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를 잠시 잊어야 했다. 바야흐로 전쟁의 시즌이다.

봄은 과자의 계절이다. 소풍이다. 꽃구경이다. 어린이날이다. 애나 어른이나 모두 입에 과자 하나씩 물고 다니는 계절이다. 이때 각 과자회사들은 기선을 잡아야 한다. 이 기선이 여름을 거쳐 가을까지 이어진다. 한마디로 머리 터지는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국내 과자시장 점유율은 참이슬 32퍼센트, 처음처럼 27퍼센트, 그 외 10여 개 회사가 41퍼센트를 점유하고 있다. 물론 1/4분기인 지난 3월까지의 통계다. 참이슬과 처음처럼은 점유율에서 언제나 5퍼센트에서 8퍼센트의 차이를 보여왔다. 처음처럼으로서는 점유율 5퍼센트를 깨는 것이 숙원이었다. 그것을 깨기 위한 몸부림은 처절할 정도였다. 물론 마지노선 5퍼센트를 지키기 위한 참이슬의 저항 역시 목숨을 건 사투였다.

우리 지역은 전쟁의 최전방이었다. 백화점과 할인점, 마트와 각종 편의점들이 그야말로 한집 건너 하나씩이다. 거기다 과자를 소비할 수 있는 적당한 연령층이 타 지역보다 월등이 두텁다. 면적 대비로 과자소비량을 따진다면 타 지역의 20배가 넘었다. 그야말로 거대한 과자도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밀리면 끝이다.

최전방 중에 극최전방. D마트.

기세싸움은 이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자리가 중요하다. 요지를 차지해야 한다. 물론 자리 걱정은 별로 할 필요 없다. 언제나 최고의 요지는 우리 몫이었으니까..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한 옥타브 올라간 빳떼리의 목소리에 사무실 직원들이 일제히 빳떼리한테 시선을 돌린다. 빳떼리는 전화기에 대고 거의 발악하듯 소리쳤다.

“지난주에 분명히 말씀하셨잖습니까. 걱정하지 말라고…그래서 점장님만 믿고 있었는데..지금 제가 찾아뵙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빳떼리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힘없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무슨 일이야!”

사무실에 보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그게 이번 행사 매대 말입니다.”

“매대가 왜? 그거 결정났다고 하지 않았어?”

“지..지난주에 점장이 걱정하지 말라고..”

“결정이 난 거야, 안난 거야! 그것만 말해!”

“결정은 확실히 난 게 아니고..”

“뭐야!! 그런데 찾아가보지도 않고 이렇게 탱야탱야 있었단 말이야!!”

“전 점장만 믿고..”

“결정도 안났는데 믿긴 뭘 믿어!! 뭔 일을 그 따위로 처리하는 거야!!”

고개 숙인 빳떼리는 더이상 작아질 수 없을 만큼 작아졌다.

“그래서 뭐라는 거야. 어떻게 된다는 거야.”

“추첨을 한답니다.”

“추첨이라니..”

지금까지 보스의 서슬에 묵묵히 듣고 있던 봉다리가 끼어든다.

“아마 처음처럼에서 이의를 제기한 모양입니다.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구요..그래서 D마트 내부에서 추첨으로 결론을..”

“그러니까 처음처럼하고 우리가 추첨으로 매대를 결정한다 이거야?”

“네..”

빳떼리는 죽을 죄인처럼 고개를 떨궜다. 측은하기 그지없는 빳떼리의 모습이다.
차라리 봉다리가 헤드록이라도 걸어줬으면 좋겠다는 심정이다. 그러나 봉다리도 그런 측은하기 그지없는 빳떼리에게 헤드록을 걸 생각은 눈곱만큼도 생기지 않았다.

“추첨은 언제야.”

무거운 침묵을 깨고 보스가 입을 열었다.

“내일입니다.”

“그래도 아직 50프로의 확률은 남았군. 결자해지(結者解之). 빳떼리 네놈이 벌인 일 네놈이 책임져.”

빳떼리는 보스를 보았다. 역시 거대한 산 같은 모습이다.

이 모든 것이 도토리 그 쳐죽일 놈 때문이다. 그놈한테 온통 정신이 빠져 있었다. 보스말처럼 매대가 완전히 결정이 나기 전까지는 D마트를 문턱이 닳도록 찾아갔어야했다. 그런데 그 시간에 오로에서 그놈 찾는 데 혈안이 돼 있었다. 도토리 그놈을 생각하니 또다시 온몸의 피가 머리로 솟구쳐 폭발하기 일보직전이다. 그때 상큼한 목소리가 폭발일보 직전의 빳떼리를 진정시킨다.

“박대리님.”

막내다.

“힘내세요. 홧팅!”

조막만한 주먹을 불끈 쥐며 화이팅을 외치는 막내가 귀엽다 못해 깨물어주고 싶은 심정이다. ♥♥

“고마워. 역시 막내뿐이야. 우리 이따 퇴근하고 소주라도 한잔 하면서 이 험난한 인생에 대해서 논해보는 게 어때.”

그러나 막내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빳떼리의 입에서 터져나오는 건 고통에 울부짖는 처절한 단말마였다. 어느 틈에 나타난 봉다리가 빳떼리에게 헤드록을 건 것이다.

점장실 안은 긴장감에 가득했다.
그러나 사실 긴장하고 있는 건 빳떼리뿐이다. 점장과 몇몇 직원들한테는 이놈의 매대 추첨이 자판기 커피 한잔 마시는 것보다 가치가 없는 일이었다. 처음처럼에서는 추첨자가 아직 오지 않았다.

“젠장. 처음처럼에서는 왜 이렇게 안 오는거야. 이렇게 시간개념이 없어서..”

“참이슬에서 빨리 오신 거여요. 추첨시간은 아직 10분이나 남았는데..”

점장의 말이다. 서류를 뒤적거리며 하는 말투가 영 썰렁하다. 뭔가 우호적이지 않은 걸로 들린다.

“점장님..이번에 제가 죄송했습니다. 자주 찾아봬야 하는데 워낙에 바빠서..”

“자주 찾아올 일이 뭐 있습니까. 그저 볼일 있을 때 전화로 연락하면 되는데..”

확실히 뭔가 잘못됐다. 이렇게까지 썰렁한 분이 아닌데..
그때 노크소리가 들린다.

“들어오세요.”

처음처럼 투표자인 모양이다. 빳떼리는 문쪽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매대 투표를 하러 왔다면 아마 이번 행사 담당자일 것이다. 처음처럼의 직원은 섯다의 족보처럼 줄줄이 꿰고 있는 빳떼리다. 문과장. 윤대리. 허대리..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전략이 달라진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처음 보는 얼굴이다. 여자다.
2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자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웃음이라기보다도 넘치는 자신감처럼 보였다.

“안녕하세요. 점장님.”

“어서와요.”

점장의 목소리가 부드럽다. 대충 감이 잡힌다.
빳떼리는 여자를 적의의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여자도 빳떼리를 본다. 여전히 웃음띤 얼굴이다.
웃음 띤 얼굴과 적의에 찬 얼굴. 두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친다.

“인사해요. 이쪽은 참이슬 관계자.”

점장이 여자에게 빳떼리를 소개한다.

“도진희여요.”

여자가 활짝 웃으며 손을 내민다.

도진희? 도진희..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이름이다. 도대체 내가 이 이름을 어디서 들었지? 도진희.

“악수 싫어요?”

“박두식입니다.”

빳떼리는 마지못해 여자의 손을 잡았다. 뜻밖에 여자의 손은 거칠기 짝이 없었다. 마치 노가다 하는 막일꾼 손 같았다. 빳떼리는 여자의 얼굴을 보았다. 얼굴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손이다.

“제 손 언제까지 잡고 있을 건가요?”

여자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자자..시간 없으니까 빨리 끝냅시다. 이번 투표는 점장인 제가 주관하고 여기 우리 직원 4명이 참관자가 됩니다. 뭐 투표 방식은 간단합니다. 여기 편지봉투 두 개가 있습니다. 안에는 1과 2라고 적혀 있는 종이가 들어있습니다. 물론 1을 뽑는 사람이 매대선택에 우선권을 갖습니다. 두 사람 이의있습니까?”

이의가 있을 리가 없다. 빳떼리와 여자가 소파에 앉고 탁자 위에 두 개의 편지봉투가 다소곳이 놓여진다. 빳떼리는 편지봉투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혹시, 내가 알지 못하는 마킹이라도 해뒀을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그런나 두 개의 봉투에는 티끌 하나 없이 깨끗했다.

“먼저 고르세요.”

여자의 말이다.

계속 선수를 뺏기는 빳떼리다. 여자가 한 말을 먼저 했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턱 여자의 말대로 먼저 고를 빳떼리가 아니다. 하긴 빳떼리뿐만 아니라 세상 누구든지 그렇겠지만.

“그쪽부터.”

빳떼리가 여자에게 우선 선택을 양보한다.

“그럼 제가 먼저 고르지요.”

여자는 잠시 두 개의 봉투를 바라보다 오른쪽 봉투를 집는다. 남은 건 빳떼리 몫이다.

사무실은 온통 북새통이었다. 과자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고객의 동선과 과자의 비치순서, 시식코너 등 이벤트 전략에 직원들은 여념이 없었다.

“야야..이거 구도가 안 나오잖아.”

“보스. 괜찮은데요.”

“괜찮긴 뭐가 괜찮아. 신상품이 너무 뒤로 밀렸잖아.”

“이번에 신상이 워낙 많아서 전면에 깔면 인기상품이 너무 죽는데요.”

“젠장. 이번엔 뭔 놈의 신상을 이렇게 많이 만든 거야. 이건 우리만 죽어나라는 거잖아.”

“그나저나 빳떼리 이놈은 왜 이렇게 안 오는거야. 무슨 대통령 선거하는 것도 아니고 그깟 추첨 하나 하는데 뭐 이렇게 오래 걸려. 이거 또 매장에서 여자들하고 노닥거리는 거 아냐. 하여간 물가에 내놓은 애 같아서..”

구라의 끝도 없이 투덜거리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무실 문이 슬그머니 열리며 빳떼리가 빼꼼이 얼굴을 내민다.

“야! 빳떼리 어떻게 됐어!!”

우악스런 봉다리의 말에 굳이 빳떼리가 대답을 하지 않아도 모두들 사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빳떼리는 코가 댓자나 빠진 몰골이다.

“죄송합니다.”

빳떼리는 죽을 죄인 같은 얼굴이다.

“이 화상아. 그러고도 니가 살아서 돌아와!!”

봉다리가 빳떼리에게 헤드록을 걸려는 것을 보스의 낮은 목소리가 말린다.

“그만둬.”

“어휴, 복장 터져서..”

분을 삭이지 못하는 봉다리는 자신의 가슴을 터져라 두들겼다.

“어차피 매대는 그렇게 된 거고 그쪽 담당자는 누구야. 누가 추첨하러 왔어.”

“그게 말이죠..처음 보는 사람입니다. 여잡니다.”

“여자? 처음처럼에서 행사를 담당할만한 여자가 어딨어?”

“저..저기 이름이 도진희라고..”

“도진희?”

보스와 봉다리가 눈을 부릅뜨며 합창한다. 익히 알고 있다는 표정이다.

“과장님. 아십니까? 저도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몰라? 영등포 마녀. 도진희.”

봉다리의 말에 빳떼리의 기억이 번뜩 살아난다.

도진희. 영등포의 마녀.

작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영등포 D마트와 홈프러스에서 참이슬에 충격적인 패배를 안겨준 여자. 참이슬과 처음처럼 상대 시장점유율 42;58. 무려 16퍼센트 차이. 참이슬로서는 최악의 지역 판매 점유율이란 오점을 찍는다.

최강의 상대. 그것이 빳떼리의 의지에 불을 지핀다.

“보스. 차라리 잘됐습니다. 이번 기회에 영등포에서 당한 복수를 해주죠.”

“새꺄. 그렇게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냐.”

봉다리가 빳떼리의 의지에 찬물을 끼얹는다. 그렇다고 물러설 빳떼리도 아니다.

“뭘 생각합니까. 생각한다고 달라질 거 있습니까. 일단 필드에서 뛰어보자구요. 우린 무적의 영업3과입니다. 무대포로 밀어붙여 보자구요.”

“그러는 놈이 노른자위 매대를 뺏겨?”

그 말에 빳떼리는 할말이 없다. 그러나 보스가 빳떼리의 열변에 힘을 실어준다.

“빳데리 말이 맞아. 우린 무적의 영업3과야. 우리한테 패배란 없다. 모두들 이번 행사에 뼈를 묻을 각오로 뛴다. 알겠나.”

모두들 보스의 말에 사무실이 떠나가도록 대답한다.

그야말로 치열한 전쟁터였다.

영업3과는 사활을 건 총력전이었다. 다른 매장은 나중이었다. 영업3과 직원 전부가 D마트에서 투입됐다. 3과 직원 6명에 판매직원4명. 총10명이 인해전술로 손님들과 1대1마크를 했다. 처음처럼도 영업과 전직원이 투입된 것 같았다. 입구쪽 노른자위 매대엔 온통 처음처럼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만 보일 정도였다. 거기다가 산더미처럼 쌓은 과자가 압권이었다. 멀리서 보면 그것은 마치 거대한 과자 산처럼 보일 정도였다. 사람들은 매장 어느 곳에서든지 처음처럼 매대가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판매전략도 독특했다. 이번에 처음처럼에서 전폭적으로 밀고 있는 신상품인 멕시코풍 과자‘퀘사디아’를 맛보기용으로 만들어 구상품에 번들로 묶어주었다. 맛보기를 먹어본 사람들은 다시 찾아와 퀘사디아를 장바구니에 무더기로 담았다. 우리의 최대 장점은 다양한 네트워크다. 여러 과자를 한꺼번에 집어넣은 꾸러미를 만들어 그것을 산 사람에게는 아이스크림과 생수 할인 쿠폰을 주었다. 역시 사람들은 할인 쿠폰에 약했다.

D마트 구내식당은 그야말로 사람들로 미어터질 지경이다. 겨우 직원을 수용할 수 있는 식당에 행사관계자들까지 밀어닥치니 오죽하겠는가. 매장에서도 전쟁인데 여기서도 전쟁이다.

꼬리에 꼬리를 문 긴 줄에 끼어있는 빳떼리가 복어처럼 잔뜩 부어있다. 식사는 2인1조로 한다. 그런데 오늘은 모난리자와 같은 조다. 막내와 밥을 먹으면 얼마나 므흣한가 ^^ 하루 피로가 풀릴 것이다. 하여간 복도 지지리도 없다. 뽑기로 결정하는 식사순서에 항상 막내를 피하는 빳떼리다. 그렇게 투덜대는 빳떼리한테 나긋한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

“식사하러 오셨나봐요.”

돌아보니 도진희다. 여전히 생글거리는 얼굴이다.

“식당에 밥 먹으러 오지 떡 먹으러 오겠어요.”

“까칠하시긴. 좀 친하게 지나면 덧나요.”

“우린 총칼을 맞대고 있는 적이야. 적끼리 뭘 친해.”

“얼마든지 친할 수 있죠. 로미오와 쥬리엣도 원수집안에서 사랑한 사이였잖아요.”

“사~~~~랑? 우리가 사랑을 한다고?”

“깔깔깔깔..”

여자의 커다란 웃음소리에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여자는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 않는다는 듯 빳떼리에게 나긋하게 말한다.

“너무 비약하시네요. 혹시 그게 속마음인가요?”

“뭐야!”

빳떼리가 터져나오려는 욕을 목울대에서 잠깐 참는 순간 저만치 식탁에 앉아있는 여자의 일행이 소리친다.

“도대리. 여기야.”

“식사 맛있게 하세요.”

여자가 생글거리는 인사를 하며 돌아섰다.

걸어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보는 빳떼리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진다. 당장 달려가서 여자의 뒤통수라도 갈겨주고 싶은 심정이다.

“뭐 저딴 여자가 다 있어. 가만..혹시 저 여자 박대리님 좋아하는 거 아냐?”

“뭐야!!”

모난리자의 말에 빳떼리가 목젖이 튀어나오도록 소리친다. 다시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린다. 이런 상황에서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갈 리가 없다. 씩씩대며 식당을 나오는 빳떼리다.

온통 머리 속에 그 여자 생각이다. 할 수만 있다면 갈갈이 찢어주고 싶은 심정이다. 그때 빳떼리의 머리 속을 번개같이 스치는 것이 있었다.

-도대리-

도대리라고? 도대리?

도대리..도대리..도대리..도대리..도대리..도대리..도대리..도대리..도대리

설마..

빳떼리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한다.

단 0.1퍼센트도 안되는 가능성. 빳떼리는 그 0.1퍼센도 안되는 가능성의 진위를 알고 싶었다. 그래. 어차피 밑져 봤자 본전이다.

가능성의 진위를 알기 위해서 호칭본능을 시험하기로 한다. 누구든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 본능적으로 돌아본다.

빳떼리는 처음처럼 매장으로 걸어갔다. 매장은 손님으로 북적대고 있었다. 여자는 주부 한명에게 이것저것 과자를 권하고 있었다. 빳떼리가 여자 쪽으로 걸어간다. 여자의 뒷모습이 점점 가까워진다. 여자를 막 스쳐 지나가는 순간 빳떼리가 나즈막이 불렀다.

“도토리.”

반응이 없다. 여자는 주부의 카트에 과자를 담아주고 있었다.

역시 아니군, 그렇지. 그럴 리가 없지.

그 순간 빳떼리의 등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빳떼리님.”

빳떼리는 고개를 돌렸다. 여자가 생글거리는 얼굴로 빳떼리를 바라본다.

벌렁거리는 빳떼리의 심장은 터질 지경이다. 머리 속은 온통 하얗게 텅 비어버렸다. 눈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도토리만 보였다.

“오늘 한판 하실까요.”

여자의 말과 동시에 빳떼리의 몸이 여자한테 돌진했다.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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