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효가 살리고자 한 유재현은 처음 개화파에 관심을 갖고 개화파의 사업에 적극 동참을 한 인물이다. 그러나 임오군란 후 민영익이 다시 득세를 하자 그에 붙어 개화파의 사소한 일까지 시시콜콜 고자질을 하여 일종의 배신자로 낙인찍혀 있었다.

박영효는 결국 유재현의 일로 김옥균과 사이가 멀어지게 된다. 훗날 박영효는 김옥균에게 독한 말을 여러번 한다. 그들은 한때 목숨을 담보로 피의 맹서를 했던 결사(結死)의 동지들이다. 시간과 주변환경이 바뀌면 변하는 것이 세상사겠지만, 적어도 김옥균과 박영효 사이에는 부적절한(?) 일인 듯하다.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은 갑신정변의 주역으로 기록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이들 세 사람 사이에는 도원결의는 아니더라도 마음으로 약조한 피의 맹서는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반정 후의 이들의 행보는 그렇지 못하다.

역사는 현실이다. 현실은 소설과 다르다. 갑신정변은 현실이었다. 그 정변을 주도했던 사람들도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들이다. 현실은 이상을 품고 살 수는 있으나 현실은 이상처럼 되지 않는다.

"금릉위 시생역사외다."

김옥균이 시생역사(時生逆死)를 말했다. 시생역사는 '대대례'에 나오는 말이다. 따르는 자는 살고 거스르는 자는 죽는다는 의미다. 정조도 한때 시에 서는 자는 살 것이다 말한 바 있다.

"고균, 무조건 제거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치우지 않고 갈 수 없다면 치워야지요. 그것이 병법입니다."

"끄응..."

박영효는 더이상 반문하지 않았다. 김옥균이 한마디를 더했다.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소이까?"

"... ..."

"없소?"

"없습니다. 동천홍의 날을 정해 주시지요?"

서광범이 자리에서 일어나 김옥균 앞에 엎드렸다. 동천홍(東天紅)은 동쪽 하늘을 붉게 물들인다는 의미로 (반정의) 출정을 의미하는 은어다. 서광범의 말은 정변의 날을 잡아달라는 것이다.

"날짜는 다음달 시월 십칠일, 종합적인 계획은 서대장이 기안을 한다."

"알겠습니다!"

"알겠나이다!"

서광범이 명령을 받자 이규완 이창규가 복창을 했다. 군령(軍令)인 셈이었다. 군령은 산을 넘어트리고 바다를 가른다.