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스마트폰이 대세입니다. 차가 막힌다, 그럼 스마트폰 하나면 다 해결이 됩니다. 뚫리는 곳을 딱딱 가르쳐주거든요. 맛있는 집 찾는 것도 스마트폰, 날씨도 스마트폰, 하루 운세까지 다 이거 하나면 끝입니다. 거기다가..”
핸드폰 매장 직원은 갑자기 은밀하게 두용에게 말한다.
“언제 어디서든지 화상채팅도 가능하고요. 끝내주지 않습니까?”
“인터넷도 됩니까?”
직원은 황당한 표정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걸 뭐라고 들은 건가.
“선생님, 그거야 당연히 인터넷이 되니까 가능한 거죠. 저도 하루 종일 이놈을 달고 삽니다. 제가 사실 바둑을 무지 좋아하거든요. 근데 언제 어디서나 바둑을 둘 수 있으니 이런 축복이 어딨겠습니까.”
“바둑이요?”
두용의 눈이 반색을 한다. 그걸 놓치지 않는 직원이다.
“아, 바둑 좋아하십니까? 그럼 한번 보여드리죠.”
직원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두용에게 보여준다. 스마트폰 화면에 오로가 보였다.
“오로네요.”
“오로 유저십니까? 아이구..이거 반갑습니다. 대명이..?”
“뭐 대명은 알 것 없고 이걸로 합시다.”
직원은 그렇지 않아도 파리를 날리던 판국에 이게 웬 횡재냐 싶은지 핸드폰 개통에 부산해진다. 전번도 바뀐다. 아내 명의로 된 그전 전번은 아내가 이미 해제한 상태다. 아내는 전번 해제가 남편하고 그‘년’하고 연결된 마지막 고리를 잘라버린 거라고 생각했다.
핸드폰가게 직원의 말처럼 축복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내가 컴퓨터 금지령을 내린 마당에서 스마트폰으로 오로에 접속할 수 있다는 건 핸드폰 성능 중 계산기 기능 이후로 최대의 축복이었다. 더 큰 축복은 기계치인 아내가 복잡한 기능을 가진 스마트폰을 이해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나도 직원한테 1시간이 넘게 스마트폰 활용에 대해 개인교습을 받아야 했다.
핸드폰이 개통되자마자 두용은 다비한테 전화를 걸었다. 두용의 목소리를 확인한 다비는 한 옥타브 올라간 목소리로 소리쳤다. 3일 만에 듣는 목소리다.
“아저씨!”
“하하..지금 새로 전화 개통했어.”
“그래요?”
“그전 핸드폰은 아내가 부숴버렸어. 아내한테 고맙다고 해야 할 것 같아.”
“왜요?”
“덕분에 스마트폰으로 바꿨거든. 이걸로 오로에 접속도 할 수 있어.”
“깔깔깔깔..”
두용의 반전된 말에 다비가 귀가 울리도록 웃었다. 청량제 같은 웃음 소리다.
“오늘 오로에 들어오실 수 있나요?”
“글쎄..아직까지는 아내의 감시가 심해서..”
“그래요..”
다비의 목소리가 시무룩해진다.
“바둑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내가 틈나면 들어갈 테니까..”
“알았어요. 이번엔 꼭 이길 거여요.”
“하하하하..”
다비가 주먹을 불끈 쥐고 다부지게 말하는 모습이 떠올라 두용은 웃음을 터트린다.
남자 나이 40이 넘으면 웃음이 사라진다. 사실 사라진 게 아니라 웃을 일이 없다. 두용은 더 심했다. 늦은 결혼에 자식조차도 없다. 아내는 나오는 웃음도 들어가게 하는 여자다. 언제 웃었는지 기억조차도 없었다. 그런데 다비를 만나면서 웃음을 되찾은 두용이다. 왜 별일도 아닌 것에 웃음이 나오는지 모를 일이다.
아내는 잠시도 감시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집의 인터넷도 끊고 두용이 다른 생각을 못하도록 쉬지 않고 닦달을 했다. 그렇다고 1년 365일 하루 24시간 감시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두용이 외출복으로 갈아입자 아내는 눈을 희번득거렸다.
“어디 가는 거야.”
“오늘 정기검진일이야. 같이 갈 거야?”
아내는 병원이라면 딱 질색하는 여자다. 그것도 두용 때문에 가는 것은 더 질색이다. 두용이 검진을 받는 동안 기다릴 걸 생각하면 진저리가 쳐진다. 아내는 힐끗 시계를 보았다. 2시다. 가는데 30분, 오는데 30분, 검진받는 시간 30분, 1시간 30분이면 충분하다.
“3시30분까지 들어와.”
“1시간30분 만에 검진받고 오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안될 건 뭐 있어?”
“검진 받는데만도 1시간이 넘게 걸려.”
“검진 받는데 뭐 그렇게 오래 걸려.”
“내가 검진받는 거 한번이라도 지켜본 적 있어? 심혈관조영술에서부터 온몸에 전극을 주렁주렁 꽂고 검사하는 EKG, 그리고 SPECT검사, 운동부하검사..검사가 한두 개인 줄 알아? 거기다가 의사하고 상담하고 수납하는데도 줄 서서 기다리고.. 당신 같으면 그걸 30분에 할 수 있겠어?”
아내로서는 두용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암튼 엄청나게 검사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알았어. 4시30분까지 와.”
“5시 전에는 불가능해. 아니면 당신이 따라오든가.”
“알았어. 빨리 갔다와!”
아내는 버럭 소리를 지른다.
두용은 운전을 하면서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사실 두용이 아내한테 말한 검진내용은 전부 거짓말이다. 두용이 3년동안 병원을 들락거려도 아내는 두용이 뭘 검사하는지 뭘 치료받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발작을 일으켜 다 죽어가는 사람을 옆에 두고도 병원냄새가 싫다고 뛰쳐나가는 여자다. 그러니 심혈관조영술이 뭔지 SPECT가 뭔지 알게 뭔가. 그런 건 심장을 치료하거나 수술 전에 하는 검사이다. 정기검진에 하는 건 기껏해야 초음파와 심장의 상태를 알아보는 EKG정도이다. 두용은 힐끗 백미러를 보았다. 쫓아오는 차는 없었다.
“심장 상태가 아주 양호합니다. 적응이 생각보다 빨라요.”
의사는 아주 만족스럽다는 듯이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말한 주의사항은 잘 지키고 있죠?”
“물론입니다. 선생님. 십계명으로 생각하고 온 집안에 써서 붙여놨습니다.”
“하하하하..”
두용의 말에 의사는 크게 웃었다. 두용이 수술을 받은 후에 성격도 훨씬 밝아진 것 같아 뿌듯하기 그지없었다.
검진은 단 20분 만에 끝났다. 두용은 검진이 끝나자마자 득달같이 병원 4층에 있는 옥외휴게소로 갔다.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걸었을 뿐인데도 숨이 턱에 차 올랐다. 옥외휴게소에는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간식을 먹거나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기여요.”
그 사람들 틈에 저만치 야외테이블에 앉아있는 여자가 손을 흔든다. 다비다.
쿵쿵쿵쿵쿵쿵쿵쿵..
두용은 다비에게 병원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 그러면 시간을 아낄 수 있다. 검진 받자마자 만날 수 있다.
그날 이후 처음 보는 다비는 생각보다 밝게 보였다.
“오래 기다렸어?”
“아니어요.”
“여기까지 오라고해서 미안해.”
“괜찮아요. 근데 어디가 아프신 거여요.”
“그냥..”
“피이..보기보다 약한가 봐.”
“약한 거 아냐.”
자못 비웃는 듯한 다비의 말에 발끈 반박하는 두용이다.
“사실 얼마 전에 수술을 받았어.”
“수술이요?”
다비의 눈이 동그래진다.
“무슨 수술이요.”
“나중에 말해줄게.”
“그것도 바둑을 이겨야 가르쳐 줄 건가요?”
다비의 말에 두용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말 나온 김에 한수 할까.”
“그래요. 제가 오늘은 단단히 벼르고 왔다구요.”
“하하하..그래. 한번 두고 보자구.”
두 사람은 스마트폰을 꺼내 오로에 접속한다.gif){kind=logo}
삼초라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