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문관 이태영은 고문을 빼놓고는 집요하고도 매서운 질문을 반복적으로 했다. 그러나 김려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진술에 진전이 없자 판관 조심태는 김신국을 증언자로 불렀다. 김신국은 위선당에 나오자마자 강이천을 욕하기 시작했다. 심문관의 질문도 필요 없었다. 그의 욕설은 한참동안 계속되었다. 다행인 것은 그의 욕설 속에 김려나 다른 사람들은 들어 있지 않았다.

"강이천 그놈이 요물이외다. 모든 사단은 그놈부터 나온겝니다. 그놈을 참수해야 마땅하외다."

김신국은 입에 개거품을 물었다. 김신국은 땔나무꾼처럼 투박하고 무식하게 생긴 자였다. 키는 작고 얼굴색은 누렇게 떠 있었다. 듬성듬성 난 수염과 검은 눈썹 그리고 눈매가 매서웠다. 김신국은 위선당에 떡 하고 버티고 앉아 좌우를 가리지 않고 강이천을 저주하듯 욕과 험담을 늘어 놓았다.

"김려를 아느냐?"

"뭐라고요?"

"이 자를 아느냐 물었다?"

이태영이 김신국에게 김려를 지목하며 물었다. 그러나 김신국은 안하무인었다.

"이천이 죽일놈이라까 왜 이러시요? 나는 이천이 천하의 죽일놈이라는 거 외엔 모르외다."

"됐다. 저자를 물려라."

이태영이 나졸들에게 김신국을 퇴장시키라 명한 후 판관 조심태에게 가 귓속말로 무엇인가를 상의했다. 한동안을 상의하더니 흰종이를 한장 가져와 김려 앞에 내놓았다.

"이곳에 수결을 하라?"

"이건?"

"정배령이다. 너의 유배지는 경원이다. 너의 정배령은 이미 정해져 내려온 것이다."

김려는 모든 사태를 파악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궁궐 쪽을 향해 사배를 올렸다. 형신에 따르는 고문이 없었던 것은 군왕의 지음(知音) 때문임을 알고 김려는 감복했다.

"오늘 즉시 경원으로 떠난다. 해가 지기 전에 도성문을 나서야 될 것이야."

판관 조심태가 더이상 할말 없다는 듯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황공하오이다."

김려는 다시 한번 사배를 한 후 옥사로 돌아와 경원 출발을 준비해야 했다. 조선시대의 형중의 하나인 유배령은 특이한 제도다. 인신을 엄격하게 구속하는 오늘날의 형벌에 비하면 유배형은 거의 자유형에 가깝다. 유배처로 지정된 지역만 벗어나지 않는다면 생활처와 생활양식에 거의 제약을 받지 않아 능력에 따라 노복은 물론 가족도 동행할 수 있었다. 물론 위리안치와 같은 특별한 경우는 제외다.

"나으리!"

"오 위서방!"

김려는 그때서야 집에서  소식을 듣고 달려온 노복 위서방을 만날 수 있었다. 위서방은 형조 밖에서 밤을 샌 모양이었다.

"나으리!"

"위서방, 오늘 중으로 함경도 경원으로 떠나라는 나라의 명이야. 집으로 가 사실을 알리고 뭣좀 챙겨 경기감영으로 와. 감영에 신고를 하고 도성을 떠나야 되니까."

"네 알겠습니다요. 나으리."

눈치가 빠르고 행동이 기민한 위서방이 나는 듯 형조를 빠져나갔다. 김려는 옥사 안에 내려 놓았던 바둑판을 등에 메고 나졸들의 인솔을 받아 경기감영으로 향했다. 경기감영은 한양 안에 있었다. 유배객들은 모두 경기 감영에서 호송 나졸들을 배정받고 출발하는 것이  관례였다.

"소장은 서봉명입니다. 고생좀 하시겠습니다."

나장이 자신의 뒤를 따르는 김려를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내 친구는 어찌되었소?"

김려는 강이천을 물었다. 형신으로 물고가 난 그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자는 흑산도로 정배되었습니다. 더이상 형신을 그치라는 명이 내려왔으니 죽지는 않을겝니다."

"흑산도라했소?"

"효수 당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지요.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그자만큼은 효수를 면하지 못할 거라 형조에서도 생각했는데 운이 좋았지요."

"휴우....!"

김려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날씨가 하룻밤새 뚝 떨어져 있었다. 경기감영에 들러 유배 신고를 하고 도성을 나설 생각을 하니 까마득했다. 함경도 땅이 어디던가? 도성을 나서면 경기도 그리고 강원도를 거쳐야 겨우 함경도였다. 김려는 함경도는 고사하고 강원도도 초행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