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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로] 저승에 갔다온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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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로] 저승에 갔다온 사나이
2008-01-02 조회 5919    프린트스크랩
 

잠결에 문득 눈을 뜬후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내 앞에 서있는 서늘한 사내. 검은 두루마기에 검은 갓, 그리고 흰 낯빛에 붉은칠을 한 입술. 바로 저승사자가 아니던가?


"이제 가야할 시간이라네.."

"아니 어디로요? 제가 왜요?"


"가보면 알걸세. 따라 나서게"

"아뇨. 아뇨. 전 아직 아닙니다. 못갑니다."


"미련과 집착을 버리시게. 이미 정해진 길 거역할 수 없다네."

"그래도 못갑니다. 갈 수 없습니다. 제가 가면 아내는 어떻게 삽니까? 안됩니다."


"생명보험 들어놓은 거 다 아네. 네 개나 들어놨더군. 걱정말고 가세나."

"보험료가 밀려서..."


"맞고 가시겠는가?"

"아뇨. 가시지요. ^^;;"


내 몸에서 빠져나온 나는 잠들어 있는 내 육신을 볼 수 있었다.

물론, 그 옆에서 평화롭게 잠든 아내도 함께. '여보 보험 두 가지는 내가 해약하고 술마셔 버렸소~' 라고 고백도 하고 싶었지만, 이젠 이미 늦어 버렸다.


저승까지의 여정은 멀고도 길었다.


"사자님 저승 서비스도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아무리 죽은 사람이라도 그렇지 이렇게 걷게 해서야...군대 행군도 아니고...요즘은 고객 만족을 넘어 고객 감동의 시대인데..."


"저승도 요즘 자살이다 뭐다해서 죽어나는 사람은 많은데 경제가
어렵다고 인원감축이다 난리라네. 원래 망자를 2인조로 데리고 오는 게 원칙인데 이젠 혼자 다닌다니까...잔말 말고 걷기나 하게."


"노조라도 만드시죠?"

"맞고 갈 텐가?"


"......"


사흘 밤낮을 걸어 저승에 도착했다.

저멀리 검은 수염 휘날리며 장부와 사람을 검토하는 게 필시 염라대왕이리라.


줄이 길게 늘어선 것이 대기자가 제법 됐다.

몇번째 앞에 정몽헌 회장의 모습도 보이고, 그 앞엔 두 자녀의 손을 꼭 쥔 여성의 모습... 아, 생활고를 비관해 투신한 그 사람인 것 같다.

저렇게 다들 사연이 있는데 나는 뭐람...이 생각 저 생각에 빠져 있다보니 기어이 내 차례가 되었다.


"자네가 서울 **동에 사는 양모자 맞는가?"

"허걱~ 전 음모자인데요?"


"허거걱... 음모자여? 어디보자(뒤적뒤적) 자네는 장부상으로 벽에 거시기 칠할 때까지 살아야 된다고 나오는데...이거원...초보 사자를 보냈더니 실수를 했구만...이를 어쩐다...일단 온 사람은 보내줄 수가 없는데...허허 그거참 그렇다고 양모자 대신 처리할 수도 없고...난처하구만."


"에구구 이런 법이 어디있대요. 우째 2% 부족한 저승사자를 보내서
저를 이렇게 만들었대요...엉엉 저를 다시 살아나게 해주세요. 제발요..."


"사정이 딱하긴 한데...그렇다고 그냥은 보내줄 수 없고...어디보자 네 취미가 장부에 바둑이라고 나왔는데 얼마나 두는고?"


"오로 물1단인데요"


"음 그래? 저승 규정상 비록 일처리가 잘못된 죽음이라고 해도 그냥은 보내주긴 힘들고 나와의 내기에서 이겨야만 된다. 네가 바둑을 좋아한다고 하니 9점을 깔고 한번 내기를 해 보겠느냐?"

"급수가 어떻게 되시는데요?"


"나도 오로1단이다. 내 너를 그냥 보내주려고 9점 깔라고 한 것이다. 걱정말고 반집이라도 이기면 원하는 대로 해주마."

"혹시 사기 급수 아닙니까? 영자에게 걸리면 1서버 못들어 오는데요?"


"하기싫음 관둬라..."

"해야죠...."


9점을 깐 바둑판은 거의 흑밭처럼 보였다.


'그래 굳히기만 하는거야. 난 이미 서봉수의 [천하넉점]을 마스터한 사람이 아닌가? 날일자가 제일 좋아요~~하고 단단하게 죽지만 말고 두면 설마 지기야 할까.'


염라대왕이 사귀에 어떤식으로 걸쳐와도 나는 날일자로 응수했다.

오호라...요게 말로만 듣던 풍차돌리기 모양이구나...죽지만 말자.


하지만 염라대왕의 초식은 대단했다. 그가 말한 오로1단은 사기였음이 분명했다.

초반에 탐색전이 끝나자 마자 그는 축과 장문이 아니면 무조건 내 돌을 끊어 버렸다.

그렇게 굳건하게 보였던 나의 사귀는 야금야금 서서히 유린되고 졸지에 미생이 되어 떠다니는 처지가 되고 있었다.


염라대왕은 연신 흥이난 듯 몸을 왼쪽으로 몇번 튕기고, 다시 오른쪽으로 몇번 튕기고 아예 춤을 추고 있었다.


그래도 9점의 위력으로 종반에 접어들어서도 형세는 내가 조금 나아 보였지만 문제는 우변의 미생마. 저게 살면 이기는 거고 죽으면 내 목숨도 죽으리라.


패.

패는 언제나 상수의 몫이던가. 염라대왕이 나의 팻감에 만패불청을 하고 따내면 그만인 바로 그 순간.

염라대왕의 손에서 바둑판으로 돌이 놓이려는 바로 그 순간.


그의 가슴에서 살이 타는 냄새와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고, 바둑판 위에 고목처럼 쓰러졌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으악!


저만치서 비서로 보이는 저승사자가 달려왔고, 나는 그를 본 순간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봤다. 아! 전영선 사범.


전사범은 염라대왕의 옷을 벗기고 무엇을 떼어냈다. 양 꼭지에 붙어있는 타버린 전선을...꼭지는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문드러져 있었다.


염라대왕은 신음하며 낮은 목소리로 나에게 중얼거렸다.


"으...사실 실수로 잘못 데려온 사람을 다시 이승으로 보내면 옥황상제로부터 문책을 받는다네...내 그래서 자네에게 장난 좀 쳤지...보내지 않으려고 말이야...으..."


난 알 수 있었다. 그가 왜 한수 둘 때마다 왼쪽 오른쪽으로 몸을 튕기듯 흔들었는지를...

그의 전선을 통해 양 젖꼭지에 센서를 붙이고 저 멀리서 전영선 사범은 대국을 보며 리모콘을 눌러댔으리라.

왼쪽은 가로숫자, 오른쪽은 세로숫자...

몸을 튕겼던 것은 그 숫자를 장단에 맞추어 세기 위한 것이었고 과부하 때문에 전선이 타버린것.

결국 전사범의 田流는 電流가 된 셈이었다.


"으...내가 실수했네..이 바둑은 내가 진 것이니 다시 돌려보내 주겠네...잘 살게나...으... "


저승은 경제만 어려운 게 아니라 정보까지 어두운가 보다.

요즘은 좁쌀만한 리시버가 있어서 귀에다 넣으면 감쪽같은데...

하여간 그 덕분에 살긴 살았지만...


2% 부족한 저승사자의 사과말과 함께 나는 집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그리고 힘차게 방문을 열어젖히는 그 순간 안에서 들리는 소리.


"사모님. 보험료가 일시불로 5억이 나오는데요...."


그때 나는 보고야 말았다. 아내의 그 웃는 얼굴을...


나는 발걸음을 돌려 2% 부족한 저승사자를 쫒아갔다.

이렇게 소리치면서...


"나 다시 돌아갈래~~"


 

2003-08-14 오로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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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생이2 |  2008-01-03 오후 12:07:2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푸하하하.... 처지가 나 하고 똑같네....^^  
斯文亂賊 |  2008-01-03 오후 1:42:2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훔... 양모자 님은 몇 단이실까나... =3=3=3  
홍선비 |  2008-01-03 오후 7:08:4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크흐흐~~역시~`` 그나저나 이제가면 또 언제 보는거ㄴ 감? 보자마자 이별이네유ㅠㅠ  
소라네 |  2008-01-03 오후 9:56:3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마구 마구 웃어제키다가 처가 묻더군요 무슨일이냐고. 역시 음모자님의 필명을 기대이상으로 앞으로도 한방에 기다리게 만들어 버리ㅅ네요  
노을강 |  2008-01-04 오전 8:36:1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ㅋㅋ  
병속의시간 |  2008-01-04 오전 11:08:2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오옷..바카사탕이닷!!  
돌부처쌘돌 |  2008-01-04 오후 2:54:0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선배님께 수줍은 마음으로 나도작가 신고식 올립니다.
많은 가르침 주십시오.
-박민식 배상-  
당근돼지 |  2008-01-05 오전 8:45:4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재미있게 잘 보고 갑니다..........감사 합니다.  
추락한구름 |  2008-01-06 오전 8:14:3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초반 내용은 저승사자 시리즈 원조 논란? 나 다시 돌아 갈래는 압권 푸 하하하 나 다시 돌아 갈래 ~~~행복속으로....  
꾹리가아 |  2008-01-06 오후 3:34:0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믕... 이 글의 숨은 음모

몬가 몰라도 평소 아내에 대한 내면에 엄청 쌓여 있는 불만의 표출

을 감추기 위해 두껍게 포장한 그러한 글 같은 냄새가 은근히 풍기는디?...



음모자님 부부쌈이나 일으키장.

우헷헷헤 #$&))_&*^$ 튀잣!!!!$%  
3쿠션 |  2008-01-07 오전 12:32:0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독립 코너에 계신 줄 미처 몰랐네요.. 인사 늦어서 죄송합니다..ㅠㅠ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선비만석 |  2008-01-07 오전 6:57:0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허걱~~~~~~~~~~~~여보시게 사위 ,이런 가문의 영광이......  
지우천사 |  2008-01-08 오전 8:44:4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하하하 무지 웃긴다  
별天地 |  2008-01-09 오후 11:54:0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멋진 글을 선사하시면서 time machine 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는
사진이 일품이네요 ,,
근데 왜 그 ,, 사이비 저승사자가 와서 엉뚱한 작가님 꼬셔간 담 ~ 헤헤  
선비賢人 |  2008-01-13 오후 11:59:2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흐~~잽있게 잘~봐습니다.  
한솔몽스 |  2008-01-25 오전 10:11:2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맞고 갈래..그냥갈래..ㅋ  
赦路裸勉 |  2008-03-01 오전 10:07:1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간만에 웃어보네여~~~^^  
일월산 |  2008-03-07 오전 10:54:01  [동감1]  이 의견에 한마디

인사 드리고 가나이다.  
고기뀐지 |  2009-04-07 오후 8:50:3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맨 꼴지다. 우시. 몰라갖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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