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에 도착하자 11시가 넘었다. 3시에 출발했으니 무려 8시간 넘게 걸린 것이다. 요양원 문을 두들기자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잔뜩 인상을 구기면서 문을 열어준다.

“뭐요. 이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오늘 여기 환자 한분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왔습니다만..”

“그래서요?”

“장례식장이 어딘지 알고 싶습니다.”

남자는 그렇지 않아도 단잠을 깨운 한밤중의 방문객이 탐탁지도 않았지만 요양원에 와서 장례식장을 묻는다는 것이 의심스러웠다.

“그걸 왜 여기서 묻는 거요.”

“전 보호자 직장동료입니다. 우연히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는데 도무지 전화통화가 안돼서요..”

“거참..아무리 직장동료라도 그렇지 내일이 추석인데 조문을 왔다는 거요?”

이미 잠이 깬 남자는 전혀 바쁠 것이 없다는 듯이 꼬치꼬치 따지고 든다.

“죄송합니다. 제가 급해서..”

“글쎄..급한 건 당신 사정이고 내가 생각하기엔 아무래도 이상하단 말이야. 말투로 보니 서울서 온 모양인데 추석 전날 그 먼길을 조문 온다는 게 이상하잖아. 환자이름은 알고 있소?”

“환자 이름은 모르고 보호자 이름은 압니다. 도진희라고..”

“보호자 이름 말고 환자이름..”

남자는 더이상 말을 못하고 캑캑거려야 했다. 빳떼리가 남자의 멱살을 잡고 요양원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친다.

“이 개새끼야! 장례식장이 어디야!”

장례식장은 마치 상가 가게처럼 칸칸이 구분되어 호실로 지정하고 있었다. 웬 죽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지 각 호실 앞에는 조화가 줄지어 도열해 있고 조문 온 사람들로 시장통처럼 왁자지껄했다. 그 소란 속에 맨끝에 있는 호실만이 마치 빈칸처럼 조용했다. 빳떼리는 그곳으로 뛰듯이 발걸음을 옮겼다.

조문객 한사람 없는 식장 안에는 한 여자가 하얀 소복을 입고 처연하게 앉아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인기척에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하얗게 핏기 하나 없는 얼굴. 도토리.

도토리는 힘없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알고..”

빳떼리는 대답 없이 영정 앞에 재배를 올렸다. 그리고 상주와 절을 한다.

절을 한 그 자세 그대로 고개를 떨군 빳떼리는 눈물을 쏟아낸다. 도토리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린다. 울고 또 울어서 더이상 눈물이 나올 것 같지 않았는데 다시 눈물이 나온다.

장례는 3일장으로 치러졌다. 장례 동안 온 조문객은 고작해야 도토리 외가쪽 몇 명과 요양원 직원 몇 명이 전부였다. 처음처럼에서는 추석이라고 못온다고 전화 몇 통 왔을 뿐이다.

고인의 유해는 화장장으로 치렀다. 유골은 고인의 고향 앞바다 남해에 뿌렸다.

조그만 배위에서 유골을 뿌리는 도토리의 표정은 아무 감정이 담겨져 있지 않았다. 그런 모습이 빳떼리의 가슴을 더 찢어지게 만들었다. 더이상 뭘 해줄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삼오제를 치르고 올라온다는 도토리를 혼자 남겨두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3일 만이다.

3일 만에 마마는 얼음왕비로 변해 있었다.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얼게 만들 정도였다.

“어떻게 된 거야.”

“친구하고..”

“친구 좋아하네. 무슨 친구.”

“엄마. 나 피곤해. 나중에 얘기해.”

“난 더 피곤해. 너 때문에 피곤해서 죽을 지경이야.”

마마가 앙칼지게 소리를 지른다.

“그 애지. 그 애하고 있었지.”

마마의 말에 묵비권을 행사한다.

“그 애, 정신이 있는 거니? 아무리 죽고 못산다고 해도 그렇지. 추석날은 사람을 집으로 돌려보내야 할 것 아냐.”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불쑥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온다.

우리나라는 사람이 죽었다고 하면 무엇이든 용서가 된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하면 동정심에 마마가 수그러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착각이다. 마마에게 도토리의 어머니가 죽었다는 건 옆집 강아지가 죽은 것보다 더 관심 없는 일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왜? 그 집엔 사람도 없니? 추석까지 거기 있어야 할만큼 니가 필요한 거야?”

비아냥거리는 마마의 말투다.

“그래. 혼자야. 아버지도 형제도 친척도 없어. 오직 혼자라구. 근데 그걸 보고 그냥 와?”

“그러니까 홀어머니에 형제도 친척도 없는 애구나. 그나마도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27살 먹은 남자에게 50살의 여자는 벅찬 상대였다. 역시 우리나라 아줌마들은 드세고 노련했다. 결국 빳떼리의 입에서 도토리에 대한 모든 것이 토해내진다.

“그런 집안에서 자란 애가 오죽하겠니.”

“엄마!!”

빳떼리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지지 않고 마마의 앙칼진 목소리가 집안에 울린다.

“그 애는 안돼!!”

결국 마마한테 절대 듣고 싶지 않는 얘기를 듣는다.

                           그 애는 안돼!

“내가 전에도 얘기했지. 사람은 격이 있어야 한다고. 그래.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딨겠니. 조금 가난해도 괜찮아. 그럴 수 있어. 배운 거 짧아도 이해해. 가난하면 어쩔 수 없잖아. 하지만 교양과 상식의 격은 누구나 가지고 있어야 해. 그 애가 상식적인 애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널 집으로 돌려 보냈을 거다. 추석날 장례식에 와있는 남자, 그 남자를 그대로 방치했다는 건 그 애의 상식이 그것뿐이 안되는 거야. 혹시라도 그 애하고 결혼이라도 하겠다고 생각했다면 이 시간 이후로 깨끗이 버려. 절대 안돼. 그런 애가 우리집 식구가 되는 건 절대 용납 못해.”

마마의 말은 단호했다. 얼음 같았다. 칼 같았다. 판사의 판결 같았다.

그 애는 안돼.

도토리는 안돼.

도진희는 안돼.

또다시 가슴이 먹먹해진다.

결혼..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아니, 생각을 회피했는지도 모른다.

바로 이런 상황 때문에..

그런데 이제 현실이 돼버렸다.

다음날 회사에 출근하니 기다리는 건 봉다리의 헤드록이다. 아침부터 빳떼리의 비명소리가 사무실에 울려퍼진다.

“이 좀마야. 간이 배밖으로 나온 거야. 뭐야. 회사차가 니 자가용이야!”

“아아아아아..과..과장님. 머리가 깨질 것 같아요.”

“새꺄! 당근이지. 그럼 지금 이게 맛사지라고 생각하냐.”

“봉다리. 대충해.”

보스의 말에 비로소 헤드록을 풀어준다. 헤드록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풀려나서도 머리가 멍멍하다. 멍멍한 정신에 보스의 말이 귀에 들어온다.

“도대체 어디 갔다 온 거야. 듣자니까 추석날도 집에 안들어갔다면서.”

“그냥..”

“새꺄! 우리나라에 그냥이란 데가 어딨어.”

봉다리가 다시 헤드록을 걸 기세다.

“개인적인 일이라니까요. 프라이버시요.”

“니 프라이버시 때문에 내가 깨진 건 뭘로 책임질 거야. 어?”

“저녁에 소주 한잔 살게요.”

소주라는 말에 봉다리입이 벌죽해진다.

“안주는?”

“삼겹살이요.”

삼겹살에 소주로 일단 사태가 무마된다. 그나마 다행이다.

장례 이후 도토리는 뭐가 그렇게 바쁜지 만나기가 하늘에 별따기보다 어려웠다. 삼오제가 끝나고 돌아와 커피숍에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들은 이후로 보름 만에 겨우 저녁 약속을 잡았다. 한정식집 방 한칸에 도토리와 마주 앉았다.

그동안 얼굴이 반쪽이 된 도토리는 말이 없었다. 그저 밥을 깨작거리고만 있었다.

“그게 뭐야. 밥 좀 푹푹 먹어.”

빳떼리의 말에 도토리는 희미하게 웃음을 보였다.

“소주 한잔 할까?”

“아니..”

그 좋아하는 술도 싫다고 한다.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한 도토리다.

“어머니 돌아가셨다고 낙담하지마. 내가 챙겨줄게.”

빳떼리는 과장된 몸동작으로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도토리는 빳떼리를 그윽하게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사실..난 홀가분해.”

“뭐가?”

“엄마 돌아가신 거..”

도토리는 밥알 몇 톨을 입안에 넣고 말을 이었다.

“나한테는 그동안 큰 짐이었어. 근데 이제 자유로워진 것 같아.”

“그래도 그런 말 하는 거 아냐.”

“알아. 하지만 사실이야. 이젠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맘껏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게 뭔데.”

대답대신 도토리는 빳데리를 바라보았다. 왠지 슬퍼 보이는 눈빛이었다.

“말해봐. 뭐가 하고 싶은데..”

“말 안해도 나중에 알게 될 거야.”

또 사람 애간장을 태운다. 하여간 이런 데는 천재적인 소질을 가지고 있다.

도토리가 하고 싶은 게 뭔지 내내 궁금했다. 하지만 그 궁금증도 잠깐이다. 이삼 일 지나자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듯이 까마득하게 잊어버린다. 하여간 뭐든 삼 일 이상을 머리 속에 담아두지를 못한다. 봉다리의 헤드록 때문인지도 모른다. ㅡㅡ;;

또 다시 달력 한장이 뜯겨나간다. 10월이다.

도토리는 여전히 만나기가 힘들다. 기껏해야 하루에 두세 번 통화로 목소리 듣는 게 고작이다.

점심시간도 예전 같지가 않다. 예전 같으면 직원들 전부가 왕창 몰려가 왁자지껄하게 점심을 먹었지만 구라와 막내가 점심때마다 단둘이 빠져나가면서 심드렁해졌다. 모난리자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기타를 배운다고 바쁘고 봉다리는 헬스장을 다닌다. 오늘 보스는 본사에 들어갔다.

혼자 점심을 먹고 달콤한 오수를 즐기기 위해 책상에 다리를 올리고 의자 등받이에 길게 몸을 뉘었다. 그때 문득 달력이 눈에 들어온다.

10월10일.

그런데 아무리 봐도 10월10일이 눈에 익는다.

분명히 무슨 날인데 기억이 없다. 파파 생일은 12월이다. 마마는 4월이다. 삼촌. 이모. 이모부. 외삼촌. 외숙모. 모든 식구들 생일을 기억에 떠올려봐도 10월10일에 일치하는 사람이 없다. 그럼 부모님 결혼기념일인가? 그것도 아니다. 결혼기념일은 5월14일이다. 하루종일 10월10일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퇴근길에서 비로서 그날을 기억해낸다.
바로 도토리 오피스텔 앞을 지날 때..

맞다. 지난번 도토리가 취해서 오피스텔에 데려다줄 때 번호키 비밀번호가 자기 생일이라고 그랬다.

10월10일. 도토리의 생일이다.

빳떼리는 근사한 음모를 꾸미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1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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