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려의 유배생활은 곤궁하기 그지 없었다. 가세가 기운 탓에 변변한 도움 없이 유배지에서 자급자족을 해야 할 형편에 관의 핍박까지 겹쳐 몰골이 짐승의 삶이나 한가지였다.

"이 사람을 꼭 찾아보시오."

김려는 영평에서 헤어진 박제가를 떠올렸다. 박제가가 부령에 도착하면 꼭 만나보라며 신신당부(?)를 하던 사람이 양천봉이었다. 박제가는 북학의를 쓴 사람이다. 박제가는 정조2년에 중국을 다녀와 북학의를 썼다.그때 나이가 28세였다. 박제가는 북학의를 50 살이 넘은  영평현감 시절에야 겨우  정조에게 보이게 된다. 참으로 한 인재가 세상에 알려지는 과정의 어려움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양천봉은 부령일대에서 양기위로 통했다. '기위'는 오군영의 하급 무임을 말한다. 무임(武任)이란 말은 장교를 이르는 말이다. 북관은 조선의 중요 군사적 요충지에 설치된 군대인만큼 정연한 군사 체계가 있었다. 조선군은 '군영'을 한 부대로 하는 편제를 취하고 있었다. 부대장은 '대장'과 동급서열로 사상통제와 감사역을 맡은 문반인 '병방'의 공동지휘 아래 군사의 실무는 '중군'이 맡는 체계였다.

*중군(中軍) : 오늘날 사단장.
*비장(裨將) : 참모장.

*장관(將官) : 별장, 천총, 파총(把總), 백총(百總) - 영관장교.

*군관(軍官) : 행수장교, 당무장교, 기고관(旗鼓官), 병방장교, 별군장, 별기위군관(別驥衛軍官), 별무사군관, 토포관(討捕官), 도장(都將) - 위관장교.

*군정(軍丁) : 일반 사병.

이 군사 편제는 조선군의 대표적 편제로 장관급 이상을 무관(武官), 장관급 이하 장교를 무임(武任)으로 부르는 것이 실제적 모습이다.

군관들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조선군은 기마, 궁수, 조총, 전차, 헌병, 의무, 수의, 군악, 종군(宗軍), 보급 등의 체계가 조직적으로 갖추어졌음을 알 수 있다.

무슨 수의관이 있었나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조선군은 기마를 전력의 핵심으로 알았다. 말의 건강 상태와 부상의 치료는 중차대한 과제였고 그 속에서 수의학이 발전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제마도 수의관 출신이다.

양천봉은 '1영 5사 25초'로 구성된 장용영의 하급장교로 부대의 검술조련관이었다. 영(營)은 대략 4천 명으로 구성된다. 장용영은 당대의 가장 강력한 부대였다. 편제와 지원체계는 물론 병사 개인 개인의 실력이 조선군 중 제일이었다. 장용영의 병사들은 누구나 원기(元伎)라고 부르는 화포, 조총, 활쏘기와 별기(別伎)라 부르는 창검무예를 익혀야 했다. 이들 무예는 무예도보통지라는 교범을 통해 철저하게 훈련시켰다.

무예도보통지는 한문을 모르는 병사들을 위해 한글본까지 출판될 정도였다. 양천봉은 이 장용영 안에서 박제가 백동수 등을 도우면서 인연을 맺었다. 양천봉은 영내에서 검술의 달인 백동수와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양천봉은 천출의 신분과 북관인이라는 지역적 차별을 극복하지 못하고 한양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 건달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파락호였다. 능력의 소유자가 그 능력을 펼치지 못할 때 오히려 공동체의 큰 부담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장길산이나 홍경래 등이 그것이다.

양천봉이 함경도일대의 가장 유망한 건달이자 파락호로 이름을 날린 것은 '회령' 시장에서 발생했던 청나라 상인들의 수행원 백여 명을 때려눕힌 사건이었다. 일대 백의 싸움에서 양천봉은 승리자였다. 사건의 전모는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