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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 6회/ 첫날밤을 위하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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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 6회/ 첫날밤을 위하여 (1)
2009-08-10     프린트스크랩
▲ 서수형토기
 

 


“태후마마, 신이 중원을 떠나 신라에 온 이후 크고 작은 일을 날개처럼 보호해 주시니 그 은혜를 한시도 잊은 적이 없나이다.”

 

“오호호호, 양시의. 도움 받는 쪽은 오히려 접니다. 대왕의 몸을 감찰하는 건 작은 일이 아니지요. 그처럼 큰일을 하시는 데 나의 힘이 대수겠습니까. 그런 말씀은 한담(閑談)으로 여기겠습니다. 이 나라 조정에서 양시의의 노력만큼 큰 일이 어딨습니까. 내 적당한 기회에 보답하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내가 양시의에게  부탁한 일은 어찌됐습니까?”

 

“신이 태후마마의 성지를 받들어 향섭랑(響屧廊) 복도를 만든 것은 대왕마마의 잠자리 시중에 필요한 여인을 가려뽑기 위함이오나 소인의 눈을 현혹시키는 여인은 없었나이다.”

 

세상에 알려지기로 향섭랑은 ‘소리가 나는 복도’다. 대왕의 잠자리 시중에 들 처녀로 어느 누가 적당한지를 가려뽑는 시험대였다. 양시의가 신라에 와 ‘소리가 나는 복도’를 만든 것은 진흥왕의 몸에 가장 합당한 여인을 고르기 위함이었다.

 

약사(藥師)들은 ‘관형찰색(觀形察索)’의 방법을 쓴다. 눈으로 보고, 모양을 살피며, 관찰하고, 찾아나섬으로써 여인의 장단점을 파악한다. 이것이 신라 왕실에서 즐겨 쓰는 ‘좋은 여자(好女) 찾기’의 기본이었다. 그러나 양시의의 경우는 달랐다. 그는 눈이나 손놀림으로 상대를 가름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귀를 사용했다. 이른바 ‘이청술(耳聽術)’이다.

 

태후전(太后殿) 안쪽에 서른 자(尺) 남짓의 복도가 있는데 이곳의 아랫부분을 2자 반을 파고 높낮이가 각기 다른 항아리(壺)를 묻고 위에 널빤지를 덮었다. 나막신과 비슷한 나무 신(木鞋)을 신고 그 위를 걸으면 또각또각 울리는 분위기 있는 소리가 사내의 성감을 충동시킨다는 것이다.

 

그 점에 대해 지소태후도 체험했었다. 양시의가 궁에 들어와 그 같은 복도를 만든다고 했을 때 마음 한켠엔 냉소적이었다. 복도 반대 쪽에 호자(虎子)를 놓고 불빛을 흐릿하게 낮춘 채 걸어오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자신도 모르게 성욕이 크게 일어난 것이다. 지소태후와는 달리 전후 사정을 모르는 세종의 표정은 긴장한 빛이 역력했다. 그의 눈과 귀는 양시의의 다음 얘기를 쫓고 있었다.

 

“태후마마께서 향섭랑에 그 아일 보낸 것은  용도가 어느 만큼인지를 알고 싶은 것이라 보옵니다만.”

 

“그렇소.”

 

“중원에서는 <삼봉단결(三峯丹訣)>을 위시해 동파(東派)의 수련서 <방호외사(方壺外史)>에 기준해 평점을 먹입니다. 가장 쓸만한 아이를 ‘상(上)의 상(上)’이라 합니다만 그런 아이는 쉽게 나타나는 건 아니지요. 한데, 그 아이는 이러한 기준을 넘어섰다고 볼 수 있습니다.”

 

“넘어섰다?”

 

“신체의 구조가 일반인과 상당히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중원의 오래된 기록처럼 ‘신월(新月)’의 모양새였습니다. 흔히 말하는 초승달이라고나 할까요. 그 길이가 삼촌(三寸)에 불과하나 이것은 훈련으로 이뤄진 것이지 자연적이라곤 볼 수가 없었나이다.”

 

“허면?”

 

태후가 곱씹듯 호흡을 삼키며 되물었으나 양시의의 답변은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주위를 느릿하게 살피던 태후의 손놀림이 허공에 사래를 쳤다. 세종에게 밖에 나가 있으라는 무언의 암시였다. 눈치 빠른 세종이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가 굳은 낯으로 나가는 사이 태후의 눈길이 양시의에게 달렸다. 앞에 놓인 서안(書案) 위를 오른 손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계속해도 좋다는 표시다.

 

“태후마마, 중원의 황제들이 가장 눈독을 들이는 게 양지옥(羊脂玉) 같은 피붑니다. 이런 피부는 있는 듯 없는 듯 탄력이 살아있고 하얀 피부 속에 은밀한 것을 감춘 것으로 생각될 만큼 하얗습니다. 대체로 사내들의 욕정을 자극하는 물건이지요. 사내가 그런 피부를 지닌 여인을 만나면 그 속에 빠지고 싶은 알 수 없는 힘을 느낍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가까이 하고 싶은 게 발이 작은 여인입니다.”

 

중국의 방중술은 거의 구전(口傳)으로 내려오다 수(隋)나라 때부터 집대성됐다. 거기에 중국인들이 전통적으로 발이 작은 여인을 좋아하는 이유가 생겨났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기록 때문이다.

 

<여인의 음호(陰戶)를 옥문 또는 옥호라 부르는 것은 그 출입문이 괄약근이기 때문이다. 대게 명기(名器)라고 부르는 여인들은 한결같이 괄약근의 수축력이 강하다.>

 

이런 이유로 송(宋)나라 때 전족(纏足)이란 괴이한 풍습이 생겨났다. 괄약근의 수축력은 발이 작은 여인일수록 강하다. 비연(飛燕)은 발이 작은 여인이었는데 그녀가 춤을 추면 허리와 배에 힘이 들어가 자궁의 수축력이 강해진다. 게다가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면 호흡을 길게 하거나 짧게 조정할 수가 있어 여인이 속집을 오무리는 힘이 강하다.

 

이런 이유로 오도인(悟道人)은 <성사십이품(性史十二品)>에서 속칭 문어발이라 칭하는 용주(龍珠)를 제일로 쳤다. 발이 작은 여인은 걸음을 부보(鳧步)라 하여 오리처럼 뒤똥거린다. 그것은 상체와 허리, 그리고 하체로 구조가 나뉘었기 때문인데 자연스럽게 ‘오리 걸음’이 생겨난 것이지만 탐욕스런 중원 사내들은 이 점을 거의 놓치지 않는다. 한동안 양시의의 말을 듣던 태후는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양시의의 주장은 뭔가? 그 계집을 가까이 두라는 건가, 멀리 하라는 건가?”

 

“바른 길을 간다면야 신라를 위해 더없이 다행한 일이나, 허튼 마음이라도 먹는 날엔 나라가 흔들리고 성이 무너지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오니, 당장 그 계집을 없애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흐음,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 청조 그 아이가 이연년의 누이와 같다는 말이지?”




▸호자(虎子) ; 다리가 네 개인 의자.

▸부보(鳧步) ; 걸음을 걸을 때 뒤똥거리는 오리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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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돼지 |  2009-08-10 오전 4:49:3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잘 보고 갑니다.........감사 합니다.  
여현 |  2009-08-10 오후 2:18:0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점점 미앙(未央)의 세계로 한발 한발 다가가는군요.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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