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여명이 비추기 무섭게 옥사로 나졸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악귀나 한가지였다. 조선에서 귀신은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조선팔도를 떨게 만드는 귀물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금오, 형조, 포청의 기무아전들이었다.

"나오시요?"

"어디로 간다는 게요? "

"따라오라니까?"

"가겠소. 그러나 저 사람 좀 봐 주시요? 살았는지 죽었는지라도 말이요?"

김려는 거적 속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죽은 듯 조용한 강이천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댁이나 걱정하슈. 사람은 그리 쉽게 죽지 않는다우."

턱수염이 더부룩한 나졸이 김려의 등짝을 내리치며 말을 몰 듯 거칠게 나왔다. 양반에게는 최소한의 대우(?)를 하는 기무아문은 나졸들까지도 안하무인이었다.

"빨리 가세. 영감들은 잠도 없나 벌써 나와 계시다니까?'

"제기랄. 그놈의 영감땡감들 늙으니까 잠도 없지."

나졸들이 김려를 독려하며 불평을 늘어 놓았다. 시간은 인시에서 묘시(오전5시에서 6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아직 어둠도 가시지 않은 새벽시간이 조선 관원들의 출근시간이었다. 겨울 새벽6시, 여름 새벽4시면 조선팔도의 모든 관아는 업무를 개시해야 했다. 군왕도 그 시간이면 근정전에 좌정하여 무엇인가를 해야했다.

김려는 형조의 위선당(爲善當) 앞에 꿇어앉았다. 나졸들은 김려의 어깨를 누르고 뒷무릎은 발로 차는 짓을 서슴지 않았다. 바닥은 얼어붙어 있었다. 양 무릎이 금방이라도 얼어터질 듯 시려웠다. 위선당의 대청 위에는 책상을 내어놓고 조심태, 윤필병, 이태영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형조의 삼관, 즉 판서 참판 참의였다.

(김려시대에 발간된 무예도보통지의 한 페이지)

김려는 그들을 보는 순간 자신이 국체사건에 연류되어 있음을 직감하고 모골이 송연해졌다.

"이름을 대라?"

심문관인 이태영(李泰永)이  신분을 물었다. 그의 옆에는 서기가 앉아 심문관의 질문을 받아 적었다.

"김려요."

"수진방에 사는 유생 김려가 맞나?"

"그렇소이다."

'강이천은 해랑의 설로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멀지 않아 새로운 세상이 오는 둥 운운하며 혹세무민한 역도다. 너도 그와 한패인가?"

"......?"

"너도 강이천과 한패냐고 물었다?"

김려는 두눈을 감았다. 강이천이 사지에 빠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김려 자신도 강이천이 빠진 사지에 한발을 걸치고 있는 셈이었다.

"친구라고는 해도 그와 역도의 한패라는 것은 천부당만부당 하외다."

"해랑의 설을 들어 보았느냐?"

이태영이 묻는 해랑의 설이란 정감록에 나오는 진인(眞人)으로 일단의 세력이 바다를 건너 조선에 들어와 충청도 계룡산 일대를 중심으로 세로운 세상을 만든다는 요설로 조선팔도에 널리 퍼진 말이었다.

"나는 선비로 황당한 말은 귀담아 듣지 않소이다. 나의 친구 중암이 다소 경망하기는 해도 그자 또한 문장을 자처하는 선비로 그런 말을 신용했다고는 믿지 않소이다."

김려는 거침 없이 자신의 소신을 피력했다. 형신장에서 선비가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소신의 피력뿐임을 김려는 잘 알고 있었다. 서기(書記)가 작성하는 신문기록은 조보(朝報)에 실리고 군왕까지 읽기 때문에 변명이나 약한 모습은 자체로 선비의 명예를 꺾는 것이었다.

"강이천은 너도 해랑의 설에 동조했다 했다."

"뭐라고요?"

"그뿐만 아니다. 강이천은 너와 김이백, 김건순 등도 한패라 관에 자청하여 발고를 했다."

이태영은 김려의 눈을 쏘아보며 물었다. 뜻밖의 질문이었다. 심문조서에 유도질문이나 사술이 가미된 질문은 용납되지 않는 것이 조선의 법이었다. 조선의 법은 진술 한줄이 잘못되어 살인범이 방면되는 사례가 있을 정도로 기록과 기록의 정당성을 중요시했다.

"중암이 나와 친구들을 발고했다고요? 우리들이 행랑의 설을 퍼트렸다고요?"

김려는 하늘이 노랗게 변함을 느꼈다. 자신과 김이백 김건순 등은 너무도 정겨운 친구들이었다. 강이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강이천이 친구들을 걸어 유언비어의 유포자로 발고를 했다는 것이었다. 이상한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