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균의 문장과 학식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는 것은 유감이다. 현존하는 갑신일록은 간략한 사건개요를 기록한 일기인 탓에 김옥균의 내면을 살피기에는 한계가 있다. 더구나 갑신일록이 김옥균의 저각물인지를 의심하는 학자들까지 있어 더욱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승정원일기의 기록은 단비와 같다. 이 상소문은 상당한 수준이다. 한문을 이 정도로 구사하려면 내공이 어느 정도인지를 조금은 아는 필자(?)라 더욱 고개가 숙여진다.

왕조시대 상소문은 일종의 백일장 같은 것이다. 신하가 군왕을 서면으로 대면을 하여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고 때로는 제도의 혁파와 개혁을 주장하는 등 백화쟁명한 토론의 아고라였다. 특히 조선은 더욱 그랬다. 한미한 시골 촌부라 하더라도 군왕에게 상소할 수 있었고 상소문은 예외없이 군왕은 탑전에 도달했다.

하여 상소를 초안하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능력을 불과 수십 매의 상소문에 담아 보여줘야 했기에 상소문은 대부분 정밀하고 정치하다. 김옥균의 이 상소문은 현존하는 김만중이나 윤선도의 수준이다. 김만중과 윤선도는 당쟁이 가장 심했던 숙종 때 서인과 남인의 대변인으로 수백 통의 상소문을 통해 극한의 논쟁을 벌인 사람들이다.

이 두 사람의 논쟁은 오늘날 인테넷상에 나타나는 저질댓글은 저리가라다. 김만중은 윤선도를 쥐새끼라 했고 윤선도는 젖비린내 나는 만중의 살을 씹고 싶다고 말한다. 그것도 군왕이 읽을 수밖에 없는 상소문 속에 말이다. 이 두 사람은 스무 살 차이가 났다. 숙종은 끝내 두 사람을 모두 내친다.

논쟁은 치열할수록 좋다. 논쟁은 치열하되 끝까지 최소한의 존중은 살아있어야 논쟁이 된다. 그럴 때에만 논쟁은 공익이 된다. 존중없는 논쟁은 육두(肉頭)에 불과하다.

김옥균은 절제된 압축을 통해 군왕에게 애정을 말하고 있다. 문제 많은 신하로 그 문제점을 인식하고 앞으로 더욱 분골쇄신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김옥균의 관료생활은 사실 불성실한 면이 있었던 듯하다. 업무태만을 이유로 여러번 탄핵을 받은 기록으로 볼 때 그렇다. 김옥균은 이 상소에서도 변명을 하지 않는다. 군왕인 고종은 처음 김옥균의 상소문을 보고 그가 인재라는 것을 간파했다. 여러번 그의 상소를 통해 그 점을 확신한 군왕은 김옥균을 조금씩 지근에 두고 (그것이 잘되지는 않았지만) 조선의 희망을 걸기도 한다.

유씨가 아산땅을 전전하며 거지와 같은 신세로 전전할 때 김옥균은 대판사건(大阪事件)에 연루되어 오가사와라(小笠原島)로 유배되는 처지가 된다. '대판사건'은 현양사를 중심으로 한 일본 우익들이 깁신정변으로 망명해와 있던 조선 협객(?)들을 앞장세워 조선으로 다시 진출, 사대당을 몰아내고 개화당정권을 세워야 한다는 모의를 꾸미다 모의 과정에서 일본 경찰조직에 와해된 사건이었다.

김옥균은 이 사건과 무관했으나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무려 3년간 섬 생활과 1년간 북해도 생활을 해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