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에 신동(神童), 열다섯 살에 재사(才士), 스무 살이 넘으면 범인(凡人)”이라는 일본 격언이 있다.

어렸을 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천재가 성인이 되어서는 평범한 사람으로 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주위의 지나친 기대나 관심이 견디기 힘든 하중을 가하기도 하고 뭔가 나날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나 부담을 떨치지 못해 좌절하기도 한다. 때로는 자기 재능만 믿고 자만하다가 나락으로 떨어질 때도 있다.

강한 ‘신동 이미지'는 우화(羽化)하는 데 오히려 족쇄로 작용해 성장을 멈춘 ‘양철북 소년'으로 머물게 하기도 하는데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나 첼리스트 장한나처럼 신동에서 거장으로 성장하기란 쉽지 않다. 각고의 노력과 보살핌이 있어야 하며 연때나 운도 따라야 한다.

10년 동면에서 깨어나는 신동

김지석(金志錫) . ‘다섯 살 바둑신동' 김지석을 기억하시는지.
2007한국바둑리그에서 10승4패(승률 71% 3위, 다승 2위)의 발군의 성적으로 영남일보의 우승을 견인하며 MVP에 뽑힌 김지석 4단이 그 옛날 언론에 대서특필되었던 바로 그 바둑신동이다.

1989년 6월 13일생이니 어느새 열여덟 살, 이마에 좁쌀 같은 여드름이 오돌도돌 돋아나기 시작한 171센티미터 키의 헌헌장부로 자랐다.

2003년 11월 97회 일반인입단대회에서 1등(9승1패)으로 입단할 때가 14세.
조훈현(9세, 62년)이나 이창호(11세, 86년), 이세돌(12세, 95년)의 입단에 비하면 처지는 기록이지만 한국기원 연구생 1조의 실력이 프로 4, 5단과 맞먹고 적체 인원이 넘쳐 연령제한(18세) 안에 입단하기만 해도 다행인 요즘 잣대로 보면 14세 입단은 빠른 편이다.
2000년 이후 입단한 남자기사 가운데 강동윤(2002년)과 박정환(2006년)만이 13세에 입단했을 뿐이다. (참고로 2000년 이후 남자기사 50명의 평균 입단나이는 16세를 웃돌고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일찍이 5세에 신동 소리를 듣던 천재가 14세에 입단했고 다시 4년이 지나서야 이름값을 하기 시작했다면 애초의 기대보다는 늦은 편이다. 

14세에 타이틀을 딴 이창호 9단은 열외로 하자. 이세돌 9단은 12세에 입단해 17세에 국내 타이틀을 차지했고 19세에 세계 타이틀을 땄다. 박영훈 9단은 14세에 입단했지만 16세에 국내 타이틀 맛을 봤고 역시 19세에 세계 타이틀을 허리에 둘렀다. 최철한 9단도 12세에 입단해 18세에 국내 타이틀 보유자가 되었다.

김지석이 입단하던 2003년 11월이면 17세의 송태곤(99년 13세 입단)이 후지쯔배에서 준우승을 하며 눈부신 활약을 할 때다. 김지석 4단의 행보를 더디다고 할 순 없으나 ‘신동 김지석'을 생각한다면 다소 굼떠 보인다. 무슨 곡절이 있었을까.

다섯 살 바둑신동으로 주목을 받던 1995년 무렵의 김지석. 사범님들과 함께. 오규철 9단(맨 왼쪽), 하찬석 9단(가운데), 김정열 원장과 한 컷.

한상열 5단에게도 지도기를 받았다.

조훈현이 탐낸 아이

1995년 11월 27일, 바둑TV 개국기념 프로그램으로 조훈현 9단과 광주에서 올라온 바둑신동 김지석의 4점 지도대국이 벌어졌다. 이날 신동은 승부에서는 6집을 졌으나 바둑황제를 단숨에 매료시켰다.

국후 인터뷰에서 조훈현 9단은 “어린 녀석이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고 있는 듯해서 두고봤더니 호오~, 과연 그렇더라”고 말하며 “이창호 이후 오랜만에 한 놈 발견했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바둑이) 누굴 닮았느냐는 물음에는 “내 쪽이다”며 극찬했다. 이 자리에서 바둑황제는 하루빨리 서울로 데리고 와 본격적으로 수업할 것을 권했다. 

아래 넉 점 기보는 여섯 살짜리 꼬마가 당대의 거목을 상대로 둔 바둑이다. 스튜디오의 휘황한 조명 아래에서 펼친 속기임을 헤아리자. 카메라 앞에서, 게다가 속기는 어른도 얼어붙기 십상이다. 비록 이기지는 못했으나 주눅들지 않고 당당히 싸우는 꼬마의 손맵시가 절로 느껴진다. 조훈현 9단이 이창호 이후 오랜만에 "한놈 발견했다"며 욕심을 낸 이유가 있다.

그 뒤 지석은 초등학교 입학 무렵 서울에 올라와 임선근 9단의 현현연구소에서 바둑을 배우다 2년 뒤 조훈현 9단의 집에서 한번 더 테스트 받을 기회를 얻었고 내제자(內弟子) 얘기가 오가면서 열흘 가량 조9단의 집에서 살게 되었다. 일종의 내제자 체험이었다.
조9단은 바둑TV에서 처음 두어보았을 때에 비해 아이의 “톡톡 튀는 기질”이 누그러져 있는 것에 실망하긴 했으나 “창호와 달리 지석의 바둑은 내 과(科)!”라며 여전히 탐냈다.

하지만 연때가 맞지 않았다. ‘내무부 장관(부인 정미화 씨)'의 재가가 끝내 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조9단은 살던 평창동 집이 너무 낡아 신축을 앞둔 시점이어서 내제자로 받아들이고 싶어도 데리고 있을 곳이 없었다. 정미화 씨의 회고.

“확실히 지석이는 바둑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창호와 다른 과였다. 아래 위층을 뛰어다니며 온 집안을 휩쓰는 장난꾸러기였고 공부보다는 놀기를 더 좋아하는 어린애였다. 창호는 우리 애들과 좀 놀아주라고 하면 마지못해 노는 척 시늉만 하다 슬며시 자기 방으로 들어가 다시 공부를 하곤 했는데 지석이는 컴퓨터 게임에 매달리거나 형 누나들하고 노는 데만 정신을 팔았다. 덕분에 지석이 아빠에게 애는 바둑 둘 애가 아니라며 거절할 좋은 핑계거리를 얻었다”며 웃었다.

진짜 속사정은 조九단의 자녀 문제 때문이었다. 당시 입시를 줄줄이 앞둔 고2, 고3 연년생에 사춘기에 접어든 애들의 의사와 환경을 묵살할 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연로한 시어머니를 모시는 형편이기도 했다. 

김지석의 재능이 드러난 포석 한 장면을 골랐다.
<장면1> 흑1 이하 백12까지는 백□가  보통 가의 화점에 있을 때 많이 등장하는 정석이다. 여기서 초점은 좌하귀 백△가 3-三이라는 것. 이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매우 평범해 보이는 포석 진행이지만 조훈현 9단은 “흑의 안목이 매우 높다”고 말한다. 시야가 넓다는 얘기다.

따먹기 대마왕

김지석은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아버지 김호성(49) 씨가 전남대학교 교수로 가면서 광주 아이로 자랐다. 두 살 많은 형 우석을 따라 어깨너머로 글자 공부며 구구단을 배우다가 바둑학원도 함께 다니게 되었는데 처음엔 너무 어리다고 받아주지 않으려 했다. 그때가 다섯 살.

세종바둑학원 김정열 원장(현 서울 골든벨바둑학원장)은 우리말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나이라 바로 바둑을 가르치지 못하고 ‘자세상' 같은 걸로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사범의 말을 어찌나 하늘 같이 여기던지 “꼼짝 말고 사활문제를 풀라”고 하면 화장실이 바로 옆에 있는 데도 앉은 채 오줌을 싼 적이 있을 정도로 바둑을 대하는 태도는 으뜸상 감이었다.

8급 시절에는 아마5단 사범에게 지도기를 받는데 한 장면에서 무려 1시간 40분을 꼼짝 않고 장고하는 승부 근성을 보인 적도 있었다.

김정열 원장이 전하는 지석 아버지의 선택도 재미있다. 형제의 바둑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자 “두 형제 다 바둑을 시킬 순 없고 그렇다고 똑같은 자식인데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 난감하니 바둑을 둬 지는 쪽을 포기하겠다”고 제안하는 바람에 때아닌 바둑운명을 건 형제대결이 벌어졌다. 여기서 지석은 엄청 많이 진 바둑을 던지지 않고 끝까지 물고 늘어져 바둑의 끈을 계속 쥘 수 있었다. 

지석은 1년 만에 1급으로 올라섰다. 바둑을 배운 지 7~8개월이 되도록 정석이라고는 화점 붙여뻗기 하나만 가르쳐주었는데도 유독 잡아먹는 걸 좋아하던 꼬마는 지역대회 유치원부문에 나가 덜컥 사고(우승)를 쳐버렸다.

바둑은 수읽기 싸움이라고 생각하는 원장은 사활을 집중적으로 공부시켰고 심봉사 어린 딸 젖동냥 다니듯 기원을 전전하며 실전경험을 쌓아주었다. 학원에서 지석의 별명은 ‘따먹기 대마왕' ‘걸어다니는 현현기경'이었다. 수읽기가 강하고 전투적인 기풍은 이때부터 형성되었다.

입단했을 때의 귀여운 모습.

서울로 올라갈 때까지 김정열 원장에게 배우던 지석은 오규철 9단에게도 10개월가량 집중조련을 받았다. 오규철 9단은 “속도나 기재를 타고났다. 수를 아주 빨리 보고 사활 묘수가 밝다”며 한마디로 “굉장하다”고 평했다.

그러나 서울에 올라온 뒤로는 스승 임선근 9단이 ‘참 안 는다'고 한탄할 정도로 지체를 보였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연구생이 되긴 하였으나 서울에서 2년 넘게 있는 동안 지석의 바둑은 연구생 8~9조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수준에 그쳤다. 자연 신동에 대한 관심도 사그라졌다.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걸까. 

상처 입은 조개가 진주를 품는다

현현연구소에서의 수업은 주로 연구생 형들이랑 바둑을 두는 형식이었다. 그 시절을 김지석 은 이렇게 떠올린다.

“처음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중간은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 바둑이 별로 재미없었고 노는 게 더 좋았다. 너무 어렸을 적부터 바둑을 해서인지 다른 친구들과 뛰놀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 김호성 씨의 증언은 좀 심각했다. 어린 나이에 보내서인지 환경에 적응을 못하고  일종의 왕따를 당한 것 같다는 얘기였다. 아이가 고집도 세고 말귀도 잘 못 알아듣는 나이다보니 선배들에게 고분고분했을 리 없었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화장실에 집어넣고 불을 꺼버리는 이지메도 당했던가 보다. 겁이 많은 애가 밀폐된 공간에서 1시간 이상 눈물범벅이 된 경험은 악몽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어느 학원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지만 문제는 지석의 나이가 너무 어렸다. 여섯 살 때 형 조상연 6단을 따라 일본에 건너간 조치훈 9단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조치훈도 놀기만 좋아하는 장난꾸러기였고 사형들에게 이불을 덮어씌우는 멍석말이 이지메를 당한 뒤로는 성인이 될 때까지 전등을 끄고 잠을 자지 못했다.

그렇지만 지석은 어린 마음에도 자기 뒷바라지를 위해 가족이 광주와 서울에서 두 집 살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바둑이 싫었어도 그만두겠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중간에 그만 두고 싶은 적도 많았지만 주위의 기대가 워낙 커 속마음조차 표현할 수 없었다.  결국 연구생  9조로 내려앉던 초등 3학년 때 광주로 내려갔다. 내려가선 한달 만에 10조로 또 주저앉았다. 안타깝게 바라보던 아버지는 10조에서도 탈락하면 바둑을 접자고 아이와 다짐했다.

어린 아이 입에서 죽고 싶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신이 지친 상태였다. 조훈현 9단이 다시 지석을 테스트해본 뒤 의아해했던 원인이 이것이었다.

지석은 처음 바둑을 배웠던 광주의 바둑학원을 다시 찾았다. 또래가 많아서인지 그곳은 그냥 마음이 편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광주와 서울을 오가며 연구생 리그에 참여했고 4~5조까지 치고 올라가자 다시 보따리를 싸들고 상경해 권갑용바둑도장에 들어갔다. 그리고 3년 만에 입단했다.

한국바둑 유망주의 산실, 권갑용바둑도장. 김지석은 일찍이 신동 소리를 들었으나 의외의 표류로 한때 바둑을 접을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주위의 기대만큼 입단 시기는 빠르지 않았으나 마지막 권갑용바둑도장에 안착하면서 3년 만에 입단, 걱정했던 것보다 입단 관문 자체는 수월히 통과했다.

                      
스승 권갑용 7단의 처방은 어린 천재가 마음의 상처를 입은 채 방향을 잃고 표류한 정도가 어떠하였는지 여실히 느끼게 한다.

"지석이가 어린 나이에 매스컴을 타고 신동으로 뜨다보니 또래 경쟁자 집단에서는 오히려 여기저기 미움받는 형이었다. 내게 왔을 땐 바둑이 병이 들어 완전 망가져 있었다. 기초부터 다시 쌓아야 했고 특별관리가 필요했다. 당시 우리 도장에서 뜨는 애라면 동갑내기 강동윤이 있었고 선배로는 이영구, 백홍석, 진시영이 있었다. 윤준상도 실력이 늘어 마귀 수준이었다. 지석이가 신동으로 소문이 자자할 때 동윤이나 준상이는 거의 무명이었으니 지석이네가 몸이 달았을 것이다.

무조건 바둑만 두게 하는 건 아니다 싶었고 실전 위주보다는 기초 체계를 다잡는 것이 급선무라 진단했다. 애들이 대회서 성적 낸다고 다는 아니다. 지방서 천재다 신동이다 하다가 기초를 다져야 할 시기에 제대로 다지지 않고 겉멋에만 치우쳐 소리 없이 죽어가는 천재가 적지 않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세돌이처럼 스타일에 타격을 주면 상처 받아 개성과 색깔을 잃는 타입이 있고 묵묵히 지켜보며 잘한다 잘한다 해줘야 더 잘하는 타입이 있는데 지석이는 카리스마로 다룰 타입이었다.

계산이 굉장히 빨랐고 상상력이 뛰어났다. 제시하는 대로 따라오며 놀라운 소화력을 보여 놀랐다. 잠재력과 폭발적인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기에 당시에는 일부러 대회에 안 내보냈다. 지석이는 정통파다. 바둑 구질이 굉장히 좋고 털끝만한 것을 물고 늘어져 (공격으로) 바둑을 압도하는 능력이 있다.

모르긴 몰라도 수읽기에 관한 한 현존 기사 중 다섯 손가락에 꼽을 만하다. 우리 도장에서 낸 [귀수마수]란 고난이도의 사활집이 있는데 중국의 구리와 최철한이 55%, 이세돌이 65%쯤 정답률을 보인데 비해 지석은 그 이상을 풀어냈다. 가장 셌다.

솔직히 공부량이나 파고드는 정열 면에서 원생 때 공부가 끝이라 할 만큼 프로가 되고 나서는 그때만큼 파기 힘든 게 사실이다.  내가 보기엔 지석이나 박정환의 공부량은 대단했다. 둘은 아마 미래의 라이벌이 될 것이다. 바둑계는 지석이 같은 애가 커야 이창호처럼 또 얘기가 될 것이다."

한국리그를 발판으로

입단 뒤에도 지석의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입단 1년차가 가장 겁도 없고 물이 오를 때라 윤준상이나 한상훈처럼 ‘初단 돌풍'을 심심찮게 일으키곤 하는데 정작 바둑신동으로 주목을 받던 김지석은 잠잠했다.

2004년 20승 14패. 2005년 35승 21패. 이때까지 10회 삼성화재배 본선에 진출한 것이 가장 눈에 띄는 성과였고 이마저 본선 1회전에서 경험 부족으로 요다 노리모토 9단에게 졌다. 하지만 떡잎이 시들지 않은 것을 보인 것은 성과였다.

2006년에 접어들어서야 44승 26패를 기록하며 점차 시동을 거는 모습을 보였다. 무엇보다 디딤돌이 되어준 기전은 한국리그였다. 예선 2회전에서 서건우 4단에게 져 탈락했으나 제일화재에서 발전성을 믿고 와일드카드로 지명했고 본선에서 8승 7패로 제몫을 했다. 김승준 9단은 이 점을 눈여겨봤다.

“기사에게는 바둑인생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성장 계기가 있다. 2006년 초만 해도 랭킹 22위 안에 들지 못해 예선 경쟁을 벌여야 했던 지석이었다. 하지만 와일드카드로 나가 큰 승부를 몇번 치르고 나더니 하반기에는 이미 바둑의 내용이 달라져 있었다.

그 전에는 재주는 인정했지만 성적이 별로여서 그리 주목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작년 한국바둑리그를 계기로 자신감을 얻으면서 2007년에는 랭킹 20위 안에 거뜬히 든 것은 물론 강원랜드배 명인전에서는 막판 뒷심이 달려 챔피언 결정전 진출에 실패하기는 했으나 줄곧 선두를 달리는 활약을 보였다. 본인의 장점을 유지하면서 다른 것도 보완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와 닿을 정도로 성장하는 게 눈에 보인다. 아직 이세돌 최철한 같은 포스는 약하나 성장 단계에 있는 기사이니까 점점 달라질 것이다.”   

한국리그는 '잠룡' 김지석이 비로소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기 시작한 기전이었다. 2007한국바둑리그에서는 MVP에 선정되었다.

김지석을 이야기할 때면 바늘과 실의 관계처럼 뱀띠 동갑내기 강동윤 7단이 거론된다. 1년 6개월 먼저 입단한 강동윤은 김지석과 더불어 차세대 주자로 늘 꼽히는 기사이면서 동시에 송아지띠 동갑내기인 박영훈-최철한의 관계에 빗대곤 한다. 박영훈이 발빠른 아웃복서라면 최철한은 두터운 인파이터로 대비된다. 강동윤이 상당한 실리파인데 비해 김지석은 치열한 싸움바둑이다. 김승준 9단은 이 둘을 어떻게 볼까.

“저마다 관점이 다르겠으나 나는 김지석의 잠재성장력을 더 높게 본다. 이세돌의 바둑에서 보다시피 요즘 바둑은 수비형보다는 전투형이 정상으로 가는 데 더 이점이 있다는 생각이다.”

 싸움바둑이 이점이 있다는 걸까. 김명완 7단의 소매를 잡고 쉽게 설명해 달라고 졸랐다.

“글쎄~,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겠으나 포커 홀덤을 쳐도 낮은 레벨에서는 지키는 스타일이 승률이 좋다. 그러나 상위 레벨로 가면 엄청 지르고 ‘뻥카'를 치는 스타일이 결국은 딴다. 바둑도 이제 모양을 잡는다거나 지키는 건 누구나 다 잘 한다. 끝내기도 다 수준급이다. 각 부분에 대한 연구가 웬만큼 이루어졌다는 얘기다. 세돌이나 철한이의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런 상태에서는 초장부터 치열하게 싸우는 쪽이 뭔가를 남기거나 얻을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김지석은 어떻게 볼까.
“예전에는 포석도 밋밋했던 거 같은데 요즘은 덤 탓인지 밋밋하게 두어서는 이기기 쉽지 않다.”

끝내기 수준도 다 발군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기다리는 바둑'의 약효가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