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내리자 옥사 안은 살풍경했다. 밖으로 뚫려 있는 흙벽의 작은 창으로 매서운 겨울바람이 밀고 들어와 땅바닥에 거적데기 몇 장 던저놓은 감방 안을 동토로 만들고 있었다. 추위가 옷섭을 스며들어와 맨살이 소름이 돋았다. 손가락 발가락이 얼어 통증이 올 정도였다.

"이보시요? 나장?"

김려는 메아리 없는 목소리를 내다 그것도 포기하고 사태를 파악하려 애를 썼다. 경황중의 상황이지만 우왕좌왕하는 자신의 모습이 선비답지 못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의연하지 못한 행동은 선비에게 금물인 시대였다.

덜컹!

그때 옥사문이 열리고 나졸들이 사람 한명을 들쳐메고 와 옆방에 밀어넣고 휑허니 나가버렸다. 나졸들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아니? 자네 중암 아닌가?"

중암(重庵)은 강이천(姜彛天)의 자(字)였다. 강이천은 조선후기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 사람인 강세황의 손자로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불리던 사람이었다.

"담정...?"

"오, 날세. 이 사람아 이게 무슨 일인가?"

김려는 초주검이 된 강이천을 보고 할말을 잃었다. 굵은 나무기둥으로 만든 책 사이로  형신(고문)을 당해 피떡이 된 강이천의 몸뚱이가 보였다. 언뜻 보기에도 강이천의 발가락이 모두 잘려나간 듯했다.

"담정 미안하이. 어찌 일이 이 지경이 되었는지..."

김려는 할말이 없었다. 온몸이 형신으로 너덜너덜 할 정도로 당한 사람을 보고 달리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정조의 지시로 그려진 영고도. 필자는 정조의 친필로 쓰여진 홍제명기반을 찾았다.)

"중암?"

"미안하네. 내가 큰 실수를 했어. 아...."

"이보게 중암, 잠들면 안되네. 힘들더라도 조금 참아. 잠들면 이 추위에 죽는 수가 있어."

김려는 자신이 깔고 앉아 있던 거적 한장을 강이천의 방으로 밀어넣어 주었다. 그것이라도 덮고 추위를 피하란 뜻이었다.

"여보게?"

'미안하이. 으..."

강이천은 그 말 한마디를 남기고 고개를 떨궜다. 혼절을 한 모양이었다.

"중암? 이런...!"

김려는 기겁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에 대고 고함을 쳤다.

"이보시요? 나장, 여기 사람이 죽소. 사람이!"

김려는 옥사 바깥을 향해 소리소리를 질렀다. 선비고 뭐고 염치불구하고 사람부터 살려 놓고 볼 일이었다. 그러나 나장이나 나졸들은 묵묵부답이었다.

"아... 낭패다. 낭패."

김려는 강이천의 참혹한 모습을 보고서 조금씩 현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평소 자유분방하던 강이천의 행동이 화를 부른 것이었다. 돌아가는 모양세로 보아 강이천이 크게 걸린 듯했다. 그와 친하다는 이유(?) 하나로 군왕의 부름을 받고 입궁 중인 자신을 체포해올 정도라면 이건 사단이랄 수 있었다.

"아, 성상께 누를 끼쳤구나. 얼마나 실망을 하셨을까?"

김려는 군왕을 떠올리고 죄송함을 표시했다. 바둑판을 들고 궁으로 들어오라는 지음(知音)을 주었던 군왕이었다. 그런 군왕의 사랑을 형조의 옥사로  대신했으니 이건 대역죄(?)였다.

어두운 감방이여 어찌 내가 감당한단 말이냐(暗暗獄舍 胡零仁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