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부(冥府) ☞ 저승

( 저승 세계에는 명판관 포청천(包靑天)이 있었으니, 그는 이승에서 명(命)을 다하고 온 사람의 행적을 조사하여 지옥으로 보낼 것인지 아니면 사후낙원(死後樂園)으로 보낼 것인지를 결정하였다.

어느 날 그는 저승 세계의 법칙을 깨는 중대한 결정을 한다.)

"난 오늘 중대한 결정을 할 것이다. 이승에서는 인간의 탐욕으로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인간이 최고의 두뇌게임이라고 여기는 바둑은 피비린내 진동하는 전쟁을 조장하고 있다. 바둑은 단지 전쟁을 게임으로 전환했을 뿐, 그 이상의 의미 무엇도 아니다."

"바둑은 태생이 분명히 전쟁에서 나왔음에도 요순을 들먹이며 탄생을 미화시킬 뿐 아니라 바둑 기(棋)에 도(道)를 억지로 끌어와서 기도(棋道)를 부르짖으며 참다운 도(道)의 의미를 더럽히고 있다."

                         
                                요(堯) 순(舜) ☞ 성군이라 불림
 

그리하여 나는 결심하였다."

"인간의 탐욕과 피비린내 진동하는 전쟁을 뿌리로 삼고서 전쟁을 조장할 뿐 아니라 진정한 도(道)의 참뜻을 왜곡하는 바둑에 철퇴를 가할 것이다.

일벌백계의 의미로 바둑의 성인이라 불리며 바둑계의 우두머리로 군림하고 있는 이창호 9단을 저승으로 데려와 전격처결하여 인간세계에 길이길이 본보기로 삼으리라!"

(공손책) "대인."

(포청천) "공손 선생, 말씀하시오."

(공손) "대인께서 말씀하시는 뜻은 잘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승의 인간은 제 명을 다했건 제 명을 다하지 못했건 죽은 자만이 이곳 저승으로 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인께서는 임의대로 이승의 인간을 이곳으로 데려온다고 하시니 그런 일은 지금까지 없었고 옳지도 않습니다. 대인, 다시 한 번 숙고하시기 바랍니다."

(포청천) "공손 선생, 내가 왜 그걸 모르겠소. 그러나 선생도 똑똑히 보았을 것이오."

"전쟁의 와중에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아이를 폭격에서 살려내고 자신의 몸뚱이는 갈기갈기 찢겨 이곳 저승에 온 어머니를...

이승에 혼자 남은 아이는 엄마를 애타게 찾으며 울부짖고 있었소..."

                                                                베트남 전쟁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히틀러를 보시오. 그들이 왜 참담한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인명을 살상했겠소? 허무맹랑한 영토에 대한 야욕 때문이 아니오?

공손 선생, 영토를 확장하여 누가 더 많이 차지하는가를 최종목적으로 하며 그것을 위해 죽이기를 예사로 하는 게 바로 바둑이오."

"그러한 바둑을 인간은 최고의 두뇌게임으로 치켜세우며 평화의 축전이라 불리는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이 되기를 꿈꾸고 있다고 들었소.

비록 바둑이 게임에 불과하다고 하나 인간세는 바둑에 도(道)를 끌어들여 바둑의 지위를 터무니없이 격상시켜 본질이 전쟁일 수밖에 없는 바둑을 창궐시키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가소롭고 가증스러운 짓이란 말이오? 

그러는 가운데 인간세는 바둑을 통해서 알게 모르게 전쟁의 참담함에 무감각하게 되는 것이오.

어리석은 인간 같으니... 

나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오."

"전조!

인간이 만든 가장 사악한 게임인 바둑의 최강자로 10여 년 이상이나 군림하며 인간세계에 전쟁을 미화시키고 기성(棋聖)이라는 칭호를 들으며 성인(聖人)을 욕되게 하는 이창호 9단을 잡아 대령하라!"

(전조)

"예, 포대인."

( 전조는 바로 이창호 9단의 집으로 향했다.)

( 이9단은 이날 대국했던 바둑을 복기하고 있었다. 이

날 대국의 승부처에 대해 집에 오는 내내 생각했던 이

9단은 옷도 갈아입지 않고 복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9단의 옆에서 누군가가 이 9단을 지켜보고

있었으니...)

( 이창호 9단의 머릿속은 이내 몽롱해졌다.

이창호는 무엇에 홀린 듯 전조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 얼마나 지났을까...)

"이창호 9단에게 죄수복을 입혀라!

이창호, 당신은 이제부터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이승에서 제법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은 자들은 이곳 저승에 와서도 자신의 행적을 세치혀로 미화하기에 바빴다. 

난 그 더러운 혀를 내 앞에서 놀리는 것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이창호 9단, 그대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러니 그대를 벙어리로 만든 것을 원망하지 마라."

"전조!

이창호 9단의 죄상을 낱낱이 열거하라!"

"첫째, 이창호는 어릴 때부터 바둑에 빠져 세계바둑계의 일인자로 등극해 전쟁놀이에 불과하고 사악하기 이를 데 없는 바둑의 창궐(猖獗)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셋째, 전쟁을 모방하여 탄생했고 또한 전쟁을 조장하고 있는 바둑에 대해서 이창호는 기도(棋道)를 들먹이며 마치 도(道)의 화신인 양 행세하여 참된 도(道)의 의미를 왜곡시키고 욕되게 하고 있다."

 
(포대인) "이창호, 그대의 죄상은 너무나 커서 지옥의 불구덩이에 빠질 수밖에 없다. 

날 원망하지 말고 바둑이라는 사악한 게임에 물든 자신을 돌아보아라."

"그대의 가슴에 새겨진 바둑을 의미하는 기(棋)는 지옥에 가서도 낙인으로써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 낙인 때문에 지옥불의 마귀들에게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할 것이다." 

(공손책) "대인, 이창호 9단의 죄가 크다하나, 변호할 기회조차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처결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는 전혀 대인답지 않을 뿐 아니라 판결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이창호에게 발언할 기회를 주시는 것이 마땅합니다."

(포대인) "공손 선생, 아까도 말했지만 이 문제만큼은 나의 결정을 따라주시오. 이번만큼은 양보할 수가 없습니다."

개작두를 대령하라!!

  작두 대령이오~

( 이창호 9단은 진정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인가...

대국 때와 마찬가지로 놀랍도록 침착해 보이는 이창호

그는 이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일까?

아니면 아직도 정신이 몽롱한 것인지...)

( 왕조와 마한은 이창호를 작두로 끌고 갔다.)

( 빨간 표지가 바닥에 던져지면 처형은 집행된다.

포대인이 빨간 표지를 던지려는 순간, 갑자기 벼락같은 소리가 났다.)

"아뵤~

포대인, 알고 보니 성질이 매우 급하시군요~

이렇게 속전속결로 처결하는 건 처음 봅니다.

이창호에게 말 한마디라도 하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닙

니까?"

"당신은 이소룡 사범이 아닙니까?

이곳에 어떻게?"

"전조, 오랜만에 보는군.

자네가 지난 판결 때, 나의 무도(武道)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옹호해 주어서 난 지금 사후낙원(死後樂園)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지. 자네를 잊지 않고 있네.

그런데 자네가 모시는 포대인은 도(道)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군..."

"소룡, 하고 싶은 말이 도대체 무엇인가?

소룡 그대가 지금 무엇을 했는지 알고 있는가?

감히 내 앞에서 집행을 중지시키다니!"

"네, 포대인. 제가 무슨 짓을 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감히 포대인이 주재하는 집행을 막아섰습니다. 지옥의 불구덩이에 가고도 남는 죄입니다.

하지만, 지옥에 갈 땐 가더라도 도(道)에 대해서 한마디 올리고자 합니다.

포대인께서는 지난 저의 판결 때 제가 주장하는 무도(武道)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 소룡. 
자네의 무도(武道)가 그렇게 심원한지 난 몰랐었다.

하지만, 자네와 전조의 설명으로 난 무도(武道)에 매료당했다. 그래서 자네를 낙원으로 보냈지."

"그때를 잊지 않으셨군요. 혹 포대인이 잊으셨을까 봐 그때 제가 주장한 무도(武道)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설명하겠습니다.

무도란 진정 무엇이겠습니까?

인간세에는 쿵후, 태권도, 유도, 가라데, 무에타이, 삼보, 카포에라 등 무수히 많은 무술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강할까요?  쿵후?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전 쿵후를 가장 먼저 배웠습니다. 그리고 한때, 쿵후가 가장 훌륭한 무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송생) "포대인, 최고의 선은 물이라 했고 물은 도에 가장 가깝다고 했습니다.

(도덕경 上善若水 故幾於道)

바둑뿐 아니라 인성까지 물을 닮은 이 9단이야말로 진정으로 도(道)를 추구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포대인) ......

(저만치서 누군가가 슬슬 등장한다.)

"아니, 백남준 선생, 여기까지 웬일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