄마가 안다면 아마 날 집에서 쫒아낼지도 모른다.
동철이 마누라는 사실 내 여자친구였다. 2년 동안 사귄 여자였는데 동철이 어느날 눈도장을 찍더니 한달 만에 놈한테 넘어갔다.
자기 애인이 친구와 결혼하는 얘기...
얘기로는 흔하지만 이런 일을 실제로 겪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빌어먹을...그런데 난 이 말도 안 되는 일을 두번째 겪을 판국이다.
이 바둑에...
은영이가 걸려 있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중앙 대마가 살 길이 없다.
“쯧쯧...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야...”
놈은 여유 있게 담배를 피워물며 한마디를 던진다.
난 놈을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난 침통하게 돌을 거뒀다.
“이제 은영이한테 손 떼.”
뻔뻔한 놈, 내가 할 얘기를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내뱉는다.
마누라까지 있는 놈이 친구 애인을 뺏으면서 저렇게 뻔뻔할 수가 있는가...
“정리하지, 약속은 약속이니까...”
“오늘 정리해, 그런 거 길어봐야 좋을 것 없으니까...”
난 또 하나를 놈한테 빼앗겼다.
기원을 나와 맥줏집에 자리를 잡고 은영이에게 전화를 했다.
유은영...
6개월을 사귄 여자다.
난 그녀와 결혼까지 할 생각이었다.
동철이 그놈에게 철저하게 비밀로 해야 한다.
난 은영이를 꽁꽁 숨겨두었다.
그런데 역시 영원한 비밀은 없는 모양이다.
2개월 전, 절대 회사 근처로 오지 말라는 나의 엄명을 은영이 깨트리고 느닷없이 찿아왔다.
로비에서 은영을 만나 황급히 포식자의 서식지에서 도망가려는 순간 놈의 눈에 띄고 말았다.
“안녕하세요, 태호 친구 한동철입니다.”
“아네...안녕하세요, 유은영이어요.”
난 좌불안석, 노심초사, 안절부절이었다.
얼른 은영이를 저놈의 마수에서 빼돌려야 하는데...
“참, 너 부장님이 찿으시던데...”
“나...나를...”
“어, 근데 왜 그렇게 놀래?”
“아...아니야.”
난 식은땀까지 났다.
“오빠, 왜 그래, 어디 아픈 거 아냐?”
“아..아니야, 괜찮아.”
“그래, 빨리 부장님한테 다녀와, 제수씨는 내가 잘 보살피고 있을 테니까...제수씨라고 불러도 되죠? 남자들은 다 그러거든요...”
“아...네...”
은영이 웃으며 대답한다.
그런 기분을 느낀 적이 있는가?
고양이 앞에 생선을 놔두고 가는 기분...
난 발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무거운 발로 열심히 뛰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뛸 수 없지 않은가.
8층이 히말라야 산보다도 더 높은 것 같았다.
“부장님, 저 찾으셨습니까?”
“어? 아니...”
역시 놈은 포식자였다.
난 다시 부리나케 로비로 내려갔다.
다녀오는 데 불과 10분...
그런데 그 10분 동안 두 사람은 10년은 사귄 듯 보였다.
“깔깔깔...오빠 넘 잼있다...”
은영이 저렇게 목젖이 보이도록 웃는 건 본 적이 없다.
그후 놈의 흔적이 은영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그리고 결정적인 증거...
은영의 핸드폰에서 발견된 놈의 문자.
[8시에 듀마모텔로 와]
참담했다.
하지만 안돼. 은영이는 안된다.
절대 뺏기지 않겠다.
난 은영이를 윽박지르기도 하고 달래도 봤다.
“그 새끼는 유부남이야! 그런데 그런 놈하고 어쩌겠다는 거야?”
“오빠, 생각이 왜 그렇게 답답해, 누가 뭐 결혼할 거도 아닌데 유부남이면 어떻고 무부남이면 어때, 그냥 쏘울 메이트 정도로 생각하면 안되? 오빠는 날 독차지하려고 그러니까 문제인 거야. 오픈마인드로 생각해, 더군다나 동철오빠하고는 친구잖아.”
어이가 없다.
은영이는 설득이 안된다.
놈하고 단판을 지어야한다.
그래서 결국 지는 사람이 은영이한테서 물러나기로 하고 바둑을 뒀다.
“오빠!”
“어...”
은영이 빽 소리치는 바람에 나는 깜짝놀라 고개를 들었다.
“무슨 생각을 하기에 그렇게 사람이 오는지도 몰라.”
“아니야, 아무것도...”
“동철오빠하고 바둑 뒀다면서...”
“어...”
“어떻게 됐어?”
“...내가 졌어.”
“꼭 그렇게 해야 해?”
“...”
“남자들은 생각이 답답해, 왜 꼭 여자를 독차지하려고 그러는지 모르겠어. 그런 점에서 동철오빠는 생각이 오픈된 거 같아.”
“가자...”
“어딜?”
“마지막 밤을 불태우러...”
이번엔 지지 않는다.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승리...
놈의 눈에 패자의 눈물을 떨구게 하겠다.
그 눈물을 황금잔에 받아 마시리라...
은영과 난 마지막 밤을 불태우고 깨끗하게 헤어졌다.
놈한테야 내가 상대랄 것도 없지만 어쨌든 장애물이 없어지자 하루가 멀다하고 은영이와 사랑을 나눴다.
갸우뚱...
동철은 소변을 보다가 뭔가 이상한 느낌을 느꼈다.
“이상한데...왜 이렇게 따끔거리지...”
동철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날은 더 심하다.
아무래도 병원을 가봐야겠다.
그때 핸드폰이 울어댄다, 은영이다.
“웬일이야, 또 오빠생각이 난 거야?”
“이 나쁜새끼야, 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너같은 개새끼하고는 끝이야!! 다신 전화도 하지마!!”
동철이 뭐라고 할 것도 없이 은영은 일방적으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퍼붓고 끊는다.
“도대체 이게 무슨...”
그러다 문득 이상한 예감이 머리를 스친다.
동철은 득달같이 비뇨기과로 달려갔다.
“임질입니다.”
동철은 의사의 말에 아연실색했다.
임질이라니...
내가 왜? 도대체 어떻게...
가만, 지금 이것저것 생각할 때가 아니다.
잽싸게 와이프한테 전화를 건다.
“나야, 여보...”
“그렇지 않아도 전화하려던 참인데 먼저 하네...나 지금 비뇨기과에서 치료받고 나오는 길이야. 왜 그런지는 당신이 잘 알 거야, 더러운 놈...당분간 친정에 가 있을 테니까 찾지 마!”
동철은 망연자실했다.
최근 동철은 안마시술소나 터키탕을 간 적이 없다.
물론 술집여자하고 잔 적도 없다.
잠자리를 같이 한 여자는 오직 와이프와 은영뿐...
그런데 어떻게 자신이 보균자란 말인가.
분명 두 여자 중 한 여자가 자신한테 옮긴 것이다.
근데 그걸 어떻게 증명하는가...
그대로 뒤집어쓸 수밖에...
그렇게 동철은 두 여자한테 천하에 없는 더러운 놈이 됐다.
“음...이제 깨끗하군, 다 나았어.”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친구가 내 데이타 리스트를 보고 말했다.
“자 이쯤에서 솔직히 털어놔봐, 도대체 스스로 임질 보균자가 된 이유가 뭐야?”
“허어...이 친구, 그 비밀은 무덤까지 가져가라니깐...임질균이 임의로 외부인한테 유출된 걸 알면 자네 이 알량한 대학병원 일자리도 끝이라구...”
“이 친구 뭐야, 나한테 협박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핫하하하...협박은 무슨...암튼 근무 끝났으면 나가자고...오늘은 내가 코가 삐투러지도록 살 테니까...”
2008-10-01 본 내용은 작가의 순수 창작물이므로 무단복제나 도용, 표절을 금합니다.
달선공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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嶺山嶺
嶺山嶺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