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처음 울던날

며칠전 큰맘 먹고 컴퓨터를 새로 장만했습니다.

제가 컴을 산 것은 한 세번쯤 되는데, 새 컴퓨터를 마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요.

사실, 컴퓨터로 삶의 발판을 삼은 사람이 아니고 바둑이나 한판 두고 인터넷이나 살펴볼 수 있으면 족했기에 그동안도 그리 불편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신문광고에서 우연히 중저가 브랜드의 피시를 본 후 한달동안 금주를 결심하고 사버리고 말았습니다.

인텔에서 2.0G를 일반화 하기 위해 칩 가격을 내린 덕이라고 하더군요.

누구의 덕이든 일단 꾸준히 중고를 쓰던 입장에서 회색감도는 하얀 케이스와 좀더 커진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으니, 한달간 술 못먹을 생각도 좀 가셔지더라고요.

제가 즐겨찾는 사이트를 등록하고, 오로바둑도 받아두고 다음 한 일이란 게 음악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소리바다란 사이트가 곧 폐쇄될 얘기를 들은지라 바삐 좋아하는 노래를 받아 놓았습니다.

김광석 씨의 노래를 좋아하기에 이것저것 다 받아볼 수 있었지요.

지금은 그의 노래 중 '그녀가 처음 울던 날'이 나오는군요.

제목과 어울리지 않게 경쾌하게 이어지는 기타음이 좀 의아스럽긴 하지만, 그녀가 처음 울던 날을 묘사한 가사는 마음에 와 닿더라고요.

이 노래를 들으며 지금 제 곁에 있는 여자친구가 처음 울던 날이 생각이 났습니다.

예전 피치못할 사정으로 대학을 중도에 하차한 그때였지요.

이미 그 전에 만난 친구였기에 그 사정도 이해했고, 그리 저를 나무라진 않더군요.

하지만, 그 후에 저의 무위도식이 한달쯤 이어질 무렵 어느날처럼 제집에 찾아온 그녀가 울기 시작하더군요.

그녀가 처음 울던 날이 그날이었지요.

왕방울처럼 떨어지는 그 눈물에 폐인과 같은 제 생활을 청산할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도 덧붙이지 않고 이어지던 그녀의 눈물...

그 눈물이 그래도 오늘을 그녀와 함께 지탱할 수 있는 힘이 되고 있나 봅니다.

옆에서 제 글을 힐끗 보고 간 여자친구가 이러는군요.

"안타까운 게 아니라 하도 한심해서 눈물이 난거야!"

ㅎㅎ 안타깝든 한심하든 어떤 이에 대해 눈물이 난 것은 사랑이 없으면 가능할라고요.

저렇게 예쁜 사람의 눈에서 눈물이 나지 않게 해야겠습니다.

여자를 오직 지켜줘야 한다고 믿는 마초라고 욕해도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서 다시 눈물을 보고 싶지 않음은 양보할 수 없는 아침이군요.

2002-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