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는 부패의 원인을 과거로 보고 초계문신 제도를 둔 게 아닐까요? 교수님은 정조의 초계문신제까지 비판하시는데 이건 아닌 듯합니다."

학생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질문을 했다. 김산은 그 학생의 얼굴을 보고 강의록 한쪽에 채크를 한다. 질문의 의도가 신선하다. 강의자들은 간혹 이런 학생이 있기에 반갑다.

"학생은 조선의 과거제도에 대해 알고 있나?  다음시간 리포트로 '조선의 과거제도 비판' 어떤가?"

"에이~"

김산의 말에 학생들 모두가 비토를 하며 웃는다. 리포트 제출은 모두가 죽을 맛이다.

"리포트는 역사학보를 찾아보고 작성하기 바란다. 우영하일기가 참고가 될 것이다."

김산은 학생들에게 역사학보에 보고된 '우영하일기'를  리포트의 자료로 제시한다. 조선의 부패 중 과거의 부패는 유명하다. 조선의 과거제도의 문란을 정약용도 지적한 바 있지만 가장 실감나게 꼬집은 사람은 수원유생 우영하다. '우영하'는 12번 과거를 본 선비로 과거에 36년간을 매달렸다가 실패를 하고 끝내 이런 기록을 문집에 남긴다. 문집의 이름은 천일록이고 자료발굴과 국역자는 정창렬이다.

-과거의 폐해는 자심하다. 폐해는 요행을 바라고 응시하는 사람이 많은 곳에 있다. 매번 과거 때면 경향의 한량 잡배들이 관광이라 칭하며 자원해서 세력 있고 돈 많은 집안의 수종(隨從)이 된다. 과거장에 들어가서는 차술(借述, 남의 글을 자기 글인 양 써내는 것) 차필(대신 써주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감독관들도 거의 똑같은 시험지로 분간을 못하니 합격과 불합격에 혼동이 생긴다. 속담에 과거장의 일은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이로 인해 혹시나하는 생각이 있어 과거를 노리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났다. 시험장에서 서로 밀치고 넘어져 밟혀 죽는 사람까지 생기기에 이르렀다.

가난하고 궁색한 선비는 나물을 씹고 주림을 참으며 마음을 다잡고 공부하여 기다리는 것이 과거다. 부모와  처자는 모두 굶주리며 과거합격을 고대한다. 그러나 돌아온 소식은 과거장에서 밟혀죽었다는 소식이니 얼마나 참담한가.

과거 합격자는 이미 정해져 있다. 부가(富家) 자제나 매문매필한 자만이 합격을 할 수있으며 혹간 차술차필한 자가 합격을 하여 미친 듯 공부를 한 선비들은 눈물을 삼키며 고향으로 돌아가니 나라는 인재를 잃는 것이고 선비의 한은 높으며 나라안에 공부하는 학풍이 쇠퇴하는 것은 자명하다.

이로 나라안에 과거를 공부하는 선비는 많으나 시험이  권세가들의 전유물이고 요행수나 바라는 허깨비가 되다보니 나라안에 실력있는 선비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는 실정이다.

우영하는 36년간 12번 과거를 보고 실력만으로는 절대로 합격하지 못하는 과거를 한탄하고 과거를 포기하며 이런 글을 쓰고 있다. 18살에 처음 과거를 보기 시작했으니 그의 나이 54세에 꿈을 접은 것이다. 오늘날의 사법시험도 이만은 못하다.

"학생은 과거제도가 타락했다는것을 잘 안 정조가 실력 있는 유생들을 직접 불러 간소한 과거를 본 초계문신제도가 왜 나쁘냐 질문을 했다. 물론 권문세도가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는 방법으로 실력자를 골라내기 위한 경우로 한가지 방안일 수는 있겠지만 이 방법은 정답이 아니다. 왜 정답이 아닐까?"

김산은 다시 질문을 던진다. 과거의 타락과 백성들의 극심한 생활고는 조선이 지켜온 사농공상의 신분제도까지 흔들게 된다. 정상적인 생활에서 밀려난 엄청난 수의 백성들이 좌판시장으로 광산으로 그리고 한양으로 몰려들어 도시슬럼을 이루면서 조선은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사회문제를 만나게 된다. 학생들은 다시 침묵 모드다.

"왜 정답이 아니지? 좋아 10분간 휴식하고 수업을 다시 시작하지. 답변은 그때 듣기로 하고."

김산은 휴식을 선언한다. 두 시간 수업 중 한 시간이 그렇게 지나간다. 김산은 손전화 속에 메시지가 들어온 것을 확인한다. 발신자는 서울에서 춘천의 한 대학으로 강의를 나가는 지옥심(池鈺深)이다. 그녀는 18세기 문화 전공자로 김산과는 대학동기였다.

-홍제명기반을 보았다는 사람이 있어.

"응?"

김산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메시지를 다시 확인했다. '홍제명기반'은 김산이 한 문중의 전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정조임금의 친필 바둑 명(銘) 기록된 바둑판이 있었다는 기록을 보고,  한 잡지에 궁금점을 토로한 적이 있는데 지옥심이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가 정보를 알려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