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훈의 끝내기, 즉 종반은 어떠한가? 요즘 신예 세계에서는 끝내기가 약해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박정상 9단도 한상훈의 바둑은 후반에 강점이 있다고 말한다.
“전체적으로 탄탄한 바둑이다. 기본기가 탄탄하기에 잘 무너지지 않고 후반의 집중력이 뛰어나다.”

반집의 가치를 따지는 시대, 계산의 정밀성이 날로 요구되고 있는 현대바둑에서는 끝내기가 약하면 결코 정상에 올라설 수 없다. 이번에는 한상훈의 끝내기 실력을 볼 차례다.

반집을 다투는 미세한 국면. 그러나 한상훈의 형세판단 더듬이는 자신의 반집 패배를 정확히 짚고 있었다. 이 바둑은 반집이 명암을 갈랐다. 따라서 이 바둑의 초점은  흑‘가'를 언제 선수하느냐. 이전부터 흑은 언제라도 선수할 수 있는 자리였고 수없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이는 결과론이요 대국 중에 이같은 ‘반집 계산서'를 뽑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시 아무도 감지하지 못했고 오직 한상훈만이 읽고 있었다는 사실이 대단하다. 마 샤오춘이 ‘가'의 선수를 소홀히 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백1, 3의 버팀. 이 패의 저항에 마 샤오춘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고 한상훈은 까마득한 낭떠러지에서 극적으로 반집을 끌어올렸다. 백1, 3의 반패(집으로는 한집)로 버텨 승부를 뒤집은 장면은 한상훈의 자로 잰 듯한 끝내기 실력을 여실히 보이고 있다.

마 샤오춘 9단은 개막식에서 본선1회전 상대로 한상훈이 자신을 지명하자 "내 상대의 이름이 뭐냐?"며 익살을 부렸다. 은연중 햇병아리에 지나지 않음을 상기시킨 것이다.

그는 석 달 전(2007년 6월) 중국 최강 구리 9단이 12회 LG배 16강전에서  한상훈과 대결하게 되자 쉽게 이긴다고 장담했다가 중국팬들에게 빈축을 산 일도 있다. 자기를 이긴 한상훈이 16강전에서 이창호 9단까지 꺾자 “이창호에게 미안하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한상훈의 실력이 예사롭지 않다고는 여겼어도 아마 이때까지도 마 샤오춘은 세계대회 결승에까지 오를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도쿄에서 벌어진 12회 LG배에서 결승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키자 “뭐 저런 초단이 다 있냐”며 ‘괴물 초단' 탄생에 경악했다.

인터뷰 때 한상훈에게 마 샤오춘 전의 감회를 물어보았더니 “사실 마음에 든 판이 아니었다. 곤마 없이 단단하게 둔 바둑이기는 하나 솔직히 운이 좋아 이긴 바둑이었다. 바둑이 안 좋아서 끌려다닌 느낌이 들었고 불만이었다.”고 말했다.

대전 유성연수원에서 벌어진 12회 삼성화재배 개막식에서 마 샤오춘 9단을 1회전 상대로 지명한 한상훈 초단이 설전을 주고받고 있다.

백번에 강한 '장기전 스타일'

일단 맷집(지구력), 계산(종반 끝내기)은 좋단다. 그렇다면 전투력, 이른 바 펀치력은 어떨까? 요즘 신예들이 다 그렇듯 힘이 좋고 수읽기가 깊으며 전투를 마다 않는다. 한상훈 자신은 자기의 기풍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연구생 때는 전투형이라 생각했는데 입단 후는 상대방이 싸움을 걸어오면 기세상 피하진 않지만 내가 먼저 도발하기보다는 일단은 받아주고 참고 있다가 후반에 틈을 노리는 힘바둑으로 바뀌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요즘의 윤준상 국수와 비슷한 기풍이다. 그러나 스승 김원 7단은 한상훈은 전투를 즐길지는 몰라도 전투바둑이 아니라고 평한다. 그 이유로 흑을 들었을 때의 바둑과 백을 들었을 때의 현저한 차이를 예로 든다.

우선 한상훈 바둑을 잘 살펴보면 두텁게 두려고 노력하는데 백을 잡고 두텁게 두려는 게 독특하다는 것이다. 백 바둑을 선호하며 또 승률도 좋다. 특히 관심을 끌었던 중요한 대국은 대부분 백으로 이긴 판이었다.

삼성화재배에서의 마 샤오춘, 이창호도 그렇고 LG배의 류시훈, 구리, 류징(8강전)과 온소진 판(4강전)…. 박영훈과의 왕위전 4강전도 다 백번이었다. 반대로 흑을 쥐었던 윤준상과의 왕위전 도전자결정전을 보면 데굴데굴 굴렀다.

스승(김원 7단)의 제자 바둑에 대한 진맥은 예리하다.

“상훈이가 흑과 백을 들었을 때 기복을 보이는 것은 이제 기풍이 조금씩 생성되는 단계인 탓이 크겠지만 이는 덤에 대한 부담을 그만큼 느끼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자기 스타일이 아직 정립되어 있지 않으니까 덤을 내야하는 흑 바둑에서는 심적 부담으로 조금 서두른다고 해야 하나….

전투바둑이라면 선착의 효를 살릴 수 있는 흑을 선호해야 자연스럽다. 그러나 상훈이는 백으로 자기 스타일로 상대를 끌어들여 싸우려고 한다. 그래서 전투바둑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파이터한테 더 강한 면을 보이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기전이 속기냐 장고바둑이냐에 따라 성적표를 달리 보이고 있는 것도 한 증거가 될 것이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수읽기를 할 시간이 충분치 않은 속기전에서는 전투가 강한 쪽이 유리하다. 상훈이는 아직 속기보다는 제한시간이 긴 바둑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한상훈은 백번(白番) 성적이 좋은 것은 한마디로 (특히) 포석이 약한 탓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마음에 들게 포석을 짠 판이 한 판도 없었다. 초반 판을 짜는 능력이 떨어지니 덤을 내야하는 흑보다는 상대적으로 덤을 받기 때문에 기다릴 여유가 있는 백 바둑이 편하다. 실력이 없어서 기다리는 것이고 자신만 있다면 당연히 초반부터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판을 주도 할 것이다. (웃음)”

한상훈은 지난해 3월 왕위전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두어 달 동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욱일승천하던 한상훈에게 선배로서 호된 신고식을 치르게 한 호랑이가 국수 윤준상이다.

왕위전에서 파죽의 7연승을 거두며 맞이한 도전자결정전. 그러나 이 바둑은 포석에서부터 한상훈의 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일국이었다. 흑번이었다. 서봉수 이후 35년 만에 초단 도전자가 탄생하느냐 마느냐로 장안을 떠들썩하게 한 한 판이었으나 소문난 잔치 먹을 게 없었다. 한상훈 자신조차 “조금 더 신중하게 두지 못한 점”을 크게 후회한 가장 아쉬워한 한 판이었다.

첫수부터 64수까지 한수씩 수순을 따라가 보자(바둑판 아래 백키 버튼을 눌러 처음부터 놓아보시길).  

백8의 협공에 한상훈은 무심코 흑9로 요도정석을 택했는데 이것이 백38의 축머리 활용을 크게 생각지 않은 실책이었다.
이 축머리가 강력한 이유는 백52까지 교환한 뒤 흑53을 손 뺄 수 없다는 거. 이곳을 당하면 단 한수로 귀가 제압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 여파로 백64까지, 좌상귀 흑5 한 점이 고립무원에 빠지고 말았다.

한상훈은 아직 포석-특히 흑번 포석이 약하다고 했다. 약한 게 아니라 포석은 본시 어렵다. 망망대해에서 좌표를 잡아나간다는 게 어디 보통 일이랴. 그러나 한상훈의 백번 포석은 얼개가 만만치 않다. 중국의 랭킹1위 구리 9단 전에서 보여준 포석 단계에서의 감각과 수읽기의 깊이는 한상훈의 내공의 깊이다.

흑17의 보디체크는 임기응변이다. 백도 20 이하 26으로 우지끈 끊었다. 이제부터는 기세와 기세의 대결, 수읽기의 정면대결이다. 한상훈이 원하는 바다.

“최정상급 외국기사와 겨뤄봤으면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는데 그 기회가 빨리 왔다. 사실 16강전 상대로 왕시 9단이나 씨에허 6단 같은 침착한 기풍보다는 정면대결형의 구리 9단이 상대적으로 편하다고 생각했다.”

왕루난 중국단장은 “구리가 한국의 초단에게 져 많이 놀랐다. 한상훈은 평범한 기사가 아니며 그의 실력도 초단이 아니다.”며 혀를 내둘렀다.

내친김에 한상훈의 수읽기의 힘을 보여주는 장면 하나 더 보자. 버티는 힘이 강하다는 것은 그만큼 형세를 맞추는 균형과 수읽기가 강하다는 얘기 아니겠는가.

흑3 때 백이 받지 않고 4로 젖혔다. 생각 같아서는 흑14로 푹 빠지고 싶지만 백‘가'로 잡히면 이 바꿔치기는 벌어들인 실리에 비해 백의 두터움도 만만치 않아 결행하기 쉽지 않다. 해서 박영훈은 흑5 이하로 참았고 13까지 백△들의 퇴로를 막았다. 백 석 점은 요석이고 실리도 커 이것으로 잡았다면 흑의 성공이다.

그런데 숨이 다 넘어간 듯 보이던 백 석 점이 22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좁은 공간에서 말이다. “뭐야, 그걸 움직여?” 검토실에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신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LG배가 남았다!

한상훈이 안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점은 속기다. 2007한국리그에서 일약 대방 노블랜드의 2지명으로 발탁되었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한상훈은 총 8승 7패를 했고 대방노블랜드는 꼴찌를 했다.) 스승의 지적대로 속기가 아직은 약하다는 얘기다. 깊은 수읽기의 힘을 갖췄으나 빨리 읽는 능력은 아직 부족하다는 증거다. 한상훈이 성적을 낸 기전은 다 제한시간이 긴 바둑이었다. 

강동윤을 비롯해 요즘 잘 나가는 신예강자들은 속기에 유독 강한 면을 보인다. 프로기전의 속기전 추세 덕에 빨리 뜰 수 있었고 득을 보고 있으나 한편 속기에 맞춰진 스타일은 신예들로 하여금 승부 호흡이 긴 바둑에서 맥을 못추게 만들고 있다.

그런 면에서 한상훈은 요즘 신예 같지 않은 특이체질(?)을 지녔고 분명 고무적이기는 한데 또 한편 속기에 약하다는 것은 날로 속기전화하고 있는 현대바둑에서 반드시 보강해야할 약점이다.

2007년 바둑대상 신인기사상은 만장일치로 최고의 루키, 한상훈에게 돌아갔다.

데뷔 첫해에 각종 ‘초단 기록'을 세우며 대형루키로 자리한 한상훈에게 2007 바둑대상 신예기사상이 주어진 건 당연하다. 프로기전 데뷔 첫해에 최우수기사상(MVP) 후보에까지 당당히 이름이 올랐다. 하지만 승부세계는 넓고 승부인생은 길다. 이 점, 제자에게 주는 스승의 충고와 조언은 죽비소리처럼 또렷하다. 한상훈 초단이 평생 놓지 말아야할 화두(話頭)다.

“아직은 약하다. 상훈이는 갓 입단한 신인이다. 그렇다 보니 상대가 더 부담을 안고  들어간 면도 분명 덕을 보았을 것이다. 운이 따른 면도 있다. 그러나 일류 강자들과 여러번 싸웠다는 건 다른 신예들이 누릴 수 없었던 큰 자산이다. 강자들과 자꾸 대국하면 한 단계 더 눈을 뜨지 않을까. 이것이 작년만큼의 성적은 내지 못하더라도 상훈이의 미래를 낙관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제 고작 1년 했을 뿐이다. 아직 멀었다. 절대 초심을 잃지 마라. 환경변화에 좌우되지 마라. 길게 보면 기술적인 거보다는 정신적인 면이 더 중요하다.”

2월 25일 12회 LG배 세계기왕전 결승3번기가 여의도 쌍둥이빌딩(LG트윈타워)에서 벌어진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이세돌 9단의 우승을 점치지만 승부세계의 앞길은 언제나 짙은 안개 속이다. 지금까지 한상훈이 구리, 박영훈, 이창호 들을 만날 때마다 단 한번도 한상훈의 승리를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이번에도 한상훈의 패배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사람 있을까. 그 전망에 목을 걸 배짱 두둑한 사람 있다면 나와 보시라. (한상훈 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