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천의 옥(獄)은 정조21년 1797년 11월초에 있었던 국체사건으로 사소한 것이 침소봉대되어 조선을 들었다 놓은 해프닝 같은 사건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전 '돈령부도정'으로 집에서 한가한 퇴직 생활을 하던 '김정국'이 집안의 동생뻘인 김신국(金藎國)에게서 이상한 말을 들으면서 시작된다. 김신국은 평소 알고 지내던 강이천이 천안 공주 아산을 돌아다니며 해랑의 설을 퍼트리고 다닌다는 것이다.
김정국은 이 말을 우의정 이병모(李秉模)와의 술자리에서 말했고 이병모는 이 말의 진위를 외병조 형방에게 알아보라 지시를 한다. 나라의 국정을 책임진 우의정으로 당연히 말의 출처를 파악할 수 있는 일인데도 강이천의 돌발행동이 일을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시킨다. 외병조의 기찰활동을 위협으로 느낀 강이천이 느닷없이 자신의 친구들이자 문학적 동지였던 김려 김이백 김건순 등을 끌어들여 형조에 고변을 하면서 책임회피에 나선 것이다.
이 사건은 정조를 진노케 했다. 정조는 강이천은 물론 이 사건의 연류자 모두를 알고 있었다. 아니 알고 있는정도가 아니라 그들은 모두 정조의 제자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성균관 유생들이었다. 정조는 재임 당시 성균관 유생들의 담임선생을 자처한 사람이다. 수시로 성균관에 들러 강론을 펼치고 시험을 내어 상을 주는 등 유생들을 독려했다. 정조는 자신이 직접 시험을 출제하고 채점까지 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채점할 시험지가 어떤 때는 수백 장이 되는 날도 있었다. 정조는 이 수고로움을 자청한 이유를 선비에 대한 존중이라 했다.
정조는 자신의 재위기간 내내 수많은 요설사건을 경험했다. 거의가 정감록과 남사고비결 등이 발단이 되어 생긴 사건으로 수사를 해보면 그야말로 백해무익한 입방정(?)만 남는 허무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입방정의 결말을 처참했다. 대역죄는 참한다는 거슬를 수 없는 형률은 요설사건이 발생한 지역을 초토화시키는 대참사로 끝나기 십상이었다. 요설을 거론한 사람은 물론 그의 가족 친지들이 연죄되었고 심하면 그가 살던 지역민들까지 화가 미치는 일은 흔했다.
요설사건은 영조 정조연간에 20여 건이나 발생했고 사건마다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의 생명이 결단나고는 했다. 정조는 형조에서 보고해온 강이천 사건을 접하고 선제적으로 사건확대를 차단하고 나선다. 조선실록 1797년 11월11일의 기록이다.
[이때에 와서 형조에 명하여 강이천 · 김이백 · 김려 등을 잡아들여 정황을 조사하게 하였는데, 상이 형조판서 조심태와 참의 이태영(李泰永)에게 이르기를,
“이 일은 진실로 한번 웃음거리도 되지 못한다. 강이천은 내가 일찍이 여러 차례 보았는데, 경박하고 행검이 없는 무리에 지나지 않았다. 재예(才藝)가 조금 있어 때로 반시(泮試)에 참여하였는데, 그 문체를 보니 슬프고 갸날프며 들뜨고 경박한 것이 전적으로 소품(小品)이었다. 그래서 연전에 중신(重臣) 이병정에게 위임하여 상사(庠舍)에 두고 6,7명의 유생과 경전(經傳)의 문자를 교습(敎習)하게 하였는데, 그 뒤 응제(應製)에 한 번도 참방(參榜)된 적이 없었다.
내 생각에 그가 혹 징계되어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모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여겼는데 감히 서울과 지방에 출몰하면서 못된 무리와 결탁하여 사설(邪說)을 만들어내고 암암리에 서로 호칭하고 있다. 그 자취로 보면 ‘요망한 말로 대중을 의혹시켰다’고 할만하나, 사실은 사람을 속여 물건을 취한 데 지나지 않으니, 이는 대개 또한 궁한 나머지 못할 짓이 없게 된 소치일 것이다.
이러한 일에 대해 한번 크게 판을 벌이게 되면 국가의 체통이 도리어 가벼워질 뿐만 아니라 혹 죄없는 사람이 억울하게 걸릴 염려도 있다. 그래서 처음 생각으로는 좋은 방향으로 수습해서 무사히 끝나게 하려고 하였는데 강이천이 어디로부터 정보를 입수했기에 스스로 벗어나려는 계책에 급한 나머지 도리어 와서 고변할 줄이야 어찌 생각이나 하였겠는가. 참으로 이른바 봄 꿩이 스스로 운다[春雉自鳴]고 한 격이다.
이쯤 되어서는 사체(事體)를 또한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깊이 조사하도록 명하기는 했지만 어찌 왕부(王府)를 더립힐 수야 있겠는가. 이에 형조로 하여금 거행하게 하였을 뿐이다. 그런데 그가 말한 김려 형제 역시 평소에 소품(小品) 중의 사람으로 일컬어졌던 자들이고 듣건대 김이백은 허황하고 패려스러우며 성찰도 지각도 없는 무리라 한다.
그 가운데 김건순(金健淳)은 문정(文正) 김상헌(金尙憲)의 봉사손(奉祀孫)으로서 작고한 참판 김양행(金亮行)의 손자라고 한다. 이러한 말을 듣게 된 것은 곧 그의 죄이다. 그러나 김정국이 써서 바친 종이를 보면 김건순은 진짜 증거물은 없는 듯한데 다만 나이가 젊고 정해진 뜻이 없어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 집이 가난하지 않은데도 강이천 무리의 유혹과 빙자에 떨어져 스스로 한 동아리에 빠지게 되었으니 참으로 애달퍼 죄줄 것이 못된다. 하물며 내가 작고한 참판에게는 잊지 못할 일이 있으니, 어찌 손자를 하나 보살펴 주지 못하겠는가.
김건순은 당초에 이름이 여러 죄수의 초사(招辭)에 나오지 않게 하려 하였으며, 강이천 등에 대해서도 반드시 가벼운 죄과(罪科)에 두려 하였는데, 이것은 내가 굽혀서는 안 될 형장(刑章)을 고의로 굽히려고 한 것이 아니다. 이처럼 등불에 날아드는 부나비와 같은 무리들을 번번이 역적을 다스리는 형률로 다스린다면 지난번에 이른바 국가의 체통이 도리어 가벼워진다고 하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조선실록]
정조는 강이천 사건을 하나의 해프닝으로 규정하고 더이상의 확대를 원치 않는다. 실체없는 말의 성찬(?)으로 아까운 인재들을 죽일 수는 없다는 것이 정조의 판단이었다. 봄 꿩이 스스로 운다는 정조의 말은 사건을 바라보는 판단자의 담대하고 도도한 면모가 엿보인다. 숙종 같은 경우라면 수백 명 죽어나갈 빌미가 되련만 정조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정조가 이 사건을 빠르게 판단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정조가 이들을 잘 안 때문이다. 사건의 연류자들이 모두 정조의 반(班)에서 공부를 하던 제자(?)들이었기에 그의 판단은 빠를 수밖에 없었다. 정조는 강이천을 말하고 있다. 문체는 소품이고 사람은 경박하다고.
.gif){kind=logo}
박타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