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난 이때부터 말일까지가 젤루 싫다. ㅜㅜ

월말 판매실적 통계를 뽑아야한다.

우리 관할구역 안에 있는 백화점, 대형할인점, 편의점, 마트, 슈퍼 등...전체 판매수량, 구역별, 업종별, 아이템별...하여간 소트해야할 것만도 수십 가지이다.

거기다가 하필이면 우리 구역은 이놈의 백화점과 대형할인점은 얼마나 많은지...전쟁터가 따로 없다 ㅡㅡ;;

또 상대회사보다 판매량이 저조하다든가 하면 얄짤없이 얼차레(?)가 내려진다. 한마디로 좃뺑이를 친다는 얘기다.

하여간 과자 하나에 목숨을 건다.

참, 우리 회사는 과자를 만들어 판다.

회사이름은 우는 아이도 울음을 그친다는 ‘참이슬’이다.

암튼 그건 그렇고...

왜 띠용...소리가 안나지?

그놈이 나타나면 띠용...이 소리가 나야하는데...

나는 주변을 한번 쓰윽 조심스럽게 둘러본다.

모두들 자신의 본연의 일에 충실하는 데 여념이 없다.

내가 뭘하든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것이다.

난 비활성화된 아이콘을 활성화시킨다.

오로 바둑 싸이트가 화면 가득 찬다.

언능 친구목록을 체크해본다.

‘도토리’

씁새, 없다.

벌써 일주일째 잠복근무지만 도토리란 이 좀마는 나타나지 않는다.

으으으...

도토리 그 좀마를 생각하니 치밀어오는 분노에 또 온몸이 사시나무 떨 듯이 떨려온다.

지난주 토요일이다.

모처럼 진상들하고 약속도 없고 일찌감치 집에 들어와 저녁을 때리고 마마에게 작별인사를 고하고 잽싸게 내방으로 들어갔다.

컴터 앞에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돼 있다.

캔맥주, 안주, 캔커피, 담배, 재떨이, 회사에서 시식용으로 준 주전부리용 과자.

음.. 훌륭해, 므흣하다...^^

내일은 공휴일...흐흐흐...오늘은 맘 놓고 밤새도록 놀아도 된다.

이 얼마나 행복한가.

컴터를 부팅시키고 오로에 들어간다.

느긋하게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면서 긴장을 푼다.

베팅도 하고 무념님 음악도 듣고 대창에서 야부리도 까고...

이젠 적당히 릴렉스하다. 슬슬 적당한 상대를 만나 좀 주물러줘야지.

그런 생각을 하고 상대를 찾는데 대국신청이 들어온다.

대명이 도토리다.

4급, 전적은 472승461패.

흠...아주 좋아...적당해.

우리는 오로에서 제공하는 아늑하고 조용한 방에 들어가 앉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알게 되어서 기쁩니다

역시 오로에서 제공하는 간단한 인사를 글쇠로 날렸다.

근데 도토리 그놈은...

         봐주셔서 제가 이긴 것 같습니다

이런 썁새레이숑이...아직 두지도 않았는데 뭘 봐주셔서 이겨...

좋아, 좋아, 컴터에 약한 아저씨인 모양인데 내가 이해하지.

일단 두자구...

내가 백이다.

아...오늘은 내가 생각해도 너무 컨디숑이 조타 ^___________^

행마가 날아다닌다.

도토린지 상수린지 저놈은 버벅대고 긴다.

이기고 있는 자의 여유...

흠...맥주두 마시고 오징어에 땅콩도 말아서 먹고...

놈이 되지도 않는 떼를 쓴다.

잡지도 못할 말을 잡겠다고 딥따리 드리댄다.

나는 맥주를 마시면서 여유 있게 도망간다.

허걱...그 순간 맥주를 놓는다는 게 미끄러지면서 확 쏟아졌다. -.-;;

어어...하다가 마우스를 클릭해버렸다.

“어디지, 내가 어딜 둔 거지...”

두리번 두리번...

ㅠㅠ

하필이면...그 많고 많은데 놔두고 1의1에 뒀다.

한수가 그냥 허당블루스가 됐다.
덕분에...절대 죽지 않을 말이 홀라당 뒈져버린다.

불계다...불계승이 아니라 불계패.

          봐주셔서 제가 이긴 것 같습니다

놈의 멘트가 더 열받는다.

으으으...

원모아타임.

쿨하게 재대국을 받아준다.

대체적으로 이런 놈들은 후다닥...도망가버리는데 그 점에서는 제법 싸가지가 있다.

그건 그렇고 이번에는 싸그리 다 잡아먹어버릴 테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두는데 한번 삥이간 머리는 돌아오지 않는다.

또 진다.

한판이 두판 되고...두판이 세판...네판...

8전 8패.

여덟 번째 판은 반집패다.

거짓말 하나 안하고 눈물이 났다.

다시 재대국 신청을 하자...

              안녕히 계십시요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이거 달랑 두 줄을 도마뱀 꼬리처럼 남기고 사라졌다.

대화명 검색으로 아무리 찾아봐도 놈은 보이지 않는다.

분노와 울분, 흥분, 고혈압, 뇌졸증, 사지마비...

온갖 것이 동시에 내 몸을 지배했다.

급기야 난 머리가 돌고야 말았다.

모니터를 들어서 패대기를 친다 ㅡㅡ;;

...콰장창창...

우리 부모님은 무슨 전쟁이라도 터진 줄 알고 내방으로 허겁지겁 뛰어왔다가 아수라장이 된 내방을 보고 아연실색을 한다.

그날 파파한테 존나 깨진 생각을 하면 지금도 혈압이 500을 넘어간다.

아직도 내 눈탱이에는 그날 깨진 흔적이 남아있다.

별로 아름답지 못한 그날 기억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뒤통수를 냅다 갈긴다.

“악!! 어떤 씁새!”

휙 돌아보는데 봉다리, 아니 허봉달 과장이 서류철을 흔들면서 서있다.

“과...과장님”

“내가 어? 분명히 말했지, 근무시간에 컴터하지 말라고...더군다나 지금 시국이 어떤 시국이야, 눈이 있으면 한번 보라구...어? 월말이라고 전부 다들 좃뺑이치고 있는데 이렇게 바둑싸이트나 보고 있으면 되겠어, 안되겠어?”

봉다리의 주특기인 헤드록이 가차 없이 들어온다.

“아아아...과...과장님...그...그게 아...아니구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헤드록에 비틀기 고급기술이 들어온다.

“으아아아악!”

사무실 안에 단말마같은 비명소리가 울려퍼진다.

그러든 말든 전부 다들 자기 일에 여념이 없다.

빳떼리가 저렇게 봉다리한테 당하는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빳떼리? 아..아직 내 소개를 안했군.

사람들은 날 빳떼리라고 부른다.

박대리인데 음의 변천을 거쳐 빳떼리가 됐다.

우리 영업3과의 모토는 열정이다.

일이든 노는 거든 뭐든지 열정적이다.

열정이 없으면 우리 과에 붙어있지를 못한다.

일 끝나고 회식이라도 있으면 삽겹살에 소주, 그 담은 호프, 3차 노래방.

노래방까지 가면 그야말로 광란이다.

특대형 노래방을 여섯 명이 좁다고 누빈다.

화장지와 넥타이, 이런 소품은 기본이다.

빤쓰에 양말, 심지어는 생리대까지 동원된다.

여직원들도 이제는 이런 것에 충분히 익숙해져 딴사람들하고는 시시해서 못논다는 푸념까지 한다.

“아이고..죽겠다. 좀 쉬어야지.”

1시간을 넘게 놀자 전부 다들 쉬어야겠다고 자리에 주저앉는다.

“쉬긴 뭘 쉬어. 시간이 돈이라고...”

“하여간 빳떼리님은 알아줘야해. 피곤하지도 않아요?”

“피곤하긴 뭐가 피곤해. 앞으로도 10시간은 더 놀 수 있어.”

“하여간 빳떼리 저거 노는 건 알아줘야해. 일도 저렇게 열심히 하면 얼마나 좋아.”

봉다리가 맥주를 들이키며 한마디 한다.

“아니, 과장님. 제가 일을 못하는 건 또 뭐가 있습니까? 필드면 필드, 오피면 오피...저만큼 전천후가 또 있습니까? 글구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지난달에 ‘처음처럼’하고 이마트에서 붙었을 때 척투병으로 나선 게 누굽니까, 저 아닙니까. 이 빳떼리가 아니면 누가 척투병으로 나서냐고요...”

“또 게거품을 무는구만. 그러는 놈이 오늘 그렇게 바쁜데 바둑 싸이트나 들락거려?”

“그건 다 이유가 있다니까요.”

“이유는 무슨 얼어죽을 놈의 이유야.”

“아흐흐흑...내가 또 그 생각만 하면 눈물이 앞을 가려서...”

빳떼리는 도토리란 놈하고 바둑 얘기를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일장연설한다.

“뭬..뭬야!! 그런 사건이 있었다고...!”

“으흐흐흑...그러니 제 심정이 심정이겠습니까, 과장님.”

“도토리라고? 아니 당할 놈이 없어서 도토리한테 당해? 그리고 말야 이 바둑이란 건 정신적인 수양이거덩...즉 다시 말해서 정신일도하사불성, 그거 알지? 정신을 바짝 차리란 말이야...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떡 하나 얻어먹는다잖아.”

앞뒤 없이 이 쉴 사이 없이 떠들어 대는 놈은 김구라다. 하여간 이 좀마는 물에 빠져도 주둥아리는 뜰 것이 분명하다.

“이 씁새가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거여 뭐여! 시방.”

“이봐, 진정하라고..빳떼리...이렇게 흥분하는 건 건강에 좋지 않아, 냉정하게...이성적으로 생각 하라는 거지, 내 얘기는...”

그때 꽝...탁상이 부서지는 소리에 전부 다들 화들짝 놀란다.

헉! 팀장님!

고팀장. 40살. 신장; 182. 체중; 92키로

일명, 고릴라...

우리의 보스다. 평소에 과묵하기 짝이 없지만 화가 나면 무지 무섭다. ㅠㅠ

“빳떼리, 그런 치욕을 당하고도 아직 목숨을 달고 다니나?”

“저..저..그..그게 보스, 저두 그 이후로 그놈을 만나려고 무지 애를 썼지만 놈이 잠수를 탔는지 도무지 만날 길이...더군다나 요즘 월말이라 바쁜 관계로...”

...꽝...

고릴라가 다시 솥뚜껑 같은 손으로 탁자를 내려쳤다.

탁자가 안 쪼개진 게 신기하다.

전부 다들 사시나무 떨듯이 떤다.

“변명은 필요 없다. 내가 뭐라고 했나, 패자는 말이 없다. 오직! 승리! 이기는 사람만 말할 권리가 있는 거다!! 알겠나?”

“네네네...”

그저 머리를 조아려야한다.

여기서 까딱하면 목숨도 없다.

“봉다리...”

우리 회사에서 허과장을 봉다리라고 과감하게 대놓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고릴라가 유일하다.

“옙, 보스.”

“전격 지원해. 빳떼리의 수치를 씻을 수 있도록! 빳떼리의 수치는 우리 영업3과의 수치다, 알겠나!”

“옙, 보스.”

“모난리자.”

모난리자. 얼굴이 네모난 여직원이다.

얼른 돈을 벌어 네모난 얼굴을 계란형으로 성형하겠다는 게 그녀의 유일한 꿈이다.

“네, 보스.”

“노래시간이 끝났잖나. 우릴 어떻게 봤길래 써비스도 안주는 건가.”

“즉각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모난리자가 눈썹이 휘날리도록 밖으로 뛰어나간다.

써비스 1시간...

또 광란이 시작된다.

여기서 우리 영업3과 광란의 팀원을 잠깐 소개하기로 하자.

고릴라; 고주태(40세). 앞서 소개한 바대로 우리 보스다, 누구한테도 지고는 못사는 성미인데 2년전 이사를 두들겨 패서 2년째 부장 승진에서 누락된 상태다. 계속 이러면 그 이사의 팔 하나쯤 부러트리고 아예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벼르고 있다. ㅡㅡ;;

허과장; 허봉달(32세). 일명 봉다리로 불리며 성격이 포악하기 그지없다. 승부욕이 대단하며 이기기 위해서는 물불을 안 가린다.

나; 박두식(27세), 일명 빳떼리. 그야말로 성격 좋고 잘생기고 의협심에 불타는 이 시대의 마지막 로맨티스트다. 나만의 생각이다 ㅡㅡ;;

김대리; 김문수(27세), 일명 김구라. 하여간 말이 존나 많은 놈이다. 그것도 앞뒤 맞지도 않은 말을 무지 떠들어댄다. 근데 이상한 건 사람들이 이 말도 안되는 이놈 말에 곧잘 넘어간다는 사실이다.

모난리자; 나영숙(23세). 앞서 말한 대로 얼굴이 완전히 정사각형이다. 신기하다.          앞으로 1년만 더 돈을 모으면 얼굴을 계란형으로 바꿀 수있다고 맘이 들떠 있다. 하지만 얼굴만 계란형으로 뜯어고친다고 그녀의 얼굴이 왕비호에서 호감으로 바뀔 거라고 믿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막내; 민지영(21살). 1년차 신참사원이다. 한마디로 쩌는 여자다. 얼굴은 김태희요 몸매는 전지현이다. 거기다 성격도 좋다.  난 이 세상에 여자는 이 민지영뿐이 없다고 생각한다.   단 하나 흠이 있다면 너무 술을 좋아한다. 기본이 소주 3병이다. -.-;;  가능하면 어떻게든 고쳐서 살아볼 작정이다. 이것도 순전히 나만의 생각이다. ㅠㅠ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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