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겐토리'라는 일본 작가가 있다. 겐토리는 김옥균에 대한 에세이 한 편을 '간사이잇찌'에 남기고 있다. 그것은 놀랍게도 김옥균과 본인방수영의 에피소드다. 필자는 벽상검을 쓰면서 여러 점의 미발굴 바둑기록을 보았는데 이것도 그 중 하나다. 사실 벽상검은 완성된 소설이 아니다. 필자는 인터넷상의 한정된 공간 안에서 그저 바둑이 좋고 김옥균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공개하며 쓰는 '초고'다.

김옥균의 일본생활은 전혀 정리가 안된 인간군상의 모습이다. 뜻을 펴지 못한 망명객으로 좌절과 울분을 토로하면서 하후하루 시간을 보내야 했던 열혈남아의 삶이 공자님 같을 수 없으며 협객 '형가' 같을 수도 없을 것이다. 겐토리의 기록도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김옥균과 수영이 유곽을 전전하며 교제했고 어느 북쪽(북해도는 아닌지 싶다) 지방의 여관에서 헛된 꿈을 말하며 추억했다는 내용이다.

꿈인가.

- 꿈이기는 했지만 아직 깨어나지 않은 꿈이다.

꿈은 좋다. 장부라면 능히 큰 꿈을 꾸어야 하는 법, 꿈은 바둑처럼 다시 꿀 수 있다.

- 좋은 말이다. 바둑은 하시라도 다시 둘수 있기에 좋다. 허나 인생은 부운(뜬구름)이기에 한번 흩어지면 다시 모으기 힘들다.

이 내용은 겐토리의 에세이를  필자가 단문으로 축약한 것이지만 바둑을 대하는 두 사람의 자세는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수영은 김옥균을 대인으로 보았다. 장부는 뜻이 커야 장부라 말한다. 하여 수영은 김옥균의 좌절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다시 힘을 내라 부추긴다. 그러나 당사자인 김옥균은 역부족을 토로한다. 인간의 삶이 유한하기에 꾸는 꿈도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삶이 바둑처럼 다시 둘 수 없기에 자신이 처한 엄혹한 현실을 인정(?)하고 한탄하고 있다.

김옥균은 불과 백년 전 사람이다. 김옥균은 두 개의 극단적인 역사적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이 평가는 아이러니다. 김옥균을 불세출의 영웅이자 풍운아로 그리며 혁명가로 만든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친일파로 낙인 찍힌 사람들이다. 김기진이나 김진구 같은 친일계열의 인사들이 김옥균을 앞장세워 어쩔 수 없이 친일에 나섰던 자신들의 당위성을 내세우는 '항소이유서'로 이용된 측면이 많다.

김옥균에 대한 학계의 평가도 냉정하다. 민의의 동의 없이 일본의 실체를 간파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일본의 침탈에 부역(?)한 결과를 초래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다. 물론 당시 김옥균의 처한 시대적 상황이 일본과 손을 잡지 않으면 안됐던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김옥균에 대한 필자의 사랑은 별게 아니다. 그저 그가 좋고 그가 그리운 역사적 인물이란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김옥균을 추억하면서 오히려 그를 욕보인 면이 많다. 이 점은 필자의 능력부족이다. 역사, 쉽지 않다. 소설, 이것도 쉬운 것이 아니다. 역부족을 자임한다. 더 공부하겠다.

김옥균의 혁명은 미완성이다. 김옥균의 연구도 미완성이기는 마찬가지다. 벽상검도 일단 미완성으로 남겨놔야겠다. 필자는 더이상  글을 쓰기 힘들게 되었다. 결말은 책 출간으로 대신하겠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것으로 이해를 해 주시라. 그때까지 안녕히 계시라. 사람은 골목에서 만나 들판에서 헤어진다.

-이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