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산과 지옥심은 윤필수가 운영하던 '운심방' 앞에서 형사들을 만났다. 형사들은 여러 명이었다. 그들은 열쇠가게 주인을 불러 운심방의 문을 따고 들어가 이것저것을 살폈고 안경을 쓴 사십대 형사가 두 사람을 가까운 커피숍으로 대동하고 가 신원파악에 나섰다.

"두 분 다 대학 강사시군요? 자 이건 넣으시고요. 나는 박형사라 합니다."

자신을 인천 동부경찰서 박형사라 소개한 형사가 수첩에 두 사람의 신분증에서 인적 사항을 옮겨 적고는 신분증을 돌려 주며 말했다.

"윤선생이 왜 죽었죠?"

지옥심이 아직도 현실이 실감이 나지 않는 듯 물었다.

"글쎄요? 왜 죽었을까요?"

박형사가 지옥심을 아래위로 쏘아보며 물었다.

"네에?"

"우리도 그게 궁금합니다. 지선생이 윤필수와 마지막 통화자신데요?"

"... ...?"

지옥심이 박형사의 쏘아보는 눈빛에 얼어붙어 있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한손으로 진정시키는 모습이 역력했다.

"저희 경찰은 윤필수가 살해된 것으로 봅니다. 사인과 동기는 지금 수사중이고요. 지선생은 왜 윤필수와 통화를 하셨지요? 그리고 오늘 여기엔 왜 오신겁니까?"

박형사가 일방적인 질문을 퍼부었다. 김산이 중간에 끼어들어 답변을 해 주지 않았다면 답답한 일이 생길 뻔할 정도로 지옥심은 얼어 있었다. 마음이 약한 여자였다.

"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런데 학자와 골동품 나까마와는 전혀 안 어울리는 구도인데요?"

박형사가 윤필수를 나까마(중개상)라 표현하며 안좋게 말을 했다.

"그렇기는 하지만 학자들은 그들에게서 많은 정보를 얻기에 친하게 지내기도 합니다. 지선생도 그런 경우지요."

"윤필수는 골동품 업계에서 평판이 아주 안 좋은 사람인데 조금 의외군요."

"윤선생은 가끔 아주 좋은 자료를 찾아내어 조선시대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유명한 분이거든요."

지옥심이 겨우 가슴을 진정시키고 박형사의 질문에 답변을 했다.

"하긴 학자들이야 자룡의 출처는 알 필요가 없고 오직 내용이 중요하겠네요. 그리고 윤필수가 홍제 뭐를 발견했다고요?"

"윤선생이 발견한 게 아니고요 그것을 보았다 했거든요."

"뭐를요?"

"홍제명기반요."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요?"

박형사가 취조하듯 질문을 던졌다. 알아듣지 못할 말에는 짜증도 나는 듯했다. 그때 김산이 다시 끼어 들었다.

"홍제명기반이란 정조임금의 친필이 들어간 바둑판이란 말입니다."

"아, 바둑판요? 그렇다고 진작 말해줘야지요. 홍익인간 어쩌구 하니 알아먹을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정조임금의 싸인이 들어간 바둑판이란 말이지요? 비싼가요?"

박형사가 무식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하긴 학자나 바둑의 마니아가 아니면 '홍제명기반'이란 말을 쉽게 알아 듣기도  힘든 일일 것이다.

"금전적 가치보다는 역사적이나 문화적 가치가 있다고 보아야지요. 그것 때문에 저희들도 온 거고요."

"역사문화적 가치라....? 어쨌든 두 분 조금 더 계시지요."

"네에?"

"잠깐만요."

박형사가 바깥에 있는 형사들에게 전화를 해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두 분 차 마시고  골동품상 앞으로 나오셔서. 잠깐 서까지 동행해 주세요."

"경찰서까지요?"

"잠깐이면 됩니다. 살인사건이고 두 분이 윤필수와 연결되는 마지막 인물들이니 기분 나쁘게 생각 마시고 협조해 주세요."

박형사가 차도 마시지 않고 커피숍을 나갔다. 커피숍 안은 더웠다. 에어컨을 세게 틀어 놓았는데도 두 사람은 그걸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긴장하고 놀란 탓이었다.

"어쩌지?"

"놀랄 거 없어. 협조해 주자고. 달리 방법 없잖아."

김산은 지옥심을 달래며 벽시계를 바라보았다. 오후 4시였다. 지독하게 일진이 사나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