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전두환 7단이야~

연희동 골목에 빛나리 바둑교실이 있다.

이곳 원장은 제11대 오로국수를 지냈던 전두환 7단.

왕년의 오로국수 전두환 7단은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이곳 바둑교실을 지키며 이따금씩 '나 전두환 7단이야~'하는 골목성명도 곧잘 발표하는 등 그 훤칠한 이마만큼이나 번쩍거리는 황혼의 열차에 올라, 정력(?)적으로 세상을 복기하고 있었다.

땅 파서 나오면 가져가라, 29만점밖에 없다니까!

최근 그가 오로게시판을 한동안 들썩하게 했는데, [시민단체]란 아이디를 가진 한 이용자가 제기한 밀어주기 의혹.

그 내용은, 전두환 7단이 자신이 이끄는 [십이십이] 동호회원을 작전세력으로 삼아 빛나리 바둑교실 사범인 장세동 6단에 고배당을 유도한 후 돌을 던져 베팅머니를 착복했다는 내용이었는데, 사실 여부를 떠나 오로 국수까지 지낸 그의 명성에 큰 흠집을 가져왔다.

-얼마 전 밀어주기 대국으로 곤혹을 치르셨는데요?

"본인은 별로 신경 안씁니다. 사실 관계도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오로측은 무려 2000억원의 제 베팅머니를 압수했어요. 제가 가지고 있던 게 370억원인가였는데 몽땅 털리고 이제 달랑29만점 남았어요. 숨겨논 게 있는 거 아니냐며 자꾸 시비거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집에 와서 땅을 파든 컴퓨터를 해킹하든 나오면 가져가라 하세요. 나참 어이가 없어서...오죽하면 요즘 제가 대기실에서 아는 사람들에게 한푼 두푼 구걸을 하고 다니겠소? '본인에게 한푼만 줘 BoA요~' 하면서 말이요...나 참 남사스러워서..."

-가족들 베팅머니가 수백억에 달한다는 소문도 있던데요?

"본인의 문제는 본인에게 물어봐야지 가족들이 뭔 상관이요? 그 얘긴 그만 합시다!"

단호하게 끊는 그의 목소리는, 칠순이 넘은 나이를 의심케 할 만큼 크고 괄괄했다.

-아직도 목소리에 힘이 넘치십니다, 특별한 건강관리 비법이라도...

"허허...원래 위가 훤하면 힘이 넘치는 법이요. 농담이고...뭐 특별한 건 없습니다. 마누라가 음식을 잘 챙겨줍니다. 틈틈이 골프도 치고 해외로 여행도 다니고 뭐 그런 정도지..."

그의 부인인 이순자 씨도 여류기사 출신이다. 여류기사의 명칭이 '여사'로 바뀐 것도 이순자 씨 때문이기도 하다. 큰승부 때마다 빨간바지를 입고 대국에 임하여 '빨간바지의 마녀, 철녀'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이순자 씨가 현역으로 활약할 당시 여사들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하여 심지어 당시 바둑계 핵심 중 핵심인 "육사 위에 여사가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하나기우회와 신포석

1931년 경남 합천에서 출생한 전두환 7단이 바둑을 배운 것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였다. 동네 어른들이 바둑 두는 것을 어깨너머로 배우며 기재를 보였던 그가 본격적인 바둑수업에 임한 것은 과거 꽤 오랫동안 바둑계를 좌지우지 했던 육사에 입학하면서부터이다.

육사에서도 기수마다 기재가 출중한 이들을 따로 뽑아 만든 사조직으로 '하나기우회'가 있었는데 그는 노태우 7단, 장세동 6단, 허삼수 5단, 허화평 4단 등과 함께 핵심멤버로, 이른바 '신포석'을 펼치며 두각을 나타내었다.

그의 실질적 스승은 한국바둑 근대화의 아버지라는 찬사와 무자비한 독재바둑이었다는 비난의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는 박정희 7단(5대~9대 오로국수). 그 박정희 7단의 비호아래 바둑계의 기린아로 성장하던 그는 1980년 꿈에 그리던 오로국수에 등극하게 된다.

12-12쿠데타와 99.8%의 베팅신화

-1980년 제11대 오로국수에 오르셨는데요, 그때 상황 좀 설명해 주시죠?

"다 아시다시피 박정희 前국수가 김재규 6단과의 궁정동 음주대국에서, 김재규 6단이 바둑판을 뒤엎고 집어던진 바둑알에 유명을 달리하셨지요. 대번에 국수위는 공석이 되고 도전기도 없이 전년도 시드 배정자 중 1위를 했었던 최규하 7단이 거져먹기로 10대 국수에 올랐어요.

본인이 가만히 보니 이 양반이 갈팡질팡하고 중심을 못잡는거라.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나라 바둑계가 큰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뭐 그래서 '하나기우회' 명의로 도전장을 냈지. 그때 생각이 아직도 생생해...구국의 일념이었지...

1979년 12월12일이었는데(후에 이때의 일을 바둑계는 '1212쿠데타'라고 칭한다) 내가 군복하고 군화를 질끈 동여매고 대국장인 체육관에 나섰지. 내심 나도 실력은 자신했지만 워낙 큰 판이었어야지...오줌을 세번이나 눴나 그랬어.
체육관에 모인 베팅꾼 중 딱 한명인가 빼곤 죄다 나에게 베팅을 했었지. 99.8%인가? 김일성이나 후세인이라면 모를까 기록적이었지. 근데 막상 상대가 기권해 버렸어. 나참 거져먹은 셈이지, 아직도 아쉬워..."

-광주 바둑계가 그때 전두환 7단의 국수위 등극을 인정할 수 없다며 들고 일어섰었는데요, 그때 광주쪽의 바둑판과 바둑돌을 죄다 몰수해 버리셨다죠?

"내 그 일로 감옥까지 갔다오는 등 지금까지 욕을 먹고 있어요. 하지만 말이야, 그땐 그럴수밖에 없었단 말이야. 광주쪽에 이색바둑이라며 흑백돌 사이에 가끔 빨간돌을 놓는 일명 빨갱이 바둑이 유행했었어. 그건 북한식이거든. 이러다간 나라 결딴 나겠다...그래서 결심한 거지...뭐 내가 사형까지 선고받고 끝낸 일이고 모두 역사가 평가해 줄거야..."

6.29 TV생중계 선언

-항간엔 체육관 국수라는 평가도 있는데요, 왜 항상 대국을 체육관에서만 하고 티브이 생중계는 거부하셨는지요?

"우리 군대바둑이 원래 체력이 강해야 해요. 왜? 힘으로 밀어붙여야 하거든. 뭐 그래서 체육관이 익숙한 것이었고 또, 티브이 생중계에 대해서는 뭐랄까 힘쓸 때 땀나면 그것처럼 골치 아픈 게 없어요. 나라고 티브이 생중계 안하고 싶었겠나. 근데 생중계 땐 조명이랍시고 뜨겁게 내려쬐니 땀이 오죽 많이 나야지. 내 원래 이마가 훤칠해서 따로 조명이 필요 없다고 그렇게 말해도 조명이 없으면 방송이 안된데. 그래서 뭐 할 수 없이 생중계는 안되고 체육관에서 조촐하게 진행했지. 내가 원래 검소한 걸 좋아하거든"

-노태우 7단이 6.29특별대국에서 밝힌 오로국수위 티브이 생중계 선언이 실제론 전두환 7단의 작품이었다는데요, 그때 얘기 좀 들려주시죠?

"태우가 군대바둑이라지만 물바둑 성격이 강해. 오죽하면 물태우라 그랬겠어요. 그때 도전자로 유력한 것이 김영삼 7단이나 김대중 7단 둘 중에 하나인데, 그 두 양반은 재야바둑이라고 무시 못했거든. 화초바둑이 아니야...거기다 티브이 생중계까지 하면 아무래도 물바둑인 태우가 밀리겠다 싶어서 처음엔 반대를 했지.

근데 가만보니 시드선두에 있던 김영삼, 김대중 두 양반이 욕심이 많은 사람들인거라. 동률재대국에 들어갔는데 삼패빅이 나버렸어. 어느 한쪽이 양보를 안해. 마 그래서 도전기가 3자 다면기가 된거라. 내 딱 생각했지. 다면기라면 물태우에게 승산있다. 뭐 그렇게 생중계를 하기로 한 거지..."

백담사에서 알까기

-국수위를 상실 한 후 백담사에 쫓기듯 가셨는데...

"내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려...친구가 그리 배신을 할지 누가 알았겠나. 베팅머니 나누기로 하고 밀어주기 대국을 뒀는데, 그게 들통나니까 나한테 다 뒤집어 씌워 버렸어.

그 한겨울에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고생 많이 했지. 이놈들이 바둑판도 안 주는거야. 나중에 하나 던져주는 게, 문방구표 접이식 알지? 그거 하나 갖다주드만...(손사래를 치며) 그 얘긴 정말 그만해 그만해...바둑돌이라구 다 깨진 거 가지고 마누라하고 알까기 하며 울분을 참았지."

노무현 7단과의 악연

-현 오로국수인 노무현 7단과 특별한 일화가 있었죠?

"허허...있었지. 친구 노태우 7단과 국회 청문회장에서 특별대국을 할 때 노무현 7단이 공개해설을 맡았었어.

근데 내가 헛수를 몇번 뒀더니만 해설하다 말고 이따위 바둑이 어딨냐면서 당신은 자신의 돌을 다 죽인 살인마야! 하고 소리 지르더니 초시계를 냅따 집어던지는 거야...내 그때 딱 알아봤지...아 저 친구 저 정도 박력이면 국수감이구나...근데 진짜 국수가 되버리데...허허."

-앞으로 계획이 있으시다면...?

"뭐 특별한 계획이 있겠어? 나야 국수까지 지낸 사람이고, 이 나라 바둑 발전에 본인이 도움이 된다면 견마지로를 다 하겠다...는 생각이고 혹시라도 기회가 된다면 다시 국수에 도전도 하고 싶고 뭐 그렇지...허허,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거든? 다 농담이고 이제 손주들 재롱이나 보며, 베팅머니로 용돈도 좀 주고 그렇게 사는 거지...말 나온 김에 기자양반 베팅머니 한푼 줘 BoA요~"

이순자 여사가 손수 내어 온 백담사의 매화육궁 꽃잎 우린 차를 입가심으로 긴 인터뷰를 마쳤다.
연희동 골목을 걸어나오며, 자신에 대한 것은 역사의 평가에 맡기자는 그의 말이 아직도 귓전을 맴돌고 있었다.

과연 역사는 그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덧글) 재미로 꾸민 것입니다. 그냥 쉽게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003-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